▲ 안중민 변호사(법무법인 동인)

대상판결 : 대법원 2020. 12. 10. 선고 2013다31601 판결

1. 사실관계의 개요 및 소송 경과

피고는 상시근로자 500명 이상으로 영유아보육법상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할 의무가 있는 사업장(의무사업장)이다. 원고들은 그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다. 원고들은 2009년 12월21일 피고를 상대로 “피고는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하지 않았고 다른 사업주와 공동으로 직장보육시설을 설치·운영하거나, 사업장 지역 내의 보육시설과 위탁계약을 맺어 근로자 자녀의 보육을 지원하지도 않았으므로, 구 영유아보육법 14조1항 (이 사건 조항)에 따라 2006. 1. 30.부터 2011. 12. 15.까지의 기간 동안 직장보육시설의 설치의무에 갈음하는 보육수당을 지급하라”는 소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원심 및 1심 판결(원심판결)은, 이 사건 조항만으로 근로자들이 사업주들을 상대로 곧바로 보육수당을 청구할 수 있는 사법상 권리를 취득한다고는 볼 수 없고 개별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단체협약 등을 통해 보육수당의 지급대상·지급시기·액수 등에 관한 내용들이 구체화돼야만 비로소 그러한 권리를 취득한다는 이유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한편 원심 소송 계속 중, 피고는 2010년 6월8일 1심 법원에 이 사건 조항이 ‘포괄위임금지의 원칙 위반’ ‘과잉금지원칙 위반’ ‘평등원칙위반’이라며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했다. 그러나 법원이 같은 해 8월16일 이를 기각하자, 다시 같은 해 9월29일 이 사건 조항의 위헌선언을 구하는 헌법소원심판(2010헌바373 영유아보육법 14조 위헌소원)을 청구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11년 11월24일 전원재판부에서 이를 기각하고 합헌결정을 내리기도 하였다.

2. 대상판결의 내용

대상판결의 쟁점은 이 사건 조항이 시행되던 시기 중 원고들이 구하는 기간 동안 근로자인 원고들이 이 사건 조항에 기해 의무사업장의 사업주인 피고를 상대로 직접 보육수당의 지급을 구할 수 있는지 여부다. 대상판결은 법해석의 목표는 법률에 사용된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에 충실하게 해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법률의 입법 취지와 목적, 제·개정 연혁, 법질서 전체와의 조화, 다른 법령과의 관계 등을 고려하는 체계적·논리적 해석방법을 추가적으로 동원해야 한다(대법원 2018. 6. 21. 선고 2011다112391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는 법리를 전제했다. 이러한 법리에 따라 ① 법률의 입법 취지와 목적, 제·개정 연혁 ② 규정 형식과 내용 등을 종합해 보면, 이 사건 조항은 의무사업장 소속 근로자가 사업주를 상대로 직접 정부 보육료 지원 단가의 100분의 50에 해당하는 보육수당의 지급을 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즉, ① 법률의 입법 취지와 목적, 제·개정 연혁을 보면, 근로자에 대한 사업주의 보육 지원은 적절한 보육시설이 설치·운영되도록 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입법이 이뤄졌다. 이후 보육수당 액수를 구체화·현실화하는 시행규칙 개정도 함께 이뤄진 점에서, 적어도 원고들의 보육수당 청구 기간에는 원고들이 받을 수 있는 보육수당의 최소 한도액을 특정할 수 있고 이 사건 조항에 기한 근로자의 사용자에 대한 보육수당청구권을 부여하려는 입법자의 의도가 구체화되고 명백해졌다고 봤다. ② 이 사건 조항의 규정 형식과 내용을 보면 “사업주가 … 근로자에게 보육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며 사인에게 다른 사인에 대한 의무이행을 직접 명하는 규정 형식을 취하고 있는 바, 구체적으로 이 사건 조항은 의무사업장의 사업주의 보육시설 설치의무 이행과 관련해 세 가지 방법1)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되, 보육시설을 설치할 수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에게 보육수당을 지급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데, 사업주가 세 가지 방법 중 어떤 것으로도 보육시설을 설치하지 않았다면 사업주의 의무는 보육수당 지급의무로 확정된다고 볼 수 있다고 봤다.

3. 대상판결의 검토

가. 이 사건 조항의 사권성(私權性)

원심판결은 사회복지에 관한 법률조항을 단순한 ‘공법상의 정책규정’으로 봐 사익(私益)보호성 내지 사권성(私權性)을 부인했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사회입법이 현대자본주의사회의 보편적 입법원리로 정착하지 못했던 까닭에, 위 1·2심 판결과 같이 ‘공법·사법의 단순 이분(二分)론’에 빠져 사회입법의 대상인 사회적 기본권의 사익보호성 내지 사권성을 부인하는 견해가 다수였다. 21세기에 접어든 지금 이 같은 이분법적 견해는 빛을 잃고 있으며, ‘공권의 사권화’의 경향은 날로 강화하고 있다.

대법원도 “공무원에게 부과된 직무상 의무의 내용이 단순히 공공 일반의 이익을 위한 것이거나 행정기관 내부의 질서를 규율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또는 부수적으로 사회구성원 개인의 안전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설정된 것이라면, 공무원이 그와 같은 직무상 의무를 위반함으로 인해 피해자가 입은 손해에 대해서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 국가가 배상책임을 지는 것이고, 이때 상당인과관계의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결과 발생의 개연성은 물론 직무상 의무를 부과하는 법령 기타 행동규범의 목적이나 가해행위의 태양 및 피해의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판시하듯이(대법원 1993. 2. 12. 선고 91다43466 판결), ‘공권의 사권화’의 법리를 수용한 바 있다.

대상판결은 이 사건 조항의 ‘입법 취지와 목적, 제·개정 연혁, 규정 형식과 내용’ 등을 종합해 그 사권적 성격을 한층 명확히 하면서, 이 사건 조항에 따라 의무사업장 소속 근로자가 사업주에 대해 정부 보육료 지원 단가의 100분의 50에 해당하는 보육수당의 지급을 직접 청구할 수 있는 구체적·직접적 청구권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위 법리를 한층 더 발전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나. 이 사건 조항의 강행법규성

원심판결은, 이 사건 조항은 직장보육시설·지역보육시설과의 위탁계약 체결, 보육수당 지급 등 여러 대체수단 중 하나를 사업주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고 있을 뿐 사업주에게 반드시 보육수당지급 의무만을 부담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전제하면서 이 사건 조항의 강행법규성을 부인했다. 더욱이 원심판결은 ① 이 사건 조항의 문언이 ‘사업주가 직장보육시설을 단독으로 설치할 수 없을 때’ 비로소 그 대체수단 중 하나로서 보육수당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점 ② 피고가 직장보육시설을 단독으로 설치할 수 없음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곧바로 그 대체의무가 발생한다고 해석할 수 없고 현재까지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직장보육시설의 설치가 불가능하다고 볼 수도 없는 점 ③ 영유아보육법 시행규칙 8조는 보육수당 지급 하한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보육수당의 지급액수·범위 등은 사업주의 자유재량에 맡기고 있는 점을 근거로, 이 사건 조항의 강행법규성을 부인하였다.

대법원은 “사법상의 계약 기타 법률행위가 일정한 행위를 금지하는 구체적 법규정을 위반해 행해진 경우에 법률행위가 무효인가 또는 법원이 법률행위 내용의 실현에 대한 조력을 거부하거나 다른 내용으로 효력을 제한해야 하는가 여부는, 당해 법규정이 가지는 넓은 의미에서의 법률효과에 관한 문제로서, 법규정의 해석에 따라 정해진다. 따라서 그 점에 관한 명문의 정함이 있다면 그에 따라야 할 것이고, 그러한 정함이 없는 때에는 종국적으로 금지규정의 목적과 의미에 비춰 그에 반하는 법률행위의 무효 기타 효력 제한이 요구되는지를 검토해 이를 정할 것”(대법원 2018. 10. 12. 선고 2015다219528 판결)이라고 법규정의 해석원칙을 판시한 바 있다.

대상판결은, 이 사건 조항은 “사업주가 … 근로자에게 보육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의무이행을 직접 명하는 규정형식을 취하면서, 의무사업장의 사업주에게 세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되 보육시설을 설치할 수 없는 경우 근로자에게 보육수당을 지급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고 해석하면서 위 세 가지 중 어떤 것으로도 보육시설을 설치하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사업주의 의무는 ‘보육수당 지급의무’로 확정된다고 봤다는 점에서, 위 법리를 한층 더 구체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4. 대상판결의 의의

종래 대법원은, 국가공무원인 갑 등이 국가가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하거나 지역의 보육시설과 위탁계약을 맺어 보육을 지원하지 아니하고 있으므로 구 영유아보육법 14조1항에 따라 보육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국가를 상대로 보육수당의 지급을 구한 사안에서, 갑 등이 구 영유아보육법 14조1항에 근거해 곧바로 보육수당의 지급을 구하는 것은 공무원의 ‘근무조건 법정주의’와 항목이 계상된 국가예산에 근거한 공무원 보수 지급의 원칙에 반해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16. 8. 25. 선고 2013두14610 판결).

위 사건에서는 공무원의 근무조건 법정주의와 국가예산상 공무원 보수 지급의 근거 여부가 쟁점이 된 탓에 단지 “구 영유아보육법은 사업주와 근로자 사이의 근로관계의 틀 속에서 사업주의 보육수당 지급의무를 규정하고 있다”고만 설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 사건 조항의 ‘사권성’ 및 ‘강행법규성’ 여부에 관한 판단은 이뤄지지 않았는 바, 대상판결은 이 사건 조항의 ‘사권성’ 및 ‘강행법규성’을 명백히 인정하는 전제에서 의무사업장 근로자에게 보육수당의 구체적·직접적 청구권을 명시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선례적 의의를 갖는다고 하겠다. 물론, 2014년 5월20일자 영유아보육법 개정으로 이 사건 조항 중 ‘보육수당 지급의무’ 부분은 삭제됐으나, 이 사건 조항의 ‘사권성’ 및 ‘강행법규성’을 근거로 의무사업장 근로자들이 ‘직장내 보육시설의 단독/공동설치’ 또는 ‘지역보육시설 위탁’중 하나를 당연한 사적(私的) 권리로 사업주에게 직접 청구할 수 있음을 명백히 선언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그 의의가 크다 할 것이다.

<각주>
1) ① 직접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하거나 ② 다른 사업주와 공동으로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하거나 ③ 지역 보육시설과 위탁계약을 체결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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