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 공인노무사(평등노동법률사무소)

나는 노동계 추천으로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약 8년간 경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판정위원 활동을 수행했다. 최근 산업재해 국선노무사 제도 도입에 반대한다는 공인노무사들의 의견수렴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 제도에 찬성하는 노무사들이 상당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어 이 글을 쓰게 됐다.

산재 국선노무사 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노무사들의 주장은 “도입 취지는 공감하나 노무사들의 수익구조가 낮아지기 때문에 반대한다”인 듯하다. 그런데 현재 노무사 업계 실상을 들여다보면 산재 대리업무는 영업력 있는 일부 노무사들에게 편중돼 있다. 신규 노무사를 포함한 다수 노무사들은 산재 업무를 대리할 기회가 적어 경험도 쌓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국선노무사 도입이 전반적으로 노무사 수익구조를 낮아지도록 영향을 끼칠지는 의문이다.

내가 참가한 판정 경험상 근골격계질환의 경우는 80~90%, 뇌심혈관계질환은 60~70% 정도가 법률 대리인 없이 심의가 진행됐다.

근로복지공단 재해조사는 재해자가 어떤 주장을 하는지에 따라 조사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재해자는 산재 인정기준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고성 재해와 업무상질병 중 무엇을 어떻게 신청해야 하는지 모를 수 있다. 사고성 재해로 신청해 불승인된 후 나중에야 질병성 재해로 다시 신청하는 경우도 많다. 질병성 재해로 신청하더라도 구체적인 경력과 작업 과정처럼 필요한 근거 없이 “일하면서 아프게 됐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많다. 재해자가 인정기준을 몰라서 제대로 주장하지 못하면 공단 담당자의 재해조사도 부실하게 이뤄진다. 부실한 재해조사로 인해 질병판정위 심의도 부실해진다. 판정위원들은 부실한 재해조사는 일단 보류 결정을 하고, 보완을 요구하기도 한다.

특히 이주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들일수록 대리인을 선임할 재력이 되지 않는다. 이러면 증빙이 부족하고, 인정기준에 부합하지 못해 불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병들고 죽어 가는 것도 억울한데 단지 돈이 없어 법률대리인을 선임하지 못해 제대로 된 판정을 받지 못하는 현실은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신청 절차를 개선해 사업주 날인 절차를 폐지했고, 병원을 통해 직접 산재신청을 할 수 있게 제도를 개선했다. 그러나 정작 노동자들은 그 개선사항을 알지 못하고, 병원에서 영업하는 산재 브로커에게 돈을 줘야 산재를 인정받는 줄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아직도 이런저런 이유로 산재 신청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몇 년 전 이주노동자가 산재 소견서를 주치의에게 받을 수 없다며 도움을 요청해 안산 소재 한 병원에 간 적이 있다. 당시 의사는 직업병이 아니라고 판단해 산재 소견서를 써 줄 수 없다고 해서 얼굴을 붉히고 다퉜다. 의사가 써 주는 서류는 환자 상태에 따른 진단일 뿐 산재를 인정하는 서류가 아니다. 이런 경우 일반 진단서로도 산재 신청을 할 수 있다고 조력해 주는 법률대리인의 역할이 필요하다.

산재보험은 우리 사회 가장 기본적인 사회보험으로 노동자의 재력과 상관없이 누구나 공평하게 적용받아야 한다. 노무사 제도는 노동 및 사회보험 관계 업무의 원활한 운영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노무사가 사회 취약계층을 위해 노동 및 사회보험 관계 법령과 관련한 사건을 지원할 수 있도록 공인노무사법에는 사회 취약계층 지원활동 근거가 마련돼 있다.

노무사 제도가 도입된 지 약 35년이 됐다. 이제 노무사들은 개인의 유·불리를 떠나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지를 모색해야 할 때다.

산재 국선노무사 제도 도입 반대 명분은 부족하다. 오히려 도입 필요성이 더 뚜렷해진 상황이다. 이제는 제도 도입 방법과 절차, 취약계층 범위, 노무사 보수 등을 협의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