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영경 변호사(대한법률구조공단)

대상판결 : 서울동부지방법원 2020. 10. 22. 선고 2019가단139485 판결

1. 사건 개요

원고는 공공기관인 피고2에 아르바이트생으로 채용돼 업무를 하던 자이고, 피고1은 피고2의 직원으로 근무하던 자다. 원고는 일을 시작하고 3주 후에 조부모상을 당해 3일 동안 회사에 출근하지 못했는데 피고1이 원고가 맡은 일을 완성해야 다음에도 계속 일할 수 있다고 하면서 주말에도 나와서 일하라고 다그쳤다. 본인이 이 부서에서 원고에 대한 채용 권한 및 재계약 권한이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말해, 원고는 일을 잘 마쳐야 한다는 간절함 때문에 주말임에도 회사에 나갔는데, 피고1은 주말에 피고2의 사무실에서 원고와 단둘이 있는 상황을 이용해 원고를 강간하기로 마음먹고 강간하려고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그 후 원고는 피고2에 위 강간미수 범행 사실을 알렸으나, 피고2의 팀장은 피고1이 처벌받을 때 자신도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게 될까봐 걱정된다면서 원고에게 그냥 넘어가자고 했고 도와 주겠다던 직원들을 회유했으며, “네 목소리가 원래 야했다”면서 오히려 원고의 탓을 하기도 했다.

이에 원고는 피고1에 대해 민법 750조에 기해, 피고2에 대해 민법 756조1항에 기해 위자료 청구를 했고, 법원은 피고들은 공동해 2천500만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선고했다. 피고들은 항소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됐다.

2. 판결 요지

피고1의 이 사건 불법행위가 피고2의 사무집행 자체로 볼 수는 없으나, 원고는 피고1이 담당하고 있던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채용된 것으로서 실질적으로 피고1의 업무 지시를 받고 있었던 점, 원고는 피고1의 소개로 피고2에 일용직으로 채용됐고, 그 과정에서 별도의 심사를 거치지는 않았던 점, 이 사건 불법행위는 비록 휴일이기는 했으나 원고와 피고1의 근무장소에서 피고2의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점 등에 비춰 보면, 이 사건 불법행위는 피고2의 사무집행과 관련성이 인정된다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피고2는 피고1의 사용자로서 이 사건 불법행위로 인한 민법상 사용자책임을 부담한다.

피고2가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있고, 성희롱·성폭력 예방 시행지침에 직장내 성희롱 금지 및 위반시 제재조치가 명시돼 있는 사실, 원고의 신고가 있자 피고2가 피고1을 직위해제 발령하고, 원고와 피고1을 조사해 사실확인 등을 거친 후 피고1을 해임하기로 징계처분을 한 사실이 인정되나, 피고1의 성추행의 정도 등에 비춰 보면, 위와 같은 조치만으로 피고2가 피고1이 성추행을 하지 않도록 그 선임 및 사무감독에 상당한 주의를 다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3. 판결의 의의

직장내 성희롱·성추행에 대해서 사용자가 책임을 지는지에 관한 법원의 태도는 다음과 같이 변경돼 왔다.

즉, 대한민국에 성희롱 문제의 포문을 열었던 서울대 성희롱 사건(대법원 1998. 2. 10. 선고 95다39533 판결)에서는 성희롱 행위는 사무집행 관련성이 없어 민법 756조 1항의 사용자책임이 인정되지 아니하고, 고용계약상 보호의무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도 가해자의 성희롱 행위가 은밀하고 개인적으로 이뤄지고 피해자로서도 이를 공개하지 아니해 사용자로서는 이를 알거나 알 수 있었다고 보여지지도 아니하다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 후 서울지방법원 2002. 11. 26. 선고 2000가합57462 판결의 경우 법원은 성희롱·성추행 중 관련 업체 직원 접대를 위해 피고 회사 본점 면세점 판촉과장이 마련한 회식자리에서 여직원으로 하여금 관련 업체 간부들 옆에 앉아 술을 따르고 새벽까지 블루스를 추도록 한 행위 등에 한해 피고 회사의 업무와 관련된 것이라고 봐 피고 회사가 사용자책임을 진다고 판단했다. 사용자의 고용계약상 보호의무는 직장내 근무시간은 물론 회사가 그 비용을 지원하거나 회사의 임원 등 간부들이 공식적으로 주재하는 회식 등에까지는 미치지만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동료 직원들 간의 사사로운 모임이나 비공식적인 부서 내 회식에까지 미친다고 할 수 없다고 봤다. 사용자에게 예견가능성이 있는 경우에 한해 사용자는 고용계약상 보호의무 위반 책임을 진다고 판단했다. 위 서울대학교 사건과 비교해 볼 때, 사용자책임을 제한된 범위이기는 하지만 인정했고, 고용계약상 보호의무가 미치는 범위에 관해 보다 상세한 기준을 제시했으나 고용계약상 보호의무가 미치는 회식 자리에서라도 성희롱 행위들이 공개적·집단적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은밀하게 행해졌다면 회사의 책임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 후 대법원 2009. 2. 26. 선고 2008다89712 판결의 경우, 업무수행에 수반되거나 업무수행과 밀접한 관련하에 이뤄지거나 다른 근로자에 대한 고용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고 있음을 이용해 그 업무수행과 시간적·장소적인 근접성이 인정되는 상황에서 피해자를 성추행한 경우에는 사용자의 예견가능성과 상관없이 사무집행 관련성을 인정해 사용자책임을 인정하되, 피고 회사가 이를 예상하기 쉽지 않고 불법행위가 은밀하게 이뤄진 점을 감안해 책임제한 사유로 참작했다. 이 판결은 위 서울지방법원 2000가합57462 판결에 비해 근무시간·공식 회식 외의 경우 및 예견가능성이 없는 경우(회식을 마친 후 다른 직원들이 귀가한 다음 원고만 남은 상태에서 성희롱, 근무시간에 원고를 원장실로 부르거나 업무상 출장을 가는 도중 또는 회식을 마친 직후에 피고 회사가 제공한 원고의 숙소에 들러 성추행하거나 간음)에도 사용자책임이 인정됐는 바 사용자가 책임을 지는 범위를 넓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서울중앙지법 2017. 3. 15. 선고 2016가단5172087 판결 역시 직장 상사가 퇴근길에 부하직원인 원고를 차에 태워 모텔로 데려가 강간한 사례에서 가해자가 원고의 승진·근무평정 등에도 관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으며, 피고 법인의 업무수행과 시간적·장소적 근접성이 있다고 하여 사무집행 관련성을 인정했다.

대상 판결 역시 최근 판례의 경향과 마찬가지로 이 사건 불법행위는 피고2의 사무집행과 관련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변론 과정에서 피고2가 예견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에 사용자책임을 지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재판부 역시 고민된다는 취지로 말했으나 결국은 사용자책임이 인정됐는 바, 회사의 예견가능성과 상관없이 회사 내에서 발생한 강간 등에 대해 회사에 대해 사용자책임을 물을 수 있어 직장 내에서 이뤄진 대부분의 강간 등 피해에 대한 구제가 용이해졌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판결이라고 할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판결로 인해 직장내 성 관련 범죄에 대한 교육 강화, 직장 내 성희롱이 없는 분위기 조성 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피용자의 강간 등 제 3자의 신뢰보호가 문제되지 않는 사실적 불법행위의 영역에서 판례가 외형이론을 적용해 사무집행 관련성을 넓게 인정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도 존재한다. 하지만 가해자는 사무집행의 기회를 이용해 불법행위를 할 수 있게 됐다는 점, 피해자로서는 성추행 행위 등이 없는 상태에서 근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는 점 등에 비춰 볼 때 법원의 태도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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