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영섭 재단법인 피플 미래일터연구원장

지난 8일 드디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세상을 참으로 떠들썩하게 했는데, 이 법으로 과연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법률 내용을 뜯어보면 왜 굳이 새로운 법을 만드느라 그 야단을 피웠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산업안전보건법으로도 ‘중대산업재해’에 대해서 경영책임자를 최고 7년 이하 징역형으로 벌할 수 있고 양벌규정에 의거 기업도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형량이 부족했다면 형벌의 상한을 올리거나 하한을 둘 수도 있고, 과태료를 대폭 올리거나 과징금으로 경제적 제재를 가할 수도 있었다.

새 법으로 이른 바 솜방망이 처벌을 해결할 수 있을까. 솜방망이 처벌은 중대사고 책임에 비해 선고 형량이 낮고 대기업 경영진은 처벌되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이는 법원의 양형기준이 턱없이 낮고, 대기업 경영진의 고의 내지는 과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데 기인한다.

책임의 명확성 등에 대해서 위헌 논란이 있었던 이 법을 과연 법원이 적극적으로 적용할지 여전히 의문이다. 당초 도입하려 했던 원인추정 조항이 빠진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법의 모델인 영국의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은 판례법(Common Law)으로는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을 처벌하는 데 한계가 있어 제정법(Civil Law)으로 기업의 죄를 구체화한 것이다. 무려 13년의 논의를 거쳐 공감대를 형성했다.

빅토리아 로퍼 노섬브리아대 교수는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 10년의 평가’에서 이 법을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한다. 기소가 늘고 벌금액이 높아지긴 했지만, 당초 기대했던 기소 건수에 못 미치고 중소기업에 집중되는 한계를 보였다는 것이다. 범죄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개념 정립을 위해 검찰의 훈련과 의지가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10여년 전 안전보건교육 활성화 방안을 찾기 위해 유럽안전보건청 관계자를 면담했다. ‘안전을 수업과목으로 정하면 된다’는 답을 하겠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서. 반응은 의외였다. 유럽도 같은 방법으로 접근했었는데 결과가 신통치 않더란다. 안전이 별개의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안전수업이 우리로 치면 ‘국영수’에 밀려나는 현상이 생기더란다. 결국은 안전을 경제·사회 등의 과목에 녹아들도록 하고 시민단체·교육자 등이 지속적으로 학교당국을 압박해야 했다는 설명이다.

흔히 안전에 대한 규제는 많으면 좋은 것으로, 밑져야 본전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규제빈국’일 때의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이미 세계 최고의 규제를 갖춘 지금, 실효성 없는 규제는 밑져야 본전일 수 없다. 규제에 대한 내성과 저항만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 ‘우리도 해냈다’고 자위할 것이 아니라, 이 법이 실효성을 갖도록 행정당국, 법원, 노사가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영국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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