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내년에도 일하고 싶다, 삐뚤빼뚤 직접 쓴 손팻말이 어느 빌딩 널따란 로비에 다닥다닥 붙었으니 겨울, 연말이다. 새벽 첫차 타고 출근해 쓸고 닦고 열심히 몸 부릴 줄만 알았던 사람들이 언젠가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그제야 인간답게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었다. 부당한 걸 부당하다고 말하는 일이었다. 변화가 적잖았다. 어느 날 계약해지 통보가 날아들었다. 노조 만든 죄라고 누구나가 말했다. 나이 적지 않은 청소노동자들이 파업,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싸움에 나섰다. 노예 취급하지 말라고 빨간색 현수막에 새겨 길가 나무에 걸었다. 평소 삼삼오오 모여서는 다닐 생각을 못 했던 반짝거리는 빌딩 로비에 철퍼덕 앉아 버텼다. 진짜 사장 찾느라 목이 쉬었다. 2020년 겨울, 전태일 50주기 노동존중 사회의 풍경이다. 정문 앞 작은 실랑이에 한동안 문이 잠겼다. 바람 새긴 팻말 든 청소노동자들이 나가질 못해 유리 벽에 다닥다닥 붙어 섰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