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17일 의총을 열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에 대해 의견을 수렴했다. 앞서 이낙연 대표는 임시국회 내 법안 처리를 공언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은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고 있는 것이다. 법 제정 여부가 아니라 법에 어떤 내용을 포함해야 하는지가 쟁점이 되는 분위기다. 법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법 취지를 충족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전문가와 노동계에서 알맹이가 빠져 누더기가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걱정하는 이유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조항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간과해선 안 될 8가지
권영국 변호사(해우 법률사무소)
 

▲ 권영국 변호사(해우 법률사무소)
▲ 권영국 변호사(해우 법률사무소)

대부분 중대재해는 기업이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소홀히 한 데에 기인한다. 기업이 안전의무를 위반해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의 안전을 침해한 경우 이를 기업범죄로 규정하고 경영책임자와 기업에게 엄중하게 책임을 묻기 위한 법이 바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다. 이 법이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고 지탄받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간과해서는 안 될 사항들이 있다.

1. 기업과 경영책임자에게 부과하는 위험방지 의무에 대한 포괄적인 규정방식은 유지해야 한다. 빈발하고 있는 산업재해나 세월호 참사, 가습기살균제 참사, 대구지하철 참사 같은 시민재해 유형에 따른 안전의무를 입법자가 일일이 세분해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입법기술상 불가능하고 현저히 곤란하므로 포괄적인 규정 형식은 불가피하다. 다만 불명확성의 위헌시비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포괄적인 의무규정과 각 분야별 개별법에 규정된 안전의무를 연계하는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

2. 모든 경영인들에 대한 연대책임이라는 비판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경영책임자의 범위를 ‘총괄적인 권한을 가지는 대표이사’와 ‘안전보건에 관여하거나 의사결정에 참여한 이사’로 제한하되, 책임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경영책임자 범위에 기업 회장과 같이 ‘해당 법인의 의사결정에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3. 법인에 대한 처벌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법인에 대한 가중처벌’ 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매출액이 수천억원 내지 수십조원에 이르는 대기업에게 20억원 이하의 벌금형만으로는 처벌 효과를 실현할 수 없다. ‘법인이나 기관의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조치를 소홀히 하도록 지시’하거나 ‘법인이나 기업이 안전보건조치를 소홀히 하도록 조장, 용인 혹은 방치해’ 사망 등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범죄의 고의가 중대하다. 따라서 법인을 무겁게 처벌할 수 있도록 전년도 매출액 혹은 수입액을 기준으로 벌금을 가중하도록 해야 한다.

4. 기업이 안전조치를 제대로 이행하는 것이 훨씬 이익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기 위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함께 도입해야 한다. 현재 안전비용에 비해 사람의 목숨 값이 너무나 싸게 평가되기 때문에 기업은 안전투자를 외면해 버린다. 따라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과 ‘사업주에 대한 입증책임 전환’을 통해 사고처리 비용이 훨씬 더 비싸게 제도를 바꿔야 안전투자 유인을 만들어 낼 수 있다.

5. 도급이나 용역계약시 원청사업주에게 반드시 하청업체의 안전조치에 대한 공동의무를 부과해야 한다. 경제계에서는 연좌제라는 비난을 하고 있지만 이는 결코 연좌제가 아니다. 원청사업주가 하청사업주의 안전 예산과 인원 그리고 시설을 좌우한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청업체의 안전조치에 대해 원청사업주에게 공동의무를 부여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항이다.

6. 처벌의 엄중성을 고려해 5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해 법 적용을 유예하자는 안이 거론되고 있으나 우리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주장으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 사고재해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추락사가 발생하고 있는 건설업체의 94%가 50명 미만 업체다. 만일 유예안이 수용되면 상당수 기업이 법 적용에서 제외돼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만들어질 뿐만 아니라 건설업에서는 기업 쪼개기를 통해 법망을 벗어나게 된다.

7. 생계형 점포나 소규모 소상공인이 다수 포함되는 다중이용업소까지 규제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문제제기가 있다. 이를 반영해 다중이용시설에 대해서는 화재사고를 막기 위한 소방시설 의무와 시설물의 붕괴를 막기 위한 안전의무를 준수하는 경우로 법의 적용을 제한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8. 공무원 처벌에 대해서도 그 범위가 불분명하고 과도한 처벌로서 소극행정의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문제제기가 있다. 하지만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세월호 사건 등을 고려할 때 공무원의 직무유기를 경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필수적이다. 다만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 안전보건에 관한 관리감독과 인허가 권한이 있는 공무원, 그에 대한 직접 감독 지위에 있는 상급공무원으로 범위를 한정하고 처벌의 수위를 낮추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라건대 이 법이 중대재해를 예방하는 알맹이법으로 탄생하길 소망한다.

경영책임자·원청 형사처벌, 반드시 포함해야
손익찬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 노동자건강권팀장)
 

▲ 손익찬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 노동자건강권팀장)
▲ 손익찬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 노동자건강권팀장)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관련해 경영계에서 가장 문제 삼고 있는 지점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무슨 의무를 지는지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이들의 항변은 지금의 법제도에선 개별법에서 정하는 의무만 준수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개별법상 의무조차도 규모가 큰 회사의 경우 경영자가 모든 사항을 감독할 수 없기 때문에 하급자에게 위임해 두는 경우가 보통이고, 그렇다면 그 하급자가 권한 행사에 따른 책임을 지면 되지 아무것도 모르는 경영자가 책임을 지는 게 합당하냐는 것이다. 수급인이 잘못한 것을 왜 도급인에게 책임 지우냐는 항변도 같은 논리의 연장선에 있다. 그리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이러한 태도는 경영진이 잘못을 했는지를 따져서 처벌하겠다는 게 아니라, 오로지 결과만을 놓고 무한책임을 지우는 ‘결과책임주의’적인 발생이어서 전근대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캐나다와 호주에서는 이미 경영책임자에게 형사책임을 지우고 있다. 그 나라에도 헌법이 있고, 명확성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는데 왜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공장의 오폐수처리 담당자 A가 부하직원에게 지시해 오폐수를 무단방류한 사건이 있다고 가정하자. 기존 법대로라면 직접 행위자인 부하직원과, 대표이사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A만 처벌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논의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중간관리자 A의 동기가 무엇인지, A에게 지시를 내린 윗선은 없는지까지 찾아내서 그 사람을 처벌해야 한다는 취지다. 혹은 A에게 아무도 지시를 내리지 않았어도, 회사 차원에서 비용절감을 위해 A에게 암묵적으로 지시를 했는지까지 찾아 내라는 것이다. 혹은 A가 회사를 위해서 ‘알아서 했다’든지, 회사를 위해서 한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일탈’을 했다고 변명하더라도 회사가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인적·물적 시스템을 충분히 갖췄는지까지 포착해서 윗선을 처벌하라는 것이다.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더라도, 꼬리가 아닌 몸통을 수사해서 처벌하라는 것이 이 법의 요체다. 그렇기 때문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생기더라도 결국에는 경영진이 어떠한 의사결정을 했는지 혹은 하지 않아서 중간관리자가 그런 행위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수사해서 죄를 묻는 길고 어려운 싸움은 어차피 필요하다.

그런데 사실은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으로도 대표이사의 처벌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하지 않아 왔을 뿐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에서도 수사만 철저히 이뤄진다면, 설령 안전관리자가 선임돼 있었다고 하더라도 대표이사의 의사결정이 있는지를 찾아 내서 처벌하는 것이 이론상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또, 법원은 형법의 업무상과실치사상죄에서의 ‘업무’를 ‘사람이 사회생활상의 지위에 기해 계속해 행하는 사무’라고 폭넓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을 위험에 빠뜨린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서 대표이사가 관여한 바가 있다면 그를 처벌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규모의 사업장에서는 지금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대표이사가 처벌받고,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같은 시민재해 사건에서도 대표이사가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처벌받은 전례가 있다. 따라서 의무범위가 폭넓어서 경영진이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 알 수 없고 수급인의 잘못까지 왜 내가 책임져야 하냐는 비판은 타당하지가 않다. 의사결정이 윗선에서 이뤄졌으면 그에 따라서 책임을 지라는 것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요구이기 때문이다.

또한 영세사업자나 자영업자는 법을 지킬 능력이 없음에도 같은 잣대로 법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지적도 있다. 이를 반영해 더불어민주당 의원 법률안에서는 상시 50명 미만을 고용하는 사업장에 대한 적용유예 기간을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는 끔찍한 재해들은 대개 엄청난 설비투자를 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것들이 아니다. 피난로에 물건을 쌓아 뒀거나, 아주 기본적인 수칙조차도 지키지 않아서 발생한 사고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영세사업장에서의 사고는 지금도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대표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가능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작동하고 있다. 이 법으로 인해서 영세사업자 등이 갑자기 고통을 받는게 아니다. 오히려, 지금 법으로는 영세사업자 등만 고통을 받고 원청은 법망을 빠져나가기 때문에, 그 원청을 처벌하라는 것이 이 법의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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