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노동조합 활동을 오래 한 사람들에게도 생소한 제도가 하나 있다. 공동근로복지기금이다. 2016년에 제도가 도입됐으나 최근에 와서야 조금씩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아직 사업주들의 관심에 그치고, 이를 활용하기 위한 노동계 관심은 미미하다. 사내근로복지기금 혜택을 누리고 있는 노동조합에서는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내근로복지금 혜택을 누릴 수 없거나 수준이 미약한 중소·영세 업체 노동자들에게는 복지공급 확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

제도 도입 이후 2019년까지 80개에 불과하던 공동근로복지기금이 올해 상반기에만 116개 설립됐다. 여러 가지 유형이 있지만 협력업체들의 공동근로복지기금에 원청이 같이 참여하는 유형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복지기금을 통해 제공되는 복지는 아직 아주 기초적인 지원이다. 명절 기념품, 노동절과 회사 창립기념일 기념품, 경조비 지원 등이다. 원청이 참여하는 경우 제한적으로 학자금이 지급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정도 수준으로는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의 복지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공동근로복지기금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은 말할 것도 없이 원청 대기업의 참여가 절실하다. 이달 초 근로복지기본법 개정으로 사내근로복지기금법인이 공동근로복지기금을 지원하거나, 공동근로복지기금에 참여하기 위해 기금법인을 해산하는 것이 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대기업 노동조합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지 않는다면 취지만 좋은 법률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아직 대기업 노동조합들이 이 개정 법률에 어떠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기사나 자료를 찾기 어렵다. 노동계에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현상이다.

사실 이번 글에서 공동근로복지기금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공동근로복지기금 제도를 활용하기 위한 경기도 안산의 사단법인 ‘일하는사람들의생활공제회 좋은이웃’의 노력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예전 반월·시화 공단으로 불렸던 안산·시흥 스마트허브는 국내 최대 영세기업 밀집 공단이다. 위험한 작업환경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최저의 노동조건 속에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지역이다.

지역 운동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 보자고 해서 2015년 ‘좋은이웃’이라는 이름을 가진 지역생활공제회가 탄생했다. 현재 750여 가구가 출자금과 매월 공제회비를 내고 참여하고 있다. 좋은이웃에서는 공동구매·소액대출 등 생활안정 사업과 경비·청소노동자 조직화와 쉼터 개선 등의 권익증진 사업을 하고 있다. 좋은이웃은 지금까지의 활동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이기 위해 내년부터 좋은이웃 시즌2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공동근로복지기금을 활용한 지역공제회 실현이다.

좋은이웃에서 실시한 안산지역 50명 미만 소규모 사업장 공동복지 지원정책 수요조사에 따르면 사업주의 복지 제도가 중요하다는 인식은 84.2%로 나타났으나, 공동복지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57.9%로 나타났다. 공동복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공동복지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사업주 응답이 36.8%나 돼 제도가 잘 설계되면 많은 참여를 이끌어 낼 것으로 보인다. 설문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경우 복지 제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비율이 88.1%였고, 공동복지를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64.4%로 나타났다. 아직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29.2%로 나타났다. 공동복지 추진시 관심 가는 복지정책은 주택 및 주거자금 지원, 자녀 교육 및 교육비 지원, 여가 및 문화생활 지원 순으로 나타났다.

좋은이웃에서는 이 설문 결과를 토대로 공동근로복지기금을 활용한 안산지역 모델에 대한 사업주 설명회와 함께 좀 더 심층적인 수요 파악에 나서고 있다. 좋은이웃의 시도는 복지기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50명 미만 소규모 사업장의 공동 모델을 마련한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공제회모델로 실현될 경우 노동복지에서 노동자 주체성을 확보한 가운데 광범위한 이해관계자를 묶어 낼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노동복지의 자주적인 성격도 분명히 하게 된다. 첫길을 내는 이들에게 박수를 아끼지 않았으면 한다.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htkim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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