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석우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대상판결 : 수원지법 2019노4120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1. 사건 개요

피고인은 경기도 안성 소재 자동차부품 회사 노동조합 지회장이다. 위 회사에는 총 3개 노동조합이 설립돼 있다. 회사는 그중 경주공장 노동조합과는 개별교섭을, 안성 공도공장 2개 노동조합과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친 후 ‘교섭대표노동조합’과 교섭을 해 왔다.

피고인이 대표자로 있는 금속노조 지회는 2018년 단체교섭에서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쳐 ‘교섭대표노동조합’이 됐는데,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하면서 소수노동조합 조합원들을 배제했다. 소수노동조합 대표자는 피고인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41조1항 후문 위반으로 중부지방고용노동청 평택지청에 고소했다. 피고인은 수사절차에서 노조법 규정을 몰랐다며 모든 혐의를 인정했고, 담당 근로감독관은 위 사건을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수원지검 평택지청 검사는 추가수사 없이 수원지법 평택지원에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했고, 약식명령은 그대로 발령됐다. 피고인은 벌금이 너무 과하다는 이유로(양형부당) 변호인 없이 정식재판을 청구했으나, 1심법원은 약식명령 그대로 판결을 선고했다(수원지법 평택지원 2019. 7. 12. 선고 2019고정167 판결).

담당변호사는 피고인과 다른 사건으로 상담을 하다가 우연히 위 판결의 존재를 알게 됐고, 상담 과정에서 경주공장에 노동조합이 하나 더 있다는 점, 회사가 노동위원회에 교섭단위 분리신청을 했던 적은 없었다는 점을 파악하게 돼 급히 항소했다.

2. 쟁점

이 사건의 쟁점은 사용자가 특정 노동조합에 한 개별교섭 동의의 효력범위와 임의로 진행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의 유효성이다. 만약 노조법에서 규정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가 아닌 임의로 진행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라면, 노조법상 ‘교섭대표노조’의 대표자가 아닌 1개 노조의 대표자에 불과한 피고인에게는 노조법 41조1항 후문에서 규정한 소수노조 조합원들을 찬반투표에 참여시켜야 하는 의무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3. 판결 요지

대상 판결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수원지법 2020. 11. 13. 선고 2019노4120 판결).

1) 노조법의 관련 규정에 의하면 노조법 29조의3 2항에 따라 노동위원회로부터 정식으로 교섭단위 분리결정을 받지 않은 사용자가 복수노동조합 중 어느 노동조합과 개별교섭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이때 사용자는 개별교섭을 원하는 노동조합을 차별적으로 분리·선택할 수 없다. 즉 복수노동조합 중 하나의 노동조합과 개별교섭에 동의하면 다른 모든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개별교섭을 해야 하는 것이다.

2) 회사가 경주공장에 대해 교섭단위분리결정을 받은 적이 없는데도 경주공장에 있는 노동조합과 개별교섭을 진행한 사실이 인정된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모든 노동조합과 개별교섭을 진행해야 한다. 다른 2개 노동조합이 외관상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을 거쳐 단체교섭을 진행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위 2개 노동조합의 편의에 따라 이루어진 것일 뿐 특정 노동조합이 노조법 29조의2에서 정한 ‘교섭대표노동조합’의 지위를 취득한 것이 아니다.

3) 따라서 특정 노동조합의 대표자인 피고인이 쟁의행위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해당 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의 투표만 거치면 될 뿐 다른 노조의 조합원들까지 포함시킬 이유가 없다.

4. 검토

고용노동부는 2011년 발행한 복수노조 Q&A에서, 노조법은 교섭창구 단일화에 따른 1사 1교섭을 원칙으로 하면서 예외적으로 아래와 같은 경우 개별교섭을 허용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①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노조만 교섭이 가능하므로, 그렇지 않은 노조는 개별교섭요구 자체를 할 수 없다.

②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노조라도 노동조합 간에 자율적으로 교섭대표를 선정할 수 있는 기간(14일 이내) 내에서만 가능하다.

③ 개별교섭을 하려면 사용자가 동의해야 하나, 사용자는 개별교섭을 원하는 노동조합을 차별적으로 선택할 수 없다. 즉, 하나의 노동조합과 개별교섭에 동의하면 모든 노동조합과 개별교섭을 하여야 하므로 사용자도 동의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할 필요가 있다.

④ 사용자의 개별교섭 동의는 당해 단체교섭에 대해서만 적용되며 이후 새로운 단체교섭에 대해서는 새로운 동의가 필요하다.

한편, 위 Q&A에서는 노조법 29조의3에 규정된 교섭단위 분리의 경우 사용자가 임의로 하거나 노동조합과의 합의를 통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노동위원회가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 고용형태, 교섭관행 등을 고려해 전문적이고 엄격한 심사를 통해 분리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와 같이 노조법 29조의2에서 규정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는 같은 사업장 내 복수의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 전부 단일화를 하거나, 아니면 전부 개별교섭을 하거나의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으로 설계돼 있다. 이 사건과 같이 특정 노동조합과 개별교섭을 하고, 나머지 노동조합들과는 창구단일화 절차를 통해 교섭을 진행하려면, 노동위원회로부터 교섭단위 분리결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회사는 교섭단위 분리결정을 받지 않고 임의로 경주공장을 별도의 교섭단위로 봤다. 그리고 노조법에서 정한 시한인 단체교섭요구 노동조합 확정공고일부터 14일 이내 경주공장 소재 노동조합과의 개별교섭에 동의하고, 나머지 노동조합들은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법원은 명백히 이를 노조법에 규정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가 아니라고 봤다. 그리하여 피고인에게 노조법상 ‘교섭대표노동조합’의 대표자로서의 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수사과정과 1심 공판에서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선처를 구한 것은, 노조법상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의 법리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 피고인도, 고소인 노동조합의 대표자도, 회사도 몰랐다. 심지어 근로감독관과 담당 검사, 1심 판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기소와 판결을 했다. 이와 같이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는 전반적으로 너무 어렵고 복잡하다. 시행된 지 벌써 10년이 다 돼 가는데도 현장에서는 여전히 혼란스러워한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소수노동조합들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사실상 형해화하고 있다. 사용자와 대면할 기회 자체가 박탈되고, 교섭대표 노동조합 소속 다수 조합원들의 찬성 없이는 쟁의행위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중대한 법익침해가 있는데도 특별히 어떠한 공익이 있어 이 제도가 유지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지난 10년의 시행착오를 인정하고, 이를 완전히 폐기하는 것만이 해답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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