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는 3·4일 회의를 열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을 포함해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법 개정안을 심의한다. 여당은 정기국회 내 처리를 공언해 왔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국민의힘과 재계가 반대하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이 노동기본권을 오히려 제약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비준동의안과 법개정안을 연내에 처리하지 못하면 물 건너 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문재인 정부 대선공약이자 국정과제인 ILO 기본협약 비준 여부. 막바지로 달리고 있다.

비준·법개정 올해 안에 동시 처리해야
이상윤 한국노총 정책2본부 차장

이상윤 한국노총 정책2본부 차장
이상윤 한국노총 정책2본부 차장

이번 정기국회는 사실상 ILO 기본협약 비준과 노조법 등 관계법 개정을 위한 마지막 기회다. 물론 협약비준을 먼저 처리한 후 1년의 유예기간을 통해 노조법을 포함해 국내법을 개정할 수 있다. 하지만 내년 대선 전초전 격인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곧바로 이어질 대선 국면 등을 감안하면, 노조법 개정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올해 내에 반드시 협약 비준과 함께 이에 충실한 노조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노조법 개정 기본방향은 더 많은 노동자에게 노동 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사업장·산업별로 노사자치 내지 협약자치가 제대로 발현할 수 있도록 행정권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부 입법안은 여전히 특수고용 노동자를 노동기본권 향유 주체로 포섭하지 않고, 노사자율에 맡겨야 할 노조 임원 자격과 전임자 임금지급 등을 규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파업시 직장점거 금지, 비종사자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제한 등 ILO 기본협약에 위배되는 독소조항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 노사분쟁과 갈등은 ‘치안경찰법’이라고도 불리는 사용자 편향적·행정편의적인 노조법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 입법안은 절대 노사 중립적인 법안이라고 할 수 없다.
ILO 기본협약 비준과 노조법 개정 문제는 이제 국제사회에서의 우리나라 위상 문제를 넘어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분쟁으로까지 비화했다. 그야말로 눈앞에 닥친 현실적 문제다. 지금 국회의 역할은 분명하다. 더 이상 정치적 상황을 따지며 법안 심의를 미루지 마라. 정부안의 문제점을 협약 취지에 맞게 수정·보완해 법안처리에 나서야 한다. 지금은 ‘선비준 후입법’이니 ‘선입법 후비준’이니 따질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 정부 입법안에 대해 노사 모두 반대한다는 이유로 논의를 지체할 한가한 상황은 더더욱 아니다.

서두르지 말고 사용자 대항권 논의하자
장정우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장정우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장정우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ILO 기본협약 비준을 명분으로 해고자·실업자 단결권을 보장하고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규정을 삭제하는 개정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한다면 노조측으로 힘의 쏠림 현상이 심화한다. 기업의 노사관계 부담은 더욱 가중돼 국내 경영환경은 크게 악화할 수밖에 없다.
국회에 계류된 노조법 개정안이 과연 우리나라의 갈등적·대립적 노사관계 현실을 바로잡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노동권 과보호를 개선하기 위한 고민을 담고 있는가. 정부 개정안 내용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기업별 노조 중심 체제인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특수성과 노조측에 기울어진 노사관계의 현실을 고려했다면, 개정안에는 사용자의 대항권 보완이 함께 담아야 했다. 또한, 우리 노사관계의 오랜 병폐로 지적된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관행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은 당연히 제외했을 것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한·EU FTA 규정 등을 이유로 법 개정에 앞서 ILO 기본협약의 조속한 비준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맞지 않다. 한·EU FTA의 ILO 기본협약 관련 사항은 노력조항으로 제재의 성격이 아닌 권고의 성격을 가진다. 더욱이 노조법 개정 없이 ILO 기본협약을 먼저 비준한다면 국내법과 협약의 충돌로 노사관계에 큰 혼란을 불러올 것이다.
지금은 노조법 개정이나 ILO 기본협약 비준을 서두르기보다는 법 개정이나 협약 비준에 따른 사회경제적 영향을 살피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사용자 대항권 보완에 대해 논의해야 할 때다. 법 개정이나 협약 비준은 그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매년 국제평가에서 최하위권 성적을 면치 못하고 해외투자 유치의 걸림돌로 지적되는 노사관계를 선진화하고 노사 간의 균형을 회복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비준을 먼저 하거나, 정부안 폐기하라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

‘선 노동개악 후 비준’. 정부와 여당의 입장이다.
ILO 기본협약 비준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기본 인권을 국내에서 효과적으로 적용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국내법을 협약에 부합하도록 개정하겠다고 미리 약속하는 것이고, 이 약속이 잘 이행되고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 ILO 헌장이 정한 감시감독 절차를 수락하는 것이다. 따라서 협약을 비준하면서 협약에 반하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은 국제적인 사기극이다.
ILO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87호)와 단결권 및 단체교섭 협약(98호) 비준의 선결 조건으로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노조법 개정안은 두 가지 점에서 문제다.
첫째 그동안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가 명시적으로 결사의 자유 원칙에 어긋나므로 폐지나 개정이 필요하다고 권고한 조항을 그대로 두고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자영업자를 노동법 적용에서 배제하는 2조1호,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조로 보지 않는다는 2조4호 라목과 설립신고 과정에서 조직의 구성이나 규약 등을 행정당국이 심사할 여지를 두고 있는 12조가 대표적이다. 정부안에는 이에 대한 개정사항이 전혀 없다.
둘째 노조활동에 대한 제약을 오히려 추가하고 있다. 해고자·실업자의 노조가입을 허용하는 것에 대한 ‘보완 장치’로 사용자들에게 노조활동 제약 명분을 주는 조항들이다. 종사자와 비종사자를 구분한 사업장 출입 제한, 대의원·임원 출마 배제로 비종사자의 조합활동을 제한했다. 단협 유효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사업장 점거 방식의 파업을 전면 금지했다.
따라서 ILO 기본협약 비준이 사기극이 되지 않으려면 정부안은 폐기해야 한다. 선택지는 두 가지다. 그동안 고수해 온 법 개정·협약비준 동시추진 방침을 포기하고 비준을 먼저 하거나, 결사의 자유 위원회가 명시적으로 권고한 사항만 반영한 법 개정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다.

마지막 기회, 연내에 반드시 처리해야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회가 ILO 기본협약 비준 자체를 반대한다면, 정책적인 결단이므로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비준을 반대한다면 노조법을 개정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하지 않는다면 노조법은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
법을 개정하려면 기본협약과 비준 취지에 맞게 해야 한다.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내용으로 법을 개정하면 의미가 없다. 그러려면 비준도 법 개정도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맞다. 어정쩡하게 여야가 주고받아 절충하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법 개정 필요성은 계속 남으면서 혼란만 생긴다. 정치권이 그처럼 번거롭고 무용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정기국회에서 비준동의안과 개정안이 통과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본다. 하지만 올해 안에는 결판이 날 것이라고 본다. 지금까지 노조법 개정 전례를 보면 항상 연말 임시국회에서 통과했다.
정부와 여당이 제출한 법을 중심으로 통과시켜야 한다. 정부와 여당안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노사정이 오랜 기간 논의를 거쳐서 나온 결과물이다. 이것을 무시하고 원점에서 시작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만에 하나 올해 비준동의안과 개정안을 처리하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정부와 여당이 져야 할 것이다. 당연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첫 번째, EU와의 통상마찰은 당연히 예상되는 결과다. 이런 점을 고려해 법 개정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ILO 기본협약 비준은 현 정부 대선공약이자 국정과제다. 이것을 이행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정치적 부담은 여당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이번이 이번 정권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노조법을 개정할 수 있는 기회다. 임시국회를 지나면 노조법 개정이나 협약 비준 기회의 창은 닫혀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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