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대상판결 : 서울행정법원 2020. 10. 28. 선고 2019구단66203 판결

1. 사건의 개요

원고(남성, 발병 당시 51세)는 1987년께 지역농협에 입사해 2010년 3월1일부터 경제상무로 근무하다가 2015년 1월에(토요일) 가족 모임 도중 뇌출혈로 쓰러졌다. 원고는 뇌출혈이 업무상재해임을 이유로 2015년 5월께 피고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 신청을 했으나 불승인 처분을 받았다. 이후 2018년 1월1일에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고용노동부 고시 제2017-117호)이 개정됐고, 공단은 원고가 요양급여 재청구 대상에 해당함을 알렸다. 이에 원고가 다시 요양급여를 청구했으나, 공단은 개정 고시에 따르더라도 지급대상이 아니라며 다시 불승인 처분을 했다(이하 ‘이 사건 처분’). 그리고 서울행정법원은 업무관련성이 인정된다며 이 사건 처분을 취소했고 판결은 확정됐다.

2. 대상판결의 요지

서울행정법원은 ① 노동부 고시는 대외적 구속력을 갖는 법규명령이 아니므로 고시상 업무시간 기준에 미달하더라도 업무상질병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는 점 ② 원고가 책임져야 했던 거래대금을 예정일까지 회수하지 못해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상당했던 것으로 보이는 점 ③ 업무시간 산정에 관해 객관적 기록이 남아 있지 아니하지만, 주말에도 수시로 출근한 사정으로 미뤄봐 공단이 조사한 시간보다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이는 점 ④ 원고의 고혈압과 흡연력이 발병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대법원 판례 법리상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서 질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켰다면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하고, 또 당해 근로자의 신체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 등의 사정을 종합하면, 원고의 경우 업무상재해로 인정함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3. 판결의 의의

가. 고시가 개정된 이유는 시간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도 평가하라는 것이다.

종전의 노동부 고시에서는 과로성 질환 인정에 있어서 1주 60시간(12주 평균) 또는 1주 64시간(4주 평균)을 초과하는지를 살펴보고, 또 질적 요소도 고려하라고 정했다. 그러나 종전 고시는 인정기준으로 요구하는 업무시간이 지나치게 길고 의학적 근거도 부족하며, 질적 요소도 실질적으로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어서 문제라는 비판이 계속됐다. 심지어 근로복지공단은 종전 고시에서 정한 업무시간 기준을 초과한 경우에도, 업무강도가 약하다는 등의 이유로 불인정하는 예도 있었다.
노동부는 위와 같은 비판을 수용해 인정 기준상 업무시간을 줄이고, 시간 외의 질적 요소도 반영되게끔 고시를 개정했다. 업무시간이 1주 평균 52시간(12주 평균)을 초과하고 8가지 업무부담 가중요인 중 1가지가 있다면 업무관련성이 “강하다”고 정하고, 1주 52시간을 초과하지 않더라도 가중요인이 다수 있다면 업무관련성이 “증가한다”는 내용을 추가한 것이다.
개정 고시의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2018년도에 인정된 뇌심질환 산재 인정자는 1천153건으로 전년도 대비 378건이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1천460건이 인정돼 전년 대비 307건이 증가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여전히 고시상 업무시간 기준만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 처분서를 보면, 공단은 원고가 일상적으로도 벼와 채소의 수매, 하나로마트 사업 등 경제사업을 총괄하므로 일상적으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렸음을 인정했고, 사고 발생 직전까지는 본인이 담당했던 사업에서 거액의 벼 미수금이 회수되지 않아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점도 인정했다. 그런데도 단지 고시상 업무시간에 미치지 않고 기존 질병이 있다는 이유로 불승인 처분을 했다. 그러나 법원은 위와 같은 사정을 고려하면 업무관련성이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해 이를 바로잡았다.

나. 업무시간 산정에만 매달린다면, 시간 산정이 곤란한 경우에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이처럼 개정 고시에도 근로복지공단이 업무시간을 절대적인 인정 기준으로 활용하고 있어서 업무시간은 여전히 실무상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그런데 노조와 노동자의 힘이 약한 사업장일수록 업무시간은 제대로 기록되지 않고 그에 따른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다. 또는 업무 특성상 업무시간 산정이 곤란한 정신노동이나 외부 영업직 같은 3차 산업은 애초에 ‘객관적으로’ 업무시간이 기록되지 않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혹은 코로나19 같은 사유로 재택근무가 잦아지는 추세에서는 더더욱 업무시간 산정에 곤란함이 예상된다. 아니면 이 사건 원고와 같이 관리직인 경우에는 근로기준법상 법정수당 지급대상이 아니어서 출퇴근을 별도로 기록하지 않아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물론 근로복지공단 지침에서는 “재해조사 내용상 업무시간 및 업무상 부담요인과 관련한 근로자의 진술에 대해 명백하게 반증할 만한 근거가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진술을 바탕으로 업무시간 및 업무상 부담요인을 판단”하라고 정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부 고시도 위와 같은 경우를 예상해, 업무시간만 보지 말고 업무강도·업무량·업무 내용 등을 종합해 평가하라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일선에서는 아직도 근로시간 산정이 곤란한 경우라면 9시 출근~8시 퇴근으로만 업무시간이 조사되는 경우도 많다. 이 사건도, 원고가 토요일에 나와서 오전 근무를 했다거나, 벼의 보관상태를 보기 위해서 주말에 당직 근무자와 함께 벼 사일로를 돌아봤다는 등의 구체적인 진술은 무시됐다. 이에 관한 원고의 주장 또한 법원이 받아들여서 공단이 조사한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근무한 것으로 보인다고 인정한 것이다.
업무시간 산정이 불가능하거나 곤란한 직종도, 업무의 내용과 성격을 구체적으로 파악해 업무시간을 산정함이 타당하다. 업무시간을 산정함이 곤란하다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시행령과 고시의 취지를 고려해, 업무시간 외에도 업무량·업무강도·업무 내용·업무 질을 종합해 평가함이 타당하다. 고시에서 업무시간을 정한 이유는 ‘시간’의 특성상 일관된 판단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기준이기 때문이지, 그것만 보라는 의미가 아니다.

다. 법리적으로는 전혀 새로운 판결이 아니다.

노동부 고시는 법규명령적 성격이 없으므로 고시상 업무시간 기준에 미달했다고 업무상재해가 아닌 것으로 볼 수 없다는 판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법원의 기존 판결례를 보면 아예 업무시간에 관한 언급도 없이 업무 내용과 강도, 스트레스를 근거로 업무관련성을 인정한 사례도 상당하다. 개정 고시에서 업무시간 관련 기준을 상세하게 정했기 때문에 마치 이 기준에서 벗어나면 인정하면 안 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법원은 고시 개정 전과 후에 변함없이 고시상 기준이 대외적 구속력이 없고 또 업무시간 외의 사정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의 개별적인 처분 내용은 사법부의 판단기준에 가까워지도록 앞으로도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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