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너머에 감이 탐스럽게 익어가는 계절,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노사관계에서 가을은 제도개선과 관련한 쟁점이 부각되고 집회가 많이 열리는 계절이다. 올해도 계절의 주기는 변함없이 돌아와 노동시간단축 논의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고, 이번주와 다음주 일요일엔 양대노총의 대규모 노동자대회가 잇따라 열린다.

올해 제도개선논의와 관련해서 가장 큰 농사는 노동시간단축논의였다. 이 노동시간단축논의 와 관련해 기후조건은 변덕이 심했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노동시간단축논의는 국민들 다수의 관심과 지지 속에 순풍을 받으며 출발했고, 이런 분위기는 아직도 남아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경기침체라는 역풍을 맞고 있다. 게다가 노동시간단축논의의 가장 큰 힘이었던 정부의 추진력은 집권후반기 국정장악력 이완현상과 지난 재보선 선거에서 여당의 패배 등으로 약화되고 있다. 이런 기상변화로 노동시간단축논의는 하루하루 미뤄지고, 이제 국회일정을 감안하면 올해 법개정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노동시간단축논의는 아직도 진행형으로 남아 있고, 정부에서는 올해 안에 노사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놓지 않고 있다. 노사합의가 이뤄질 경우 그자체로 정치적 효력을 갖게 된다. 노사합의가 이뤄지면 올해 법개정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년이나 다음 정권에서도 규정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노사합의가 가능할까. 지난 2일에는 노동시간단축관련해 노사정 고위급 당사자들이 회동을 했다. 이날 회동은 논의가 아직 진행형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노동부에서는 노동시간단축논의와 관련해 함구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여기에는 여론이 조용해야 노사가 결단을 내리는데 더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이 담겨 있는 듯하다. 실제로 노동시간단축논의에 참여했던 관계자들은 노동시간단축과 관련해 논의는 할만큼 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 지도부의 결단만 남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책임을 져야하는 지도부의 입장에서 보면 작은 차이도 엄청난 부담일 수밖에 없다. 한국노총은 지도부는 이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번 주에 열리는 시도지역본부 의장회의와 시도지역지부장회의에서 내부 의견수렴절차를 밟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내부 의견수렴절차와 별개로 지도부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는 중요한 변수다. 노동시간단축에 대한 한국노총 내부의 의견분포가 찬반 양론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마지막 변수는 지도부의 몫이다. 아직까지 한국노총 지도부는 현재까지 제시된 노동시간단축 협상안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고민은 경영계도 마찬가지다. 경영계 내에서도 최근 경기침체를 이유로 노동시간단축 시기상조론이 힘을 얻고 있는 분위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여당의 재보선 패배로 정부여당의 국정장악력 약화로 경영계의 목소리는 더 커질 가능성이 크고, 이것은 경영계측 대표의 결단을 어렵게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재 한국노총은 18일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대규모 노동자대회를 계획하고 있다. 한국노총으로서는 한편으로는 내부 조직력을 결집시키면서 정부를 압박하려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런 일정을 감안해 본다면 한국노층은 18일까지는 노동시간단축 관련해서 어떤 식으로든 태도를 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고민스런 결단일수록 최후의 순간에 내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때까지 노동시간단축과 관련한 물밑 논의와 한국노총 지도부의 고심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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