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김영주 사무금융노조 현대카드지부장, 문상수 노조 현대커머셜지부장, 김봉현 노조 현대캐피탈지부장. <정기훈 기자>

서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국회를 마주보고 현대카드·현대캐피탈·현대커머셜 본사가 한 건물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 10층에는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연봉킹’이 일한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다. 그는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현대커머셜 등 현대차그룹 금융 3사의 대표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현대 금융 3사가 겸직을 엄격히 금지하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사지배구조법)에서 예외로 인정받은 여수신업종이라 가능한 얘기다. 너도나도 어려움을 호소하던 코로나19 시국에서도 그는 예외였다. 올해 6월까지 상반기에만 그가 가져간 연봉이 성과급을 포함해 26억6천만원이다.

11일 오전 이 건물 1층에 노동자 30여명이 모였다. 김영주 사무금융노조 현대카드지부장·김봉현 노조 현대캐피탈지부장·문상수 노조 현대커머셜지부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이 정 부회장에게 교섭 참가를 요구하며 대치했다. 이재진 사무금융노조 위원장과 김준영 노조 여수신업종본부장도 참석했다. 이들은 2시간이 넘도록 1층 게이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노조는 지난 5일 정 부회장에게 대표교섭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고, 이날도 대표교섭 요청 공문을 쥔 채 진입을 시도했지만 가로막혔다. 정 부회장은 물론이고 회사 관계자 누구도 그들을 맞이하지 않았다. 최근 몇 달씩 줄기차게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노조를 회사는 문전박대했다. 이날 진입을 시도하며 연좌농성을 하는 현대 금융 3사 지부장을 <매일노동뉴스>가 만났다.

대표교섭 요구한 노조 집행부 문전박대한 현대 금융 3사

- 오늘도 대표교섭이 이뤄지긴 어려워 보인다. 교섭 상황이 어떤가.

김봉현 지부장 : 진척이 없다. 사용자쪽은 성실하게 교섭한다고 주장하는데, 시간만 보내다 간다. 현대캐피탈지부는 15차례나 실무교섭을 했지만 논의의 진척이 없다. 코로나19 확산까지 겹쳐 교섭하는 게 몹시 어렵다. 실무교섭이라고 해 봤자 사용자쪽은 의사결정권자가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교섭이 무의미한 실정이다. 대표이사인 정 부회장이 이런 상황에 관심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상황을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문상수 지부장 : 교섭을 하면서 노조안을 전달하고, 사용자쪽 안을 받았는데 내용이 놀라운 수준이다. 각종 노조활동에 개입하고 승인을 받으라는 어처구니없는 요구였다. 대표교섭을 줄기차게 요구해도 실무교섭으로만 풀겠다고 맞선다. 몇 개 조항에 합의했다고 말하는데, 그 합의안이라는 게 ‘부당노동행위를 하지 않는다’ ‘교섭 합의를 준수한다’ 같은 원론적인 수준이다. 이런 것을 합의했다며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지금 보다시피 실질적인 교섭 요구에는 응하지 않고 있다.
 

▲ 김봉현 노조 현대캐피탈지부장. <정기훈 기자>


- 사용자쪽 요구에 어떤 문제가 있나.

김영주 지부장 : 독소조항이 많다. 노조의 홍보활동을 위한 게시물이나 선전물을 3일 전에 사용자쪽에 사전 승인을 받으라고 하고, 특정인을 비방하는 문구는 허가해 줄 수 없다고 한다. 이것 자체가 노조활동과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부정하고 무너뜨리는 요구다. 다른 노동자와 소통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활동도 금지하라고 요구한다. 사내 동호회도 쓸 수 있는 회사 이메일을 노조는 쓸 수 없다고 우긴다. 본사 안에는 노조사무실도 들일 수 없다고 한다. 노조사무실을 실제 노동자들과 동떨어진 곳에 두고 말려 죽이겠다는 의도 아니겠나. 실무교섭이라고 앉아 보면 인사팀장과 과장급 인사, 노무사 등이 오는데 했던 이야기만 되풀이하다가 간다.

김봉현 : 쟁의행위를 할 때 명단을 제공하라는 요구까지 한다.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이라는 개념조차 없는 모양이다. 명단을 회사에 제출하라는 요구 자체가 헌법과 노동관계법 취지에 불합치하는 것 아닌가.

노조는 이 같은 요구를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단체교섭권은 헌법상 노동자의 권리인데 사용자쪽이 오히려 노조의 활동을 제약하고 규제하는 내용의 조항을 요구하는 것은 단체교섭권을 사용자의 권리로 오인하고 단체교섭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구조조정으로 900여명 퇴사

- 노조를 결성한 배경은 뭔가.

김봉현 : 무분별하고 일방적인 구조조정 때문이다. 현대캐피탈은 2018년 노동자 450명이 구조조정당했다. 권고사직 방식으로 퇴사했다. 비슷한 시기 현대카드와 현대커머셜 퇴사자를 합하면 962명이다. 이 많은 노동자가 한순간 잘렸다. 현대 금융 3사는 제대로 된 인사제도가 없다. 오로지 관리자의 판단에 의해 역량을 평가받는다. 그러다 보니 관리자의 전횡이 많았다. 요새는 좀 개선됐다고 하는데 미비한 부분이 곳곳에 있다. 이런 잘못된 제도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해 지난해 9월27일 노조를 설립했다.

김영주 : 명분이 없는 구조조정이었다. 지난해 정부가 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추진했다. 현대카드는 그 시기에 인력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400여명이 나갔다. 다른 카드사는 인력감축을 하지 않았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현대카드에는 희망퇴직 프로그램이 없다. 당시 인력 구조조정은 고령자와 저성과자를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방식이 폭력적이었다. 그들을 한 부서에 몰아넣고 인사팀에서 개별적으로 접촉해 면담했다. 어느 정도 월급을 챙겨 줄 테니 나가라고 설득했다. 지역에 있는 노동자에게 무리한 퇴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지방에 있는 가맹점 마케팅센터를 폐쇄하면서 소속 노동자들에게 서울로 부서를 옮겨 근무하든지, 퇴사하라고 강요했다고 한다. 대상은 무차별적이었다. 심지어 출산휴가를 간 노동자에게도 서울로 옮기거나 퇴사하라고 했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 노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2월14일 노조를 만들었다.

문상수 : 현대커머셜도 마찬가지다. 현대카드와 마찬가지로 2월14일 노조를 만들었는데, 앞서 잦은 조직변경과 부서이동 등이 많았다. 지방 노동자를 갑자기 서울로 발령하고, 서울 노동자를 대전으로 발령했다. 이유는 없었다. 개인의 의사는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10~20년 영업업무를 한 노동자를 졸지에 다른 업무로 보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 과정이 원칙 없이 진행됐다. 노동자들끼리 하는 이야기가 있다. 현대 금융 3사를 두고 ‘현대공화국’이라고 한다. 노사관계가 모회사인 현대자동차 등과는 판이하다.

김영주 : 현대 금융 3사를 밖에서 바라보면 팔자가 좋은 곳일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빛 좋은 개살구다. 내부적으로 관리자들이 ‘성과주의 철학’을 강조한다. 돈 벌어 오라는 이야기다. 그 성과를 평가하는 방식도 원칙이 없어 관리자가 마음대로 결정하는 수준이다. 군대보다 더 강한 상명하복의 경직된 조직문화를 갖고 있다. 찍히면 승진도 못 한다. 인사관리도 형편없다. 현대카드에는 9개 직군이 있다. 엔지니어와 영업·기획관리 등이다. 이 가운데 오퍼레이션 그룹이라는 직군이 있는데 이곳 노동자는 과장 이상 진급을 못 한다. 주로 여성노동자가 많은데 사실상 유리천장이다. 우리끼리는 ‘골품제’라고 ‘웃픈’ 농담을 한다.

▲ 김영주 사무금융노조 현대카드지부장. <정기훈 기자>


단체교섭 중 지부장 인사발령

- 노조결성 당시 어려움도 겪었다고 들었는데.

문상수 : 인사발령으로 훼방을 놨다. 나는 원래 현대캐피탈에서 근무했다. 그러다 지난해 9월 갑자기 현대커머셜 법인영업팀으로 발령이 났다. 금융상품을 만드는 일이다. 이후 노조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올해 5월 돌연 팀을 바꿨다. 노조를 설립해서 교섭에 들어간 상황인데 갑자기 부서를 바꾸고 다른 업무를 시키는 의도가 빤하지 않나. 강력히 항의해 부서이동은 철회하고 새로운 일을 맡아서 하고 있다.

- 법인이 다른데 발령이 가능한가.

김봉현 : 현대 금융 3사는 한 몸이다. 사무실도 같이 쓴다. 소속은 달라도 같은 사무실 안에서 혼재해 있다. 법인이 다른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사발령을 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옮기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고 하는데 버틸 재간이 없다.

김영주 : 새 법인으로 옮기면 퇴직금 정산까지 한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소속 회사와 부서가 바뀌고, 하는 일도 바뀌고 퇴직금까지 정산받는데 실제로는 같은 책상에서 일하는 식이다. 본사 밖의 다른 법인으로 발령을 받아 퇴사한 직원도 있을 정도다.

- 정 부회장 1인 지배체제가 그런 일들을 가능하게 한다는 건가.

김영주 : 그렇다. 지금 현대 금융 3사 지부가 함께 정 부회장에게 대표교섭을 요구하는 이유도 사실 그 때문이다. 1인 지배 아래 정 부회장이 모든 결정을 마음대로 하는 구조다. 발령 1년도 지나지 않은 임원이 잘리고, 일주일에 두 번이나 임원인사를 내는 회사다. 노동자 입장에서 어떻게 버티겠다. 대표교섭도 마찬가지다. 그런 구조에 있기 때문에 교섭 진척을 위해서라도 정 부회장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문상수 : 15년을 넘게 근무하고 있는데 정 부회장은 코빼기도 보지 못했다. 오늘은 (사무금융)노조 집행부까지 나서 대표교섭을 요구해 얼굴이라도 볼 수 있을까 했는데 보다시피 인사팀조차 나오지 않았다. 들리는 얘기에 따르면 성과급으로 임원을 통제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임원들도 정 부회장을 잘 모른다고 한다.

▲ 문상수 노조 현대커머셜지부장. <정기훈 기자>


정 부회장 행보, 이해충돌 여지 커

정 부회장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의 둘째 사위다. 2003년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대표이사가 됐고, 2007년 현대커머셜을 설립해 역시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3사에서 각각 기본급 4억9천500만원을 받고 있다. 노조는 정 부회장의 이 같은 행보가 이해충돌 여지가 있다고 본다. 실제 노조에 따르면 정 부회장은 지난 상반기 동안 한 회사 이사회에 출석하느라 다른 회사 이사회에 출석하지 못하는 등 경영에 전념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금융그룹의 감독에 관한 법률 제정안의 이해충돌·내부통제 강화 방침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3사의 대표이사직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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