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장준 희망연대노조 조직국장

탈퇴서가 들어온다. 본격적으로 투쟁을 시작하니 생계에 압박을 느낀 동지들이 떠난다. 몇몇 지회는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한 동지가 비판한 것처럼 ‘게으른 노동조합’의 후과다. 코로나19의 영향을 무시 못 하지만 우리는 조직사업·조합원 교육·현장 소통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대화와 교섭·법률 대응에 기댔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투쟁하자” 하니 잘 될 리 없다.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 요구는 무슨 법을 만들거나 뜯어고치자는 대단한 제안이 아니다. 수백명 대량해고 사태를 해결하라는 것도 아니다. 고작(!) 조합원 5명에 대한 부당전보를 철회하라는 것이다. 우리 문제는, 기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사가 안 된다. 어떻게든 문제를 알리고 해결하려고 국회 앞에서 단식을 시작했지만 회사 입장은 변함이 없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단식 12일이 한 동지가 쓰러졌고, 나머지 두 동지 또한 당장 입원해야 할 상태가 돼 버렸다.

조직률 25%, 간접고용 비정규직, 저임금, 코로나19, 관심 밖 이슈, 흔들리는 조직, 강경한 사측. 모든 조건과 상황이 좋지 않다. 게다가 상대는 하나가 아닌 둘이다. 최대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중간착취를 더 하려는 하청업체, 케이블방송 티브로드를 인수합병하고서 현장인력을 줄이고 싶은 통신재벌 SK. 이들은 단결했다. 노동자 한 명을 퇴사시키면 이들은 비용 250만원을 아끼고 그만큼 이익을 낸다.

사실 인수합병이 이뤄지면 어떤 방식으로든 구조조정이 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해 일 년 동안 싸웠고,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합병 승인 조건에 우리 요구를 한 줄 끼워 넣었다. 바로 ‘원청 SK가 케이블방송 기술센터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복지향상을 보장하라’는 내용이다. “3년간 협력업체와 상생” 문구의 실내용은 이것이다.

사측은 ‘인력재배치’로 반격했다. 왕복 4~5시간 거리로 발령을 내 퇴사를 유도했다. 실제 조합원 한 명은 장거리 출퇴근이 힘들어 사직서를 냈다. 그런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해고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합병 조건 위반이 아니”라고 했다. 지방노동위원회는 “회사의 인사권”이라고 봤고, 원청 SK는 “하청업체 인사 문제에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궤변이다. 합병 조건 위반이자 부당전출이다. 하청업체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인사이고, 원청이 바로잡아야 하는 문제다. SK는 20여곳의 지역을 여러 개 하청업체들에게 나눠주고 해마다 평가를 통해 계약 여부와 계약지역을 판단한다. 어떤 업체는 사라지고, 어떤 업체는 권역이 늘어난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동했다가 소속 업체가 바뀌면 아예 돌아오지 못한다. 그래서 원청이 지역과 조직의 특성을 고려해 적정 TO를 정해야 한다. 특히나 이런 식의 장거리 인사이동은 지금껏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모든 노동자가 이번 인사를 ‘회사를 관두라’는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답을 만들려면 싸워야 한다. 하청업체를 동원해 노동자를 학대하는 SK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이 길뿐이다. 원하는 회사를 사들이기 위해 무려 10조원을 투자하는 재벌, 1년간 사회적 가치를 1조8천709억원이나 만들어 냈다는 SK가 어떻게 비정규 노동자들을 버리는지 우리의 몸으로 기록하고 알려 낼 것이다. 우리 조합원들은 쥐꼬리만 한 월급, 그나마도 30만~40만원 삭감당했다. 그런데 또 파업으로 50만~60만원의 임금손실을 버텨 내며, 월급의 십분의 일 이상을 투쟁기금과 조합비로 내는,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진짜 노동자들이다. SK의 10조보다 우리의 십일조가 더 대단하고 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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