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언제였던가.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에서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조합원의 자녀를 특별채용토록 하는 단체협약을 가지고 문의했던 적이 있었다. 사측이 고용세습이라며 이행을 거부하고 있다며 사측 주장이 타당한 것인지 법적 의견을 구해왔다. 회사를 위해 일하다 목숨을 잃은 데 대한 보상으로 자녀를 특별채용하도록 한 단체협약이 무효라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을 전달했었다. 아마 10년쯤은 된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귀족이니 뭐니 해대며 비난받아온 터에 그 ‘귀족노조’에서 고용세습을 보장하는 단체협약이라니 물어뜯기에 너무도 좋은 소재 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실제로 이른바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국회에서, 언론에서 지겹게 떠들어댔다. 공정경쟁과 균등한 기회를 박탈하는 ‘현대판 음서제’라며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해댔다. 그리고, 얼마 뒤에 유족이 사측을 상대로 청구한 소송이 법원에서 기각됐다는 뉴스를 읽게 됐다. 그때 나는 ‘법원도 비난에 합세했단 말인가’하며 법원의 판단에 회의를 가졌다. 그리고 그 뒤에 다시 대법원이 전원합의체재판부에 회부해서 산재유족 특별채용의 단체협약의 유효성에 관해서 판단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 공개변론에서 대법관이 대리인 변호사에게 했다는 질문 사항도 전해 들었다. 이러한 연유로 나는 산재유족 특별채용 협약 사건에 관해서는 관심을 갖고서 대법원판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2. 산재유족 특별채용 협약이 유효하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지난 8월27일, 대법원전원합의체재판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사용자의 고용계약의 자유를 현저히 제한하고, 일자리를 대물림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우리 사회의 정의관념에 반하며, 유족에게 과도한 혜택을 부여하기 때문”에 “민법 제103조가 정하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돼 무효”라고 판단했던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원심 서울고법으로 사건을 환송하는 판결을 했다(대법원 2020.8.27. 선고 2016다248998 전원합의체판결). 단체협약을 통해 사용자의 채용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해서 무효가 아니고, 유족을 특별채용한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정의관념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이로써 1985년 입사해서 벤젠에 노출된 상태로 기아차에서 근무하다 2008년 현대차로 전직해 일하던 중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진단받고서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이아무개 조합원의 유족이 ‘조합원이 산업재해로 사망할 경우 결격사유가 없는 직계가족 1명에 대해 요청일로부터 6개월 내 특별채용하도록 한다’는 단체협약에 따라 자녀 1명을 채용해달라고 사측에 했던 청구가 법원을 통해서 마침내 받아들여지게 됐다. 대법원은 “단체협약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헌법상 기본권인 단체교섭권 행사에 따른 것이자 헌법이 제도적으로 보장한 노사 협약자치의 결과물이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의해 그 이행이 특별히 강제되는 점 등을 고려하여 법원의 후견적 개입에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노사가 단체교섭을 통해서 체결한 단체협약을 함부로 민법 제103조 위반으로 무효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신중하고 엄격히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하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이어 사용자의 채용의 자유는 스스로 제한할 수 있는 것이므로 “노동조합과 사이에 근로자 채용에 관하여 임의로 단체교섭을 진행하여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서, 산재유족 특별채용은 업무상 재해에 대한 추가적 보상을 정한 것으로 중요한 근로조건이라서 단체협약으로 정할 수 있는 사항이라고 보았다. 구체적으로 그것이 “소중한 목숨을 잃어버린 근로자의 특별한 희생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고, 가족 생계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약자를 보호 또는 배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규정”으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 실질적 공정을 달성하는데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았다. 한 마디로 임금 등 근로조건과 마찬가지로 산재유족 특별채용에 관해서도 단체협약으로 유효하게 체결할 수 있다고 대법원은 밝힌 것이다. 대법원은 또한 전몰군경의 유가족, 유공자 또는 그 가족 등에 대한 고용의무나 취업 지원에 관한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의 취지와 정신을 기업단위에서 자치적으로 구현한 것이라며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보상과 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유효적절한 수단”이고, 아울러 “유족은 공개경쟁 채용 절차에서 우선채용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절차에서 특별채용된다”며 “특별채용이 다른 구직희망자들의 채용 기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며 그 유효성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유공자의 자녀에 대해 그 채용에 있어 국가가 법률로 우대하는 것처럼 사기업체에서도 회사를 위해 희생한 노동자의 자녀에 대해서도 단체협약을 통해 특별채용 등으로 우대할 수가 있다고 대법원은 본 것이고, 그것이 결코 공정경쟁과 균등한 기회를 박탈하는 ‘현대판 음서제’는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 것이다.

3. 그동안 단체협약 시정명령을 통해 많은 사업장에서 유족 채용 조항이 삭제돼왔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 오늘은 유족 특별채용의 협약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번 대법원판결에도 불구하고 산재유족이 특별채용되는 걸 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2016년경 박근혜 정권 아래서 고용노동부는 기업 단체협약 내용을 점검하고서 현대·기아차를 포함해 ‘조합원 자녀 우선채용 조항’이 있는 사업장에 단체협약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해당 조항을 삭제하는 등으로 우선채용 않는 것으로 단체협약들이 시정돼 버렸다. 이러한 노동부의 시정명령과 그에 따른 사용자의 삭제 압박에는 이번 대법원판결이 파기한 1심, 2심 판결이 근거로 사용됐음이 분명하다. 문제는 이번 대법원판결로 그 판결이 파기됐어도 과거가 되돌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정’돼 삭제된 협약 조항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노동조합이 다시 요구해서 단체교섭을 통해 특별채용에 관한 단체협약을 체결할 때에만 이번 대법원판결에 따라 유효하게 적용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이번 대법원판결로 이행하여야 할 사용자의 일이 아니라, 다시 조합원을 위해서 산재유족 특별채용에 관해 단체협약을 체결해내야 하는 노동조합의 일이 되고 만 것이다.

4. 방금 매일노동뉴스의 칼럼을 읽었다. 2016년 8월23일에 ‘고용세습’ 비판이라는 제목으로 쓴 내 글을 읽었다. 당시는 이른바 귀족노조의 고용세습 협약에 관해 의원들까지 높은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단체협약에서 STX조선해양 창원지부는 ‘업무상재해·개인질병 사망시 직계가족 우선채용’을 규정하고, 성동조선해양 통영지부는 ‘업무상재해·질병 사망시, 장해시 가족 우선채용’을 규정하고, 한진중공업 부산지부는 ‘업무상재해 사망시 유족 우선채용’을 규정하고 있다며 집권 새누리당 의원이 보도자료를 배포해서 비난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은 노동부를 질타하며 단체협약 시정명령을 하라고 다그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받아 언론은 대대적으로 보도했었던 터라 시끄러워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썼던 칼럼이었다. “근로계약의 다른 당사자인 사용자의 계약 자유를 침해할 수 있으니 일하다 죽어도, 일하다 더는 일할 수 없는 장애를 입어도 비난받아야 할 일이라는 것이라고 고용세습이라며 위법 운운하며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은 보도자료까지 배포해서 정부, 즉 노동부를 질타하며 단체협약 시정명령을 하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뻔뻔한 세상이다. 제 사업을 위해 부려 온 노동자가 일하다 죽었으면, 다쳐 더는 일하지 못하게 됐으면 그가 부양해 온 가족들과 그의 생계도 사용자가 책임을 져 줘야 하지 않느냐는 요구가 도대체가 못돼 먹은 거라고 당당하게 시정명령하라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쓴 부분까지 칼럼을 읽고 나니 오늘 산재유족 특별채용 협약이 유효하다는 대법원판결에도 더 덧붙일 것이 없다.

그저 그 칼럼의 마무리 말을 다시 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는 재벌이라 부르는 대기업 자본의 ‘세습’에서는 세법이 정한 대로 상속세를 납부 하는 경우는 드문데도,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모호한 편법과 탈법이 판을 쳐도 자본세습에 대해선 제대로 된 비난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사용자 자본에게 우선채용해 달라는 요구가 부당하다며 ‘세습’이라고 비난을 하고 있다.” 이 마무리 말에 더하여 이번 대법원판결문을 읽는다면, 이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돼 무효로 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할 것은, 회사를 위해 일하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의 자녀에 대한 특별채용에 관해서가 아니고, 50% 상속세 납부를 회피한 자본상속에 관해서여야 하지 않을까.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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