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동희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

2019년 11월21일자 경향신문 1면은 “오늘도 3명이 퇴근하지 못했다”라는 문구와 함께 산재사망 노동자 1천692명의 이름으로 채워졌다. 지면 신문이 줄 수 있는 큰 충격과 울림은 우리 사회에 많은 반성과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중대재해가 반복하고 산재사망이 줄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기억이 단절돼 왔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산재 문제를 가까이서 접근하고 체험하지 못함으로써 산재는 ‘나의 문제가 아니라 관련 없는 타인의 고통일 뿐’이라는 고정 관념도 중대재해가 반복되는 이유다.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같은 법률적 제도적 개선 노력과 사업주의 인식전환이 필수다. 이와 함께 산재 사망사고에 대한 기억과 추모를 통한 반성적 경험 확장도 필요하다. 매년 2천여명의 노동자가 노동현장에서 산재 사고와 각종 직업병으로 목숨을 잃어도 그에 대한 책임은 유족에게 전가된다. 언론 보도도 잠시나마 있을 뿐, 그나마 사망사고가 아닐 경우에는 언론에 나오지도 않는다. 사고 원인도 공개되지 않고, 그에 대한 대책도 알 수 없다. 결국 산재사망은 오로지 그 가족의 불행으로 남고, 산재보상 같은 생계문제로 귀결된다. 기억과 추모는 사실상 유가족만의 경험과 고통이며, 사회적으로 확산되지 않는다.

산재사망은 개별 노동자 책임이 아니다. 대부분은 기업의 이윤추구와 안전의무 위반으로 초래된다. 노동자의 목숨값보다 법원에 내는 벌금이 더 적은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망사고에 대한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의 재해조사 내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극소수 연구와 국회의원 요청으로 일부 사건에 대한 재해조사의견서만 공개될 뿐이다. 유족도 사망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사망과 질병에 대한 근로복지공단의 재해조사 내용은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의 재해예방에 거의 활용되지 않는다.

산재 사망사고, 집단산재 등이 매년 동일 원인으로 동일 업종에서 반복됨에도 그 현황이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고, 볼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사고의 원인을 ‘알 수 있는 문서’가 공개되지 않는다. 매년 산재사망 노동자의 이름을 일회성 지면이 아니라 일정한 공간에서 볼 수 있고, 그 이름을 쌓아 간다면 노동과 산재의 중요성은 분명 달리 인식될 것이다.

따라서 가칭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관을 만들어, 산재노동자의 넋을 기리고 유족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산재 문제의 심각성과 산재사망 원인과 대책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인식할 수 있는 공간도 있어야 한다. 노동자·시민·학생 등 누구라도 언제든지 노동의 가치와 여러 분야 노동안전의 중요성을 알고, 산재사망이 얼마나 심각한지, 이를 통한 교훈과 과제가 무엇인지를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과 공간이 필요하다.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관과 더불어 산재노동자를 실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법률기관이나 기구를 설립해야 한다. 한 해 2천명이 넘는 노동자가 사망하고 있다. 사망사고 노동자는 2016년 969명, 2017년 964명, 2017년 971명, 2019년 855명이다. 산재는 전혀 예기치 않은 인생의 중대한 불운으로 다가온다. 유족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이 가시지도 않은 채 병원과 현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장례, 부검, 경찰 조사, 산재처리, 회사와의 합의, 민·형사문제, 금융문제, 상속문제, 행정문제 등 많은 중요한 사항들을 한꺼번에 해결해야 된다. 이런 많은 일들은 국가의 행정사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법률적 조력이 필수다.

산재예방 뿐만 아니라 산재사망 노동자와 가족에 대해서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유족들이 많은 문제를 원만히 해결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경험과 지식도 전무한 게 현실이다. 누구 하나 옆에서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나 기구도 없다. 산재 유가족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책자도 매뉴얼도 전혀 없다. 현재 입법발의된 노동자의 산재청구를 조력해 주는 산재국선노무사 제도를 뛰어넘는 구상과 제도가 필요하다. 산재가 명확한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와 그 가족을 위해 법률적·행정적 지원은 국가에서 담당해야 한다. 법률구조공단에 부서를 신설해 인력을 확충해도 되고, 노동부 내 별도의 기구나 부서를 설립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다.

강원도 태백시 철암역 앞에는 철암탄광역사촌이라는 공간이 있다. 이 역사촌은 예전에 번성했던 탄광도시의 쇠락한 건물로 옛날을 기억하고 있다. 역사촌 한 건물 안에 매년 탄광사고로 사망한 수백명의 노동자 이름이 기록돼 있다. 그 가족들은 모두 사망 원인과 내용을 제대로 알 수 없었고, 법률적 조력은 전무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한국사회에서는 산재사망 노동자를 추모하는 공간도, 유가족이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기구도 없다. 이제는 산재사망 노동자와 그 가족에 대한 예우가 달라져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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