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애경그룹 본사 앞에서 열린 제주항공 규탄, 정부당국 해결 촉구 집회 참가자가 흰 현수막에 하고 싶은 말들을 써내려가고 있다. <임세웅 기자>
“우리가 원하는 건 제주항공측이 고용승계하겠다는 워딩이죠. 정부도 이때까지 제주가 인수합병한다고 해서 특혜 줬는데.”

박이삼 이스타항공조종사노조 위원장이 8일 오후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에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계자, 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이사와의 면담이 끝나고 한 말이다. 이날 이스타항공 노사와 노동부는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인수합병 과정에서 나오는 의견차를 좁히기 위해 면담을 가졌다. 정부는 항공업계 대규모 실직자 발생을 우려해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노동자 고용승계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고용유지와 승계에 대한 확답을 받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 “대규모 실직은 막아야”

정부는 대규모 실직자 발생을 우려한다. 노동부 관계자는 “정부가 인수합병을 강제할 수는 없다”면서도 “1천명이 넘는 이스타항공 노동자들이 대량실직을 하게 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기 위해 나섰다”고 밝혔다. 지난 3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채형석 애경그룹 부회장을 차례로 만나 인수합병이 원안대로 성사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 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을 인수하지 않으면 이스타항공은 파산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스타항공은 1분기 자본총계 마이너스 1천42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부채비율은 210%다. 3월24일부터는 셧다운(운항중지)에 들어갔고, 3월부터 노동자들의 임금을 지불하지 못하고 있다.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을 인수하지 못하면 노동자 1천600명이 실직자가 된다.

제주항공은 지난해 12월부터 이스타항공 인수를 위해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이스타항공에 재무팀 직원을 파견하는 등 인수합병 의지를 보였지만, 코로나19로 항공업계가 어려워지자 인수 거부 의사를 보이고 있다. 제주항공은 지난 1일 “10영업일 이내에 선결 조건을 모두 이행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취지의 공문을 이스타항공측에 보냈다. 제주항공측은 선결조건 해결을 위해 1천700억원이 필요하다고 추산한다.

이날 정부는 이스타항공 노동자들이 체불임금을 일부 반납하는 대신 제주항공 측에 고용승계를 요구하겠다는 안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고용승계 확답 필요해”

노조는 정부가 아니라 제주항공측이 고용승계를 약속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제주항공이 인수합병을 할 것으로 믿고 특혜를 줬다가 사태가 여기까지 왔다는 이유다. 제주항공은 저가항공사(LCC) 중 가장 많은 지원자금을 받았다. 지난 5월 운수권 배분에서는 25개 노선 중 11개를 제주항공에 줬다. 현지 승객을 제 3국으로 실어나를 수 있어 수익이 많이 나는 이원5자유권도 제주항공에 집중적으로 배분됐다.

이날 노조는 서울 마포구 애경그룹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제주항공과 정부를 규탄했다. 제주항공은 애경그룹이 보유한 LCC다. 박이삼 노조 위원장은 집회에서 “우리는 생존이 달린 체불임금을 달라고, 그리고 우리가 원래 일했던 자리로 돌려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공인회계사인 김경률 경제민주주의21 대표는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인수합병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피해를 받고 있다”며 “인수합병 절차에 노동자 목소리가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