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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의 눈으로 본 한반도 <백년의 기억>
▲ 황진미 영화평론가

남북관계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북한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데 이어 남한에 전단을 살포하겠다며 연일 으름장이다. 북한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내부단속용 제스처겠거니 생각하면서도 심란함을 피할 수 없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은 회고록을 통해 2년 전 판문점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일각에서는 볼턴의 폭로로 북핵 문제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국내외적인 위상에 흠집이 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종전선언이 코앞이라는 뉴스에 온 국민이 감격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도로 제자리다. 한반도에 사는 성인이라면 이런 허탈감에 익숙하다. 모처럼 평화와 통일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는가 싶더니, 금세 전쟁이라도 날 것 같은 적대감에 일상이 휩싸이는 경험을 수십 년째 겪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으레 그러려니, 냉전을 냉소로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백년의 기억>은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남북관계의 오랜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남북한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 설명하기 위해 19세기부터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역사·정치·문화를 상세히 다루고 있지만, 놀랍게 외국인이 만든 영화다.

3자의 눈으로 두 개의 한국을 보다

영화를 만든 피에르 올리비에 프랑수아 감독은 1990년대 프랑스의 방송사 기자로 일하며, 사회주의 몰락 이후 구소련과 동구권 변화를 취재했다. 한국에서 입양된 두 동생의 영향으로 한국에 친근감을 가졌던 감독은 2000년 6·15 정상회담을 취재하러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이후 여러 차례 한반도 문제를 보도한 감독은 2003년에 다큐멘터리 <프런티어와의 전쟁>을 만들었다. 당시 북한 입국을 허락받지 못해 주로 아카이브 필름과 북한을 방문했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모아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감독은 10년 뒤 마침내 남북을 오가며 직접 취재한 필름으로 다큐멘터리 <한반도, 통일은 불가능?>을 내놓았다.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문제를 깊이 다룬 후속작이지만, 아쉽게도 김정일의 죽음으로 끝맺는다. 감독은 김정은의 세습 후 변화한 한반도 정세를 담은 세 번째 다큐멘터리 <백년의 기억>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지난했던 남북관계 역사와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의 화해무드가 빼곡히 담겨 있다.

영화에는 외국인이 만들었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역사는 물론이고 정신 문화사를 꿰뚫는 통찰이 스며 있다. 영화의 최대 장점은 3자의 눈으로 본 냉철하고 객관적인 분석인데, 여기에 세계평화 염원을 담은 희망의 여운이 곁들어 있다.


태권도를 통해 한반도 역사를 풀어내기

“조선은 하나다.” 북한의 유명한 슬로건이다. 한때 남한에서도 “조국은 하나다”는 슬로건이 유행했지만, 오늘날 그리 생각하는 한국인은 드물다. 영화는 한반도에 매우 다른 두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수천 년간 통일된 나라를 이루며 살았던 한민족이 어떻게 두 개의 다른 국가가 됐을까. 감독은 가장 초보적인 이 질문을 던지며, 한국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들이 봐도 알기 쉽도록 찬찬히 짚어 준다.

영화는 외국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한국의 이미지이자, 남북한이 공유하는 문화인 태권도 동작으로 챕터를 나눠 설명한다. 영화는 단군·삼일 같은 태권도 동작을 통해, 남북이 단일한 혈통과 언어를 지녔으며 식민과 항일투쟁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음을 풀어낸다. 또한 주체·금강 등의 동작을 통해 승전국들에 의해 남북이 분단되고, 수십 년간 전쟁과 체제경쟁을 이어 오면서 남북관계를 변화시켜 왔음을 보여준다.

영화에는 남한과 북한, 러시아·프랑스·미국을 포함한 주변 국가들에서 모은 다양한 자료들과 주요 인사들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한국인이라면 카이로 회담이니 얄타 회담이니 한국전쟁의 참화에 대해 지겹게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관으로 역사를 배웠는지에 따라 내용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가령 김일성의 보천보 전투 같은 항일투쟁 이력이나 주체사상의 의미는 남한에서 오랫동안 금기로 취급됐다. 또한 미군과 이승만이 인민위원회를 말살하고 친일 부패 기득권층의 뒷배가 된 것이나, 김일성과 연배가 비슷한 박정희가 만주에서 독립군을 소탕하던 일본군 장교였다는 이력에 대해서는 루머처럼 다룬다. 이런 편파적인 역사교육은 북한에서도 마찬가지다. 북한에서는 한국전쟁이 미군의 침략에 의해 일어났다고 말한다.

영화가 자료화면으로 보여주는 한국전쟁 참화는 끔찍하다. 북한은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나 일본이 겪은 것보다 더 심한 폭격을 겪었다. 이후 북한이 미국에 어떤 적개심을 품게 됐으며, 이후 북한체제가 어떻게 폐쇄적 체제를 유지해 나가게 됐는지 이해되는 대목이다.

지금 이 순간의 역사

영화는 한국인들이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잘 알지 못했던 역사적인 순간들을 짚어 준다. 김일성이 중소분쟁을 틈타 북한체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으며, 1975년까지 북한의 경제력이 남한보다 앞섰다는 사실을 아는 남한 사람은 별로 없다. 1972년에 비밀리에 추진됐던 7·4 공동성명 이후 박정희가 김일성의 강한 리더십을 롤모델 삼아 유신체제를 선포했다는 사실도 뜨악하다. 80년대 후반에 남한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그리고 동구권 붕괴가 남북한 경쟁 구도를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는 사실도 새롭게 다가온다. 그때를 사는 동안에는 알지 못했던 역사의 순간이다.

안타까운 순간들도 많다. 1990년대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추진했으나 좌절된 것이나, 주한미군의 팀스피릿 훈련 재개로 위협을 느낀 북한이 핵개발에 돌입한 것, 6·15 공동성명 이후 화해무드가 무르익던 한반도에 미국의 ‘악의 축’ 발언이 날아들면서 남북관계가 급속히 얼어붙고 북한이 다시 핵 개발에 나선 것, 2007년 노무현과 김정일의 회담으로 가까스로 살린 화해의 불씨가 남한 정권교체와 금강산 관광객 피격으로 완전히 꺼져 버린 것,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으로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개성공단마저 폐쇄돼 버린 것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치솟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영화는 지금 이 순간도 역사가 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남한 시민의 손으로 만들어 낸 박근혜 탄핵이 정권교체를 통한 남북화해를 끌어올 수 있었고, 평창올림픽으로 시작된 화해 분위기가 남북정상회담은 물론이고 북미정상회담까지 이끌어 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도 분명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

영화는 고 이희호 여사의 메시지로 갈무리한다. “국가 정상의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말씀과 “내 손자들, 증손자들이 통일된 한국에서 살게 되리라”는 말씀이 진한 여운으로 남는다. 길은 멀어도 방향이 옳고 의지가 있다면 언젠가는 닿을 것이다.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영화평론가 (chingmee@naver.com)

황진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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