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수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때 이른 폭염특보가 발령된 지난 9일,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사망했다. 외주업체 일용직 노동자였던 그는 연주1부 크레인 7호기에서 캡쿨러(크레인 운전실 냉방시설) AS 작업을 하던 중 의식을 잃은 채 동료에게 발견됐다.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던 중 끝내 목숨을 잃었다. 사고 발생 직후 측정한 사업장 온도가 43도였고, 체온이 40.2도였다니 열사병으로 인한 사망이 강력히 의심된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로 신고된 온열질환자는 1천841명(사망자 11명)이다. 이례적인 폭염을 기록한 2018년(온열질환자 4천526명, 사망자 48명)에 비해 감소했다. 하지만 2011년 감시를 시작한 이후 전반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온열질환 산업재해 발생현황을 보더라도 지난해 산재가 승인된 온열질환자는 22명(사망자 3명)으로 2018년(온열질환자 65명, 사망자 12명)에 비해 감소했지만, 최근 몇 년 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상청에서는 올해 여름 기온이 평년(23.6도)보다 0.5~1.5도, 지난해(24도)보다는 0.5~1.0도 높고, 폭염일수는 20~25일(열대야 12~17일)로 평년과 지난해보다 많아 2018년 못지않은 폭염이 찾아올 것으로 전망했다.

노동부는 폭염에 노출되는 옥외작업 노동자를 위해 4일부터 9월11일까지 ‘폭염 대비 노동자 건강보호 대책’을 추진한다. 노동부가 올해 발표한 ‘열사병 예방 3대 기본수칙(물·그늘·휴식) 이행지침’을 보면 폭염 위험단계별 대응요령을 관심·주의(폭염주의보)·경고(폭염경보)·위험 단계로 구분해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각 단계를 기온이 아니라 “온도 및 습도에 따른 체감온도”에 따라 구분하고 있다. 이 구분에 따르면 예를 들어 기온이 33도일 때 습도가 70%까지는 주의 단계지만, 그 이상일 경우 경고 단계가 된다.

이는 그동안 노동계와 전문가들이 주장해 온 바를 일부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018년 지침에서는 “폭염주의보(33도) 발령시에는 시간당 15분씩, 폭염경보(35도) 발령시에는 30분씩 휴식”하도록 권고하던 것을 2019년 지침에서는 각각 10분·15분으로 은근슬쩍 줄이더니 올해 지침에서도 그대로 권고하고 있다. 주의(폭염주의보) 단계에서 시간당 10분씩 휴식하는 것은 일상적인 상황과도 전혀 다를 바 없는 것이니, 결국 경고(폭염경보) 단계에서만 평소보다 시간당 5분씩 더 쉬라는 권고다. 이런 수준의 휴식으로 어떻게 열사병을 예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노동부에서 폭염대책을 발표한 지 불과 며칠 만에 현대제철 사고가 발생했다. 때 이른 폭염에 노동부 대책이 사업장에 미처 전달되지 못해서, 혹은 사업장에서 대비할 만한 시간이 충분치 않아서라고 변명을 하면 그나마 이해할 만하다. 또한 당사자에게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때 이른 폭염에 고온순화(고온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증가한 피부 온도, 직장 온도 및 심장 박동수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반면 땀의 분비 속도와 양은 증가하면서 고온 환경에 적응해 가는 현상)가 충분치 않아 이런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노동부 천안지청에서 작업중지명령 같은 중대재해에 따른 어떠한 행정조치도 하지 않는 것이다. 부검 소견이 관상동맥질환으로 나오는 등 사인이 명확하지 않아 중대재해로 볼 수 없다는 이유다. 이와 더불어 사업장측에서는 재해자가 평소 고혈압·고지혈증이 있었고 건강에 문제가 있었다며 사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한다고 한다.

평소 고혈압·고지혈증 같은 지병이 있었던 노동자가 관상동맥질환으로 사망했다고 개인질병 운운하는 것은 업무관련성의 기본을 모르고 하는 얘기다. 폭염특보가 발효된 날 43도의 환경에서 작업하다가 쓰러져 사망했는데 체온이 40.2도였다면 열사병으로 인한 사망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평소 고혈압·고지혈증이 있었다는 것은 고인이 ‘열사병 예방 3대 기본수칙(물·그늘·휴식) 이행지침’에 나오는 “열사병 등 온열질환 민감군”에 해당한다. 따라서 휴식시간 추가 배정이나 옥외작업 제한 같은 조치를 보다 철저히 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그런 조치를 철저히 하지 않았다면 고인의 사망 원인이 열사병일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사고가 아니라 업무관련성을 좀 더 따져 봐야 하는 질병이라서 중대재해가 아니라는 논리도 옹색하기 짝이 없다. 노동부가 중대재해를 따로 규정해 작업중지명령 같은 행정조치를 적극적으로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앞으로 그런 재해가 발생하지 않게 예방하기 위함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번 사건과 같이 인과관계가 명백한 급성질환이나 그로 인한 사망은 사고와 동일하게 중대재해로 규정하고 대처해야 재발을 줄일 수 있다. 천안지청의 행태는 명백한 업무태만이거나 회사측 입장을 적극 옹호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올해는 역대 최악이었던 2018년 못지않은 폭염이 예상된다. 그뿐만 아니라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폭염에도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로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노동부 지침은 여전히 허술해 보이고, 천안지청 행태는 정부에서 그 지침이나마 제대로 관리·감독할 의지가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게 만든다. 올해는 폭염에 따른 건강장해가 다른 해에 비해 훨씬 심각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 대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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