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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민주화 시위’ 미니애폴리스 ‘극좌 폭동’
▲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일본은 독도를 자국 영토라 한다.

미국인이나 유럽인을 만나면 외딴섬을 포기하고 이익을 챙기는 게 좋지 않으냐는 말을 듣는다. 1876년 강화도조약, 1894년 갑오농민전쟁, 일제강점기를 설명해 주면 제국주의 타령 그만하라며 동해도 일본에서 보면 서해란다. 미국 정부는 공식 문서에 일본해로 쓴다.

한국에 독도가 중요한 문제라면, 홍콩은 중국에 중요한 문제다. 아편전쟁에서 진 중국은 1842년 난징조약을 강요받았다. 홍콩이 영국에 넘어갔고, 상하이와 광저우가 ‘개방’됐다. 제국주의 잔재를 청산하려면 상하이와 광저우가 중국이듯, 홍콩도 중국이어야 함은 당연한 이치다. 미국을 등에 업은 영국은 홍콩을 영구히 차지하려는 야욕을 꺾지 않았다. 그래서 이뤄진 타협이 반환 이후 50년간 홍콩에 ‘일국양제’를 실시한다는 원칙이었다. 일국, 즉 홍콩은 중국이라는 역사적 실체를 인정하되 양제, 즉 영국이 이식해 놓은 ‘식민지 시스템’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홍콩이 중국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독도가 한국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흐름을 같이한다. 홍콩은 중국이 아니라는 몰역사적 인식이 확산되면, 필연적으로 독도도 한국이 아니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19세기 제국주의자들이 만든 지도를 21세기 국제사회가 그대로 인정하느냐의 문제에서 홍콩과 독도는 동일한 선상에 있다.

홍콩은 중국이라는 점을 인정한 다음에 부딪히는 문제는 홍콩이 과연 민주적인가다. ‘민주적(democratic)’이라는 개념은 상대적이다. 노무현·문재인 정권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보다 민주적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부자는 자신의 부를 건드리는 정권을 반민주라 하지만, 빈자는 부자의 부를 이용해 빈자를 위한 복지를 강화하는 정권을 민주라 느낀다. 사용자(자본가)는 노조의 권리를 확대하는 정권을 독재라 느끼지만, 노동자는 반대다.

나는 지금 홍콩이 미니애폴리스보다 민주적이라 생각한다. 백인 경찰이 무릎으로 흑인의 목을 짓눌러 살해한 사건으로 ‘인종 폭동’의 중심지가 된 미국 미니애폴리스보다 말이다. 특히 가난하고 학력이 낮은 계급 입장에서는 홍콩 경찰에 의해 살해당할 위험보다 미니애폴리스 경찰에 의해 살해당할 위험이 훨씬 크다. 가난한 흑인도 대통령과 시장을 제 손으로 뽑을 수 있으니 미니애폴리스가 더 민주적이라 주장할 수도 있겠으나, 어쩌다 한 번 부자들 중에서 ‘왕’을 고를 기회가 주어진다고 민주라 할 수 있을까. 민생을 보장하지 않는 민주는 민주가 아니다.

언론의 자유는 어떤가. 나는 경찰의 시위 진압과 관련해서 홍콩이 미국보다 더 많은 자유를 언론에 보장한다고 본다. 홍콩 시위를 취재할 때 기자들은 경찰과 시위대를 오가며 양측의 공방을 자유롭게 취재한다. 어쩌다 경찰이 시위대로 오인해 기자를 공격할 때도 있지만 매우 드문 일이다. 미국에서는 기자들이 경찰쪽이 아닌 시위대쪽에 들어와 취재를 하다가 경찰이 진격해 오면 시위대보다 더 빨리 꽁무니를 뺀다. 본사에서 생중계하던 앵커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도망가는 현장 기자에게 경찰의 폭력적 진압을 피해 “빨리 안전한 데로 대피하라”고 소리 지른다.

더군다나 미국 기자들은 시위대를 체포하는 경찰 주변에는 얼씬도 못하고 먼 발치에서 카메라를 들이댈 뿐이다. 이때도 경찰이 꺼지라 소리치면 끽소리 않고 인근의 안전한 곳으로 자리를 피한다. 백인 경찰의 흑인 살해사건을 계기로 발생한 ‘폭동’ 덕분에, 홍콩의 언론자유를 비아냥거리던 미국 언론이 자국에서 누리는 ‘자유’의 실체가 폭로됐다. 편안한 데스크에 앉아서는 무슨 말이든 지껄이는 듯하나, 폭력적 진압 현장에서는 경찰이 내리는 명령에 고분고분 따르는 ‘경찰 국가’의 자유 말이다. 홍콩의 시위대가 도로를 막고 공공 기물을 파괴하는 행위를 두고 “민주화 시위”라 격찬하던 미국 언론은, 지난 주말 자기 나라에서 일어난 동일한 행위에 대해서는 “극좌 극단주의(far-left extremist) 세력”이 개입한 “약탈”과 “방화”와 “폭동”이라 낙인찍으며 시위대의 자제와 귀가를 촉구하고 있다.

여기서 ‘홍콩 보안법’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정치인들의 반대 성명에 한국에서는 나경원과 김진태를 비롯한 극우인사 5명이 동참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국 ‘국가보안법’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충성한다는 것이다. 한·미·일 우익동맹의 일원인 이들은 홍콩 보안법이 만들어지면 아시아 지역과 글로벌 수준에서 자기 계급이 입는 피해를 잘 알고 있다. 동시에 이들은 미국에서 번져 가는 ‘폭동’에는 위기감을 느끼며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강경 진압해야 한다고 믿는다. 백인 지배층에 빌붙어 호사를 누리는 흑인 사회 명사들과 부자들도 ‘약탈’과 ‘방화’를 자행하는 못 배우고 가난한 시위대를 비난한다.

나는 미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폭동이 홍콩 시위보다 세계사적으로 더 중요한 ‘민주화 시위’라고 생각한다. 홍콩 ‘시위’는 아시아 지역에서 지정학적 불안정과 군사적 긴장 상태를 고조시킨다. 자칫 잘못하면 국제 전쟁으로 이어진다. 미국 ‘폭동’은 그 반대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홍콩 ‘시위’와 미니애폴리스 ‘폭동’은 한·미·일 우익의 ‘민주’와 한·미·일 민중의 ‘민주’가 역사적으로 달랐으며, 앞으로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1842년 난징조약이 체결돼 영국이 홍콩을 강탈할 당시 미니애폴리스에는 백인도 흑인도 아닌 인디언 다코타족이 살고 있었다. 백인들에게 삶의 터전을 강탈당한 다코타족은 1862년 ‘폭동’을 일으켰다. 이를 잔인하게 진압한 미 육군은 그해 12월 항쟁 지도부 38명을 ‘살인’과 ‘강간’ 죄목으로 집단 처형했다. 생존자들은 강제수용소에 수용된 후 변방으로 쫓겨났다.

이를 승인한 대통령은 공화당 소속으로 이름은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윤효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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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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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우 2020-06-02 00:54:55

    무슨 말인지 문제의식에 공감은 하지만 1당독재 중국정부가 (그것이 서구의 제국주의에서 시작된 역사라 할지라도) 그나마 형식적 민주주의를 유지하던 홍콩의 자본을 탐욕적으로 흡수하기 위해 폭력적으로 대하는 것과 우리나라와 독도를 같이 두고 비교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노동자의 권리, 민주주의, 인권을 지향하는 진보적 입장을 가진 사람으로서 국제정세에서 중국만 등장하면 정신을 못차리는 (미국에 대해서는 그토록 비판적이면서도 - 저도 미국에 비판적인 사람임) 감수성을 만나면 정말 돌아버리겠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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