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연합뉴스가 지난달 17일 “민주노총 위원장 ‘해고 대란’ 막을 긴급 노사정 대화 제안”이란 제목의 기사를 썼다.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코로나19 해고 대란을 막고자 원포인트 노사정 비상 협의를 제안했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 기사엔 216개의 댓글이 붙었다. 댓글 99%가 민주노총 욕이었다. 소름이 끼쳤다. 1년에 몇 번씩 총파업을 하던 90년대에 민주노총에 걸려 오는 항의전화도 이보다는 훨씬 양반이었다.

“대화하잘 땐 안 하던 것들이” “지들 필요할 때만”이라는 댓글은 그나마 지난해 민주노총 내부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 공방을 조금은 아는 이들 반응이다. “니네는 그냥 시위나 해” “마스크나 쓰고 시위하세요”라고 비꼬는 댓글도 많다. “한총·민총들은 깡패들”이라며 양대 노총을 싸잡아 비난하기도 했다.

민주노총에 애정을 가졌던 이들도 “시작을 너희와 함께한 적 있다만 지난 30여년 너희 추한 모습은 지겹다”거나 “민주노총이 적폐가 되는 세상, 참 많이 변했네요”라고 댓글을 달았다.

“노조 가입도 못하는 노동자들 생각은 해 본 겨?”라거나 “그동안 배불리 잘 살았잖아”라는 댓글엔 부끄러웠다. “니들은 좀 가만히 있어라” “그대들은 제발 빠져 줘”라는 댓글에선 ‘국민 밉상’이 된 민주노총을 발견했다. 자본과 더불어민주당·미래통합당 지지자들까지 다 달라붙어 민주노총을 두들긴다.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무엇부터 고쳐야 할까. 한 달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특정세력만 민주노총을 비난하는 게 아니고 전 국민이 민주노총을 ‘국민 밉상’으로 인증했다.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도 아니지만 더는 마냥 두고 볼 일이 아니다.

민주노총 국민 밉상 만들기 프로젝트의 기원은 20여년 전 정치지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언론은 90년대 중반까진 노동자 투쟁이 기간산업으로 확전되지만 않으면 대체로 동정했다. 시혜적 시선 자체도 문제였지만.

90년대 후반 한국 사회는 정치권력을 놓고 대격돌했다. 97년 월간조선은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교수의 통일교육 교재 <나는야 통일 1세대>를 놓고 대대적인 사상검증 보도를 쏟아 냈다. 97년 12월 대선 킹메이커를 자처하던 보수신문의 노골적 이회창 편파보도가 더해졌다. 오죽하면 당시 신한국당 내부보고서조차 “우호적인 조선·중앙 100% 활용”이라고 명시했겠나. 두 신문이 킹메이커를 자처했지만 그해 대선에선 해방 이후 첫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중앙일보는 정치부 기자를 대거 물갈이하면서 화해의 손을 내밀었지만 조선일보는 DJ 정부 반년 만에 다시 칼을 빼어 들었다. 98년 가을 조선일보의 최장집 고려대 교수 사상검증 보도가 그것이다. 조선일보는 DJ 당선으로 흔들리는 반공국가의 기반을 다잡고 DJ 정권이 왼쪽으로 못 가도록 철저히 견제했다.

90년대 말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자유주의 세력은 크게 깨닫는다. 보수신문이 킹메이커 역할을 계속하려는 시도부터 막아야 했다. 2000년 8월7일 조선일보 거부 지식인 154인 선언, 이른바 안티조선 운동이 시작됐다. 이후 2001년 9월까지 모두 1천600명이 참여했다. 2001년 6~8월엔 언론사 세무조사도 했다.

안티조선 운동은 시민사회가 시작했지만 60만 조합원을 가진 민주노총만이 이 운동을 실행할 큰 세력이었다. 조선일보를 포함한 보수신문은 2001년 6월12일 민주노총 파업을 계기로 반격에 나섰다. 연일 ‘이 가뭄에 웬 파업’처럼 근거 없는 기사를 쏟아 냈다. 파업을 멈춘다고 가뭄이 해소되지도, 파업 계속한다고 가뭄이 심해지지도 않는데 인과관계 없는 둘을 억지로 연결시켰다. 결국 민주노총은 조·중·동 취재거부를 결의했다.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국가권력을 놓고 극우와 자유주의 세력·보수언론이 뒹구는 대결장에서 보수언론은 노동을 때려 자유주의 세력을 견제하는 성동격서 전술을 밀어붙였다. ‘강성노조’에서 ‘귀족노조’로 진화하면서 20여년 일관되게 노조 혐오를 부추긴 끝에 지금은 민주노총이, 전교조가 무엇을 하든 혐오의 벽에 갇혀 옴짝달싹도 못한다. 이젠 원인도 분석하고, 차분히 대책도 만들어야 한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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