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영 기자
“나오지 말고 집에 있으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정부 차원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권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기업체와 관공서에 직원들이 재택근무나 휴가 등을 이용해 집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도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사업장 대응지침에서 “단체협약·취업규칙에 따른 유급병가 등 규정이 있는 경우 유급병가를 부여하라”고 권고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근로기준법에는 ‘병가’라는 단어가 없다. 아프면 생계 걱정 없이 쉴 수 있는 ‘유급휴가’를 향유할 권리를 가진 노동자는 공무원이거나 상위 7%의 좋은 회사에 다니는 노동자뿐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2018년 우리나라 493개 민간기업 취업규칙과 단체협약을 분석한 결과 유급병가를 보장한 기업은 7.3%에 불과했다. 질병으로 인한 휴직을 허용하는 기업은 91.9%였지만 유급을 명시한 기업은 6.1%다.

업무로 인해 얻은 병이든, 그렇지 않든 아프면 쉬어야 한다. 생계 걱정 때문에 아파도 쉬지 못하고 일해야 한다면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코로나19는 업무 외 질병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취약한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952년부터 '사회보장 최저기준에 관한 조약(102조)'에서 질병으로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도모하기 어려운 노동자에게 상병수당을 지급하도록 권고해 왔다. ‘모든 질병에 대해 그 원인을 묻지 않고 급여를 지급하라’는 규정이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부분 국가는 산재보험과 별도로 상병수당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공적 상병수당 제도가 없는 나라는 OECD 34개국 중 우리나라와 미국·스위스뿐이다.

공적 상병수당 제도는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특수고용직이든, 자영업자든 고용형태를 가리지 않고 지원한다는 점에서 더 절실하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불안정한 노동자들에게 코로나19는 이제 감염 위협을 넘어 생계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질병으로 인한 소득 단절이 빈곤의 낭떠러지로 이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이번 총선에서 상병수당 제도 도입을 의제화하자. 국민의 공복이 되겠다고 선언한 국회의원들이 약속하면 실현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질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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