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 중 추락해 숨진 현대중공업 물량팀 노동자를 부검하겠다고 하는 울산지검에 법률 전문가들이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보통 사인미상이거나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사망한 경우 부검으로 명확한 사망원인을 밝히는 경우가 있지만, 추락에 의한 외인사에 부검을 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울산지검과 울산동부경찰서는 26일 오전 8시30분께 울산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시신 인도를 세 번째 시도했지만 유족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조합원들 반대로 무산됐다. 지난 23일 법원에서 고인에 대한 부검영장을 발부받은 검찰은 24일과 25일에도 부검영장을 집행하려다 유족 반대로 돌아갔다. 25일 오후 2시께 유족측에 “물리적으로 부검을 강행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던 검찰은 같은날 오후 6시께 다시 부검영장을 집행하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고인이 원래 건강한 사람이었다는 증거 확보 차원”이라며 “술이나 약물복용 가능성을 확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같은 검찰 주장에 법조인들은 고개를 갸웃한다.

김유정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검찰의 주장이 인정되려면 고인이 작업 전 음주를 했거나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약을 먹었다는 합리적 정황과 근거가 제시돼야 한다”며 “근거도 없이 추측이나 가정만을 가지고 부검을 하겠다는 건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최종연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사망진단서에도 사인이 추락에 의한 외인사로 적시됐는데 왜 검찰이 부검을 강행하려는지 의문”이라며 “음주나 약물중독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서라면 고인의 금융거래나 결제정보, 건강보험 급여내역 등에 영장을 발부받아 사건 전 행적을 확인하는 부검 외 대체수단이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유족측 대리인인 정민준 변호사(법률사무소 마중)는 “보통 사인미상이거나 뇌심혈관계질환에 의한 사망일 경우 부검을 실시해 선천적으로 심장이 기형인지 여부 등을 살펴보지만 이 사건의 경우 질병사도 아니고 명확한 사고사이기에 부검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검찰의 통상적이지 않은 행보가 이어지면서 노동계는 “검찰이 사업주의 산업재해 책임 경감을 돕기 위해 부검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세민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명백한 산재사망을 은폐하기 위한 게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미 경찰은 2014년 현대중공업에서 추락사한 정범식 하청노동자를 자살로 둔갑시킨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유족은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저희 아버지의 강제부검을 막아 주세요’라는 청원글을 올렸다. 유족은 “추락사로 산산조각이 난 아버지를 다른 지병이 있을 가능성, 혹은 정확한 사고원인 규명이라는 이유로 유가족 동의 없는 강제부검을 하려 한다”며 “강제부검 후 60세 남성의 노화 혹은 흔한 질병을 확대 해석할 것이고, 사측의 책임을 덜어 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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