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가 퇴직을 만류하기 위해 마련한 술자리를 마치고 귀가하던 부하 직원이 사고를 당했다면 업무상재해로 봐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수석부장판사 함상훈)는 서울 한 음식점에서 매니저로 일하던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는 2017년 11월26일 영업시간 종료 준비를 하던 중 상사 B씨에게 업무에 관해 질책을 받았다. B씨의 말에 기분이 상한 A씨는 “내일부터 출근하지 않겠다”며 퇴사의사를 밝혔다. 이에 B씨는 음식점 문을 닫은 뒤 A씨에게 인근 술집에서 술 한잔 하자고 제안했다. 술자리 중 B씨에게 사과를 받고 화를 푼 A씨는 퇴직 의사를 철회했다.

문제는 두 사람이 술자리를 파하고 귀가하던 중 발생했다. A씨는 술집을 나서는 과정에서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사고를 당했고, 병원에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A씨의 유족은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청구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승인하지 않았다. 음식점 전체 노동자 35명 중 일부인 2명만이 참석한 술자리로 업무의 연속선상에 있는 공식 행사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술자리 비용을 사측이 내지 않았다는 점과 B씨와 A씨의 자발적 의지로 마련된 술자리라는 점도 근로복지공단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재판부 생각은 달랐다. 서울행정법원은 “B씨 제안으로 이뤄진 술자리에서 A씨의 퇴직 의사 철회를 위한 인사관리 등에 관한 대화가 주로 오갔다”며 “A씨는 업무를 준비·마무리하거나 업무에 따르는 필요적 부수행위를 하던 중 재해로 사망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A씨가 그만둘 경우 다음날 음식점을 열 사람이 없었다는 점도 술자리와 업무 관련성을 인정할 요소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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