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일할 권리(the right to work)’와 ‘일할 자유(the freedom to work)’라는 유령이 한국을 떠돌고 있다. 누군가에게 일할 권리가 있으려면 동시에 일하지 않을 권리도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일하지 않을 권리를 누리는 사람, 즉 일하지 않고도 먹고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기 어려운 사람을 두고 마치 일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비열한 사기극에 다름 아니다.

일할 자유도 마찬가지다. 일할 자유가 있으려면 동시에 일하지 않을 자유도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일하지 않을 자유, 즉 일하지 않고도 먹고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기 어려운 사람을 두고 마치 일할 자유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거짓 선동에 다름 아니다.

노동자의 일할 권리가 허구의 주장이 아니려면 자본가가 어떤 이유로도 노동자의 일할 권리를 박탈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가 일할 계약을 특정 자본가와 맺었다면 노동자 스스로 그 계약을 파기할 때까지 자본가는 해당 노동자의 일할 권리를 박탈할 수 없어야 한다. 노동자가 일할 자유를 누린다는 게 현실적 의미를 가지려면 그 노동자는 자본가의 간섭이나 방해 없이 자기가 쉬고 싶을 때 쉬고 파업하고 싶을 때 파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 자신이 다시 일에 복귀하고 싶을 때 언제든 자유롭게 일터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자본가들이 경영상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으며, 국가기구 관료와 법률가들은 이를 자본가의 권리로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해고할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나라에서, 다시 말해 노동자들의 일할 권리와 자유를 짓밟는 자본가들의 권리와 자유를 강력하게 보장하는 체제에서 노동자들의 일할 권리와 자유를 말하는 건 위선이다.

취업을 원하는 노동자를 취업시키는 게 자본가의 의무는 물론이거니와 국가의 의무조차 아닌 사회에서, 또한 노동자와의 계약관계를 종료시키는 자유를 자본가들이 별다른 제약 없이 행사하는 사회에서 노동자가 일할 권리와 자유를 누리는 듯 떠들어대는 작태는 토심(吐心)스럽기 그지없다.

프랑스에서는 파업권이 노동자들의 단체인 노동조합이 아니라 노동자 개개인에게 보장된다. 내가 파업을 하고 싶으면 나 혼자 그냥 파업에 돌입할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다. 파업권을 노동자 개별 권리로 보장하는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노동조합이 집단적으로 파업을 해도 거기에 휩쓸리지 않고 일할 권리를 개인적으로 보장하는 데서 법률적 논리의 충돌을 볼 수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노동자 개인에게 파업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만약 노동자가 본인의 노동조건 개선을 목적으로 자본가가 명령한 업무를 개인적으로 거부하고 파업에 돌입한다면, 이는 자본가의 정당한 처벌과 해고 사유로 인정된다. 자본가가 부여한 업무를 임의로 거부할 자유가 없는 상태에서 일할 자유는 결코 생길 수 없다. 자본가가 명령한 일을 거부할 권리가 없는 체제를 만들어 놓고서 마치 노동자에게 일할 권리와 자유가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금으로 만든 십자가를 두고 살아 있는 예수라 떠드는 것에 다름 아니다. 노동자의 취업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자유와 노동자의 고용을 종료시킬 수 있는 권리가 자본가에게 광범위하게 주어진 법률 체제를 가진 나라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일할 자유와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임금 노예(wage slavery)라는 말이 있다. 임금을 받아야 먹고살 수 있는 이들을 일컫는다. 이들에게 임금을 거저 주는 자본가는 없다. 이들은 임금을 받기 위해 자신의 신체적 에너지와 정신적 에너지인 노동력(labour power)에 대한 사용권과 처분권을 자본가에게 바쳐야 한다. 이들이 취업을 못하거나 실업을 당해 임금을 받지 못한다면 이들은 노예보다 더 못한 상태와 지위로 추락하게 된다. 과거 노예주는 노예가 일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노예를 먹여 살려야 하는 법률적·도덕적 책임을 졌지만, 현대 자본가는 일하지 못하게 된 노동자를 부양할 책임을 지지 않는다. 노동자의 고용 상태나 지위와 상관없이 의무적으로 노동자를 부양할 제도적 책임을 자본가에게 묻지 않는 나라에서, 먹고살기 위해 억지로 일해야 하는 ‘노예로서의 권리와 자유’ 말고 노동자가 가진 권리와 자유란 뭐가 더 있을까.

대한민국 법률은 자본가가 명령한 일을 노동자가 거부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경제체제는 일을 하지 않는 노동자에게 의식주와 관련한 기본권을 보장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사회체제는 자본가에게는 엄청난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고, 노동자에게는 엄청난 의무와 굴레를 강요한다.

노동자의 일할 권리는 자본가가 명령한 일을 거부할 권리가 노동자에게 주어질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노동자의 일할 자유는 자본가에 종속돼 일하지 않더라도 먹고사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는 삶이 노동자에게 보장될 때 실현될 수 있다. 그렇기에 노동자의 일할 권리와 자유는 ‘일의 세계(the world of work)’를 자본가의 지배와 통제로부터 해방시키는 노동운동의 역사적 임무와 맞닿아 있다.

2020년 새해는 노동자들이 자본가가 지배하고 통제하는 ‘일과 고용(work and employment)’의 굴레에서 해방돼 자본가의 인생이 아닌 노동자 자신의 인생을 위해 노동을 쓸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는 운동이 더욱 성장하길 기원한다. 노동을 억압하는 옛것을 보내고 노동을 해방하는 새것을 맞아들이는 2020년이 되길 소망한다.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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