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길 위의 노동자와 함께한 삶이다. 이름 앞에는 늘 ‘노동인권 변호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정치적 성향이나 사회적 위치는 중요하지 않았다. 인권을 침해당하고 뿌리 깊은 차별 문제로 고통받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그랬던 그가 정의당에 입당하며 현실정치에 뛰어들었다. 2016년 경북 경주에 출마했기에 정치 도전이 놀랄 일은 아니지만 정의당 입당은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2016년에는 무소속이었다.

노동인권 변호사 권영국(56·사진). 그는 “정의당이 노동중심성과 진보정당 정체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촛불로 정권을 교체했지만 진보정치가 표류하고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가 사실상 실패하는 사이 불평등과 실질적 민주주의·특권이 심화했다고 진단했다. 권 변호사는 “정의란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노동이 대상화되는 노동존중 사회가 아니라 노동이 주체로 서는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내년 4월 21대 총선을 바라보는 권 변호사는 최근 정의당 노동인권안전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경주시위원회 창당추진위원장을 겸임한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광장 김용균 추모분향소에서 그를 만났다.

“최선이 아닌 차선의 선택”

- 정의당에 입당했다. 의외의 선택이란 시선이 많다.
“용산참사 진압주범인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잡겠다며 2016년 총선에서 경주에 출마했다. 그 후 국정농단과 지방선거를 거치며 변화된 정치지형 속에서 21대 총선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고민이 들었다. 대구·경북의 정치지형을 바꿔야 한다는 문제 인식이 있었다. 올해 초 공직선거법 개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논란을 보며 정당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 무렵 정의당에서 입당 제안이 왔다. 고민하는 시간이 굉장히 길었다. 현실정치를 하려면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소위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이 심각하게 후퇴하고 있지 않나. 보수정당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진보정당을 제대로 세우는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정의당이 진보정치의 정체성을 제대로 살리고 있는지, 19대 대선 당시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노동중심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그렇기에 고민의 시간이 길었다. 그러나 진보정치가 표류하고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가 사실상 실패하는 사이 우리 사회 불평등과 실질적인 민주주의·특권의 문제는 더욱 심화했다. 정권을 교체했지만 불평등 문제는 되레 깊어졌다. 진보정당으로의 선택이 불가피했다. 대중성 있는 진보정당을 고민했다. 정의당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차선의 선택이다. 외부에서 당을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직접 참여해 노동자 중심성·진보정당 정체성을 강화하고, 노동중심 정책과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내부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 노동중심성과 진보정당 정체성 강화를 말했다. 어떤 의미인가.
“언제부턴가 정의당이 노동현장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20대 국회를 되돌아보면 부각되는 노동정책이나 입법활동이 별로 없다. 일하는 사람의 정당·비정규직의 정당이라고 하지만 실제 비정규직 문제나 투쟁 현장에서 정의당은 존재감을 나타내지 못했다. 소수정당 한계도 있겠지만 당의 방향성이나 자원의 투자 미흡에 따른 결과라고 본다. 노동중심성 강화는 정당활동의 중심에 노동의 가치를 세우고 노동자를 정치주체로 집단화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톨게이트 비정규직 문제나 태안 화력발전소 김용균을 보자. 차별과 안전문제 해결은 노동이 당당한 사회를 위한 선결조건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과 정치활동을 중심에 놓지 못한다면 노동중심성은 선언에 그칠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한계 드러나, 노동자·민중 주체로 서야”

- 노동존중 사회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가장 먼저 찾았던 곳이 인천국제공항이다. 비정규 노동자들을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체성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파격적인 행보였다. 우리 사회 불평등 문제의 핵심에 노동 문제가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여성과 남성, 청년과 장년 간 격차가 불평등 문제의 핵심이다. 노동의 차별 문제를 해결하면 사회 전반의 차별 문제에 상당히 접근해 갈 수 있다. 그런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은 원청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 정규직화로 돌아서 버렸다. 자회사는 덩치를 키운 협력업체 또는 하청업체일 뿐인데도 정규직화인 것처럼 말한다. 자회사를 두겠다는 것은 차별을 인정하겠다는 의미다. 소득주도 성장을 이야기하며 최저임금을 올리고 장시간 노동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복리후생비까지 포함시키며 사실상 최저임금 인상을 무위로 돌렸다.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를 통과시키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급기야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에다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특별연장근로 허용범위 확대까지 이야기한다. 속았다는 느낌마저 든다. 더불어민주당이 가진 한계다. 노동자·서민이 직접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세력과 정당을 지켜야 삶의 질을 바꿀 수 있다.”

- 정의당 노동인권안전특위 위원장을 맡았다.
“노동의 차별 문제는 생명이나 안전, 목숨의 차별 문제로 이어진다. 안전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노동과 삶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청년·여성의 차별 문제와 함께 산업재해와 산업안전 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해결하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 ‘노동인권안전특위’로 이름을 지었다. 장애인 노동과 이주노동 역시 노동인권에 포함되는 문제다. 정의당은 위험의 외주화를 해결하기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 김용균법으로 불리지만 김용균이 없는 산업안전보건법 문제를 중심에 두고 활동해 나가야 한다. 노동자 차별·안전 문제를 핵심 과제로 안고 활동하겠다.”
 

▲ 정기훈 기자

“경주는 고교 비평준화지역, 수평적 사회 만들어야”

- 경주시위원회 창당추진위원장이다. 내년 총선에 다시 출마하나.
“국회에서 논의 중인 권역별 비례대표 석패율제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경주로 내려가면서 밝힌 ‘가장 보수적인 지역의 정치지형을 바꾸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다. 대구·경북이나 영남은 노동자 밀집지역이다. 노동정치를 부활하는 과정에서 대구·경북을 포함한 영남의 정치세력화가 매우 중요하다. 경주에서 출마해 당선하기를 바란다. 다만 그렇게 되지 못했을 때도 고민해야 한다. 선수가 출마하는 것에만 의미를 둘 수는 없지 않나. 성과를 내는 선거를 위해 여러 길을 열어 두고 고민하고 있다.”

- 경주에 두 번째 도전하는 것인데, 공략 포인트가 있다면.
“경주는 역사·문화·관광도시로 관광객이 많지만 고도제한 등으로 개발에 한계가 있다. 관광객이 머물고 소비할 수 있는 도시가 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지역소득을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지 방법을 찾아야 한다. 또 불평등 문제를 지역 차원에서 해결해 나가야 한다. 경주는 고등학교 비평준화 지역이다. 어느 학교를 졸업했느냐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특정고교 출신이 선점한 사회구조를 깨고 수평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정의란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매진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제대로 서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하고 채찍질해 달라. 지난 대선 때 나온 ‘노동이 당당한 나라’라는 구호가 마음에 와 닿았다. 노동존중 사회는 노동을 대상화시킬 우려가 있다. 그리고 노동존중 사회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는 결국 노동을 대상화시켰다. 노동이 당당한 나라는 노동이 주체로 서는 사회다. 우리 사회 주체로서 노동자 권리와 정체성을 인정하는 사회다.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동이 당당한 노동법안 3종 세트’를 입법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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