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동희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

업무상사고는 90% 이상이 산재로 승인되고 있다. 즉 사고 발생 경위가 명백한 경우에는 승인에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재해 경위가 명백하더라도 산재가 승인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업무상부상으로 인해 발생한 상병이 ‘퇴행성 질환’으로 진단될 때다.

노동자 A씨는 식당 근무 중 바닥 물청소를 하다가 미끄러지면서 무릎이 바닥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 이후 병원에서 ‘내측 반월상연골판 손상’을 진단받아 산재를 신청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수평파열 소견으로 퇴행성 질병’이라며 불승인 처분을 했다. 노동자 B씨는 건설현장에서 추락재해로 ‘좌측 회전근개 파열’로 산재를 신청했으나 공단은 ‘급성 손상시 발견되는 부종, 골좌상 등이 확인되지 않은 퇴행성 질환’이라는 이유로 불승인했다. A·B씨 모두 각 무릎·어깨 치료병력이 전혀 없었다.

사고로 인한 재해인데도 불승인되는 다수 사건이 위와 같은 ‘질병’의 경우다. 위와 같은 사건이 불승인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공단이 의학적 판단만 하기 때문이다. 공단 지사는 사고성 재해로 산재 신청을 받으면 ‘재해 경위가 확인되는지 여부’와 ‘상병이 확인되는지 여부 및 재해로 인한 상병이 발생 가능한지 여부’를 조사·판단한다. 전자의 경우는 담당자가 재해 경위의 사실관계를 조사하는 영역이다.

후자는 지사 자문의사(정형외과 또는 신경외과 등)의 자문을 통한 판단의 영역이다. 재해 경위가 명확하더라도 진단된 상병이 급성 사고로 인한 손상이 아니라 연령 증가에 의한 퇴행성 질병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는 재해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즉 의사들은 재해로 인해 급성손상이 아닌 퇴행성 질병은 ‘의학적 특히 정형외과학적 발생 기전’으로 보지 않는다. 정형외과 의사는 사고로 인한 급성 손상의 질병(주로 S코드로 진단되며, MRI 등 영상에서 부종·좌상·혈흔·신경압박 등이 보인다고 함)은 발생하지만, 퇴행성 질병(주로 M코드로 진단됨)은 기본적으로 연령 증가에 따른 자연적인 경과로 발생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둘째, 업무상사고로 인한 부상에 대해서는 법리적 판단이 이뤄지지 않는다. 업무와 질병의 인과관계는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돼야 하는 것은 아니며, 평소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한 기초 질병이나 기존 질병이 직무의 과중 등이 원인이 돼 자연적인 진행 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된 때에도 그 입증이 된 경우에 포함된다(대법원 2006. 3. 9. 선고 2005두13841 판결, 대법원 2010. 12. 9. 선고 2010두15803 판결).

또한 업무상부상으로 인한 질병에 대해 대법원은 요양급여의 성격, 즉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요양이 필요한지 여부로 판단하라고 수차례 판결했다(대법원 1999. 12. 10. 선고 99두10360 판결, 대법원 2000. 6. 9. 선고 2000두1607 판결).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위원회도 당해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개선방안을 모색했지만 시행되지 않았다. 산재심사위는 “퇴행성 증상이 있었더라도 업무에 지장이 없어 본인이 인지하지 못할 정도여서 재해 이전 정상적으로 근무를 하다가 재해로 인해 특정한 외력이 더해져 수술을 받아야 될 정도로 그 과정이 명백한 경우에는 외상 기여도,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 사고 전 치료내역, 사고(재해)의 구체적인 진행 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업무상재해 인정의 폭을 전향적으로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2015년 2월11일 ‘퇴행성을 동반한 업무상재해의 판단’).

이 사안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구성한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에서도 ‘업무상부상으로 인한 질병 인정 기준의 정립’을 권고했다. 구체적 내용은 “사업장 내 발생 사고의 경우 업무 외 원인으로 발병한 것이 명백하지 않은 한 업무상재해로 인정할 것, 기존 동일 질환으로 치료병력이 없는 경우나 사업장 내 발생한 업무수행 중 부상으로 인한 질병의 경우 업무상재해로 인정할 것, 영상 등 의학적 소견상 퇴행성이라고 하더라도 동일 질환으로 치료병력이 없거나 악화된 경우 인정기준에 포함할 것, 이를 위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34조2항을 개정하거나 관련 지침을 제정해 시행할 것”이다.

노동부는 고용노동행정개혁위 권고를 수용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여전히 이행하지 않고 있다. 산재를 단순히 의학적 발병 기전으로 판단하는 것은 산재보험 원칙에 위배된다. 공단이 업무상부상으로 인한 질병을 의학적 판단에 집착하는 한 산재 불승인과 치료기회 상실, 생활고 증가, 직장 미복귀 등 산재 노동자들의 고통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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