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웅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사업장에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보건관리체계가 있다. 보건관리체계를 통해 일하며 생기는 질환을 예방하고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일련의 과정이 사업장에서 기능하도록 한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사업장 규모나 종류에 따라 법적으로 보건관리체계를 마련하도록 의무화돼 있다. 필자는 사업주가 위탁한 보건관리전문기관에서 사업장을 방문하는 형태로 노동자들의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이렇게 노동자들의 건강관리를 하다 보면 사업장 보건관리가 근본적으로 매우 형식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물론 대규모 사업장과 일부 서비스 공급자에 따라 충분히 실효성 있게 보건관리를 하기도 하지만 노동자들은 건강에 실제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50인 이상 보건관리자 선임대상 사업장의 70%가량을 맡고 있는 보건관리전문기관의 업무를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상당수 기관이 노동자 건강에 도움을 주는 데 업무를 집중하지 못하고 행정기관에 보여 주기 위한 형식적 서류작업에 치중한다. 예컨대 뇌심혈관질환의 위험인자인 고혈압·당뇨·고지혈증 등 만성질환이 있는 근로자를 발견하고 치료하며 업무 수행에 적합한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근로자들을 치료과정으로 유도하고 적절히 관리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없다. 보건관리기관들이 의식할 수밖에 없는 기관평가에서도 정부는 의학적으로 치료가 필요한 근로자를 선별해 치료로 유도해서 건강상태를 호전시켰는지를 평가하기보다는, 단순히 다수의 검진 유소견자를 의학적 경중에 상관없이 기계적으로 상담한 것을 행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만성질환의 경우 사업장에서 치료가 필요한 노동자들을 상담해 보면 외래에서 만나는 환자와 치료 과정 자체가 다름을 알게 된다. 이미 스스로 병원을 방문한 환자와 치료를 선택하기 전의 현장 노동자는 같은 질환이라도 상담 내용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 결국 현장 노동자를 치료로 유도하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추가적인 노력이 소요된다. 더구나 보건관리 의사가 상담 근로자의 처방과 치료행위를 할 수 없는 현재 상황에서 치료유도와 관리는 더욱 힘들다. 그렇다고 이들에 대한 의학적인 관리를 포기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치료가 필요한 치료 전 단계의 노동자 집단은 일종의 제도적 접근이 가능한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치료는 전체 뇌심혈관질환 관리에서 매우 중요한 보건학적 의미가 있다.

직업성질환의 보건관리 역시 직접적 건강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기에는 보건관리전문기관 또는 선임 보건관리자라도 무력한 것이 일반적이다. 직업성질환을 언급하는 것 자체를 사업장은 위협적 제재 가능성으로 인식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보건관리업무상 이를 들춰내 관리하는 것은 굉장한 노력과 소통 과정이 필요하다. 가끔씩 의학에 근거한 소통으로 더 심한 집단발병 위험 가능성을 알리고 설득해 현장 개선이나 질환 관리가 되곤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선 보건관리기관에서는 굳이 이런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기관점검에서 발견되지 않을뿐더러 기관평가에서도 특수건강검진 유소견 이외에 실제로 노동자 건강에 의미 있는 직업병을 새로 발견하고 관리한다고 해서 가점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없는 직업병을 발굴하면 관리 사업장의 업무상질병이 증가해 평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또한 사고와 달리 질환은 업무관련성이 금방 드러나지도 않는다.

노동자 건강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의료적 보건관리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보건관리전문기관의 경우 민간계약 상태여서 사업주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행정기관 역시 사업장 보건관리를 의무적 행정사업으로 인지해 평가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산업안전보건법에는 보건관리자 업무 중 사업장 보건체계를 구축하는 여러 보건관리 총괄업무를 규정하고 있다. 보건관리전문기관과 선임 보건관리자가 총괄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사업장 총괄보건관리 역시 매우 중요하고 근본적이지만 사업장보건관리의 최종 목적이 노동자의 건강이라면 이를 향상시킬 수 있는 적절한 평가와 동기부여가 빠져서는 안 된다. 장기적으로는 현재 보건관리전문기관이 고용한 의사가 보건관리자 업무 중 일부로 수행하고 있는 일반질환과 직업성질환 등의 의료적 관리를 따로 분리하도록 하고, 이 업무를 치료 기능이 포함된 사업장 주치의가 전담해 직접적인 노동자 건강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앞으로 효과적인 사업장 보건관리를 위해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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