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의 조계사에 다녀왔다. 형형색색 만등에 나는 ‘벌써 부처님 오신 날인가’ 하다가 ‘아직 음력 2월인데…’ 하며 경내로 들어섰다. 고향마을을 떠난 지 40여년 만이었다. 지난해 연말에 뜻밖의 연락을 받고 만난 그는 낙산사 주지승으로 조계종 총무원의 총무부장을 맡고 있었다. 인연이란 뭔지, 종교라면 무심을 넘어 안 믿는 경지(?)인 내가 조계사를 다 방문했다. 그에게 급하다는 교육·상담 요청을 받고서 말이다. 가서 들어보니 조계종에 노동조합이 조직돼 총무원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했고, 총무원이 이를 거부하니까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했다는 거였다. 노동변호사로서 오로지 노동자측을 대리해 왔던 내가 사용자측을 교육·상담하다니 정말 인연이란 뭔지, 내 세상살이가 엉뚱하게 흘러가려는 것이 아닌가.

2. 뉴스를 검색했다. “중앙종무기관이 사회의 기업처럼 이윤추구에 무게를 두고 있지 않다는 점, 종무원들의 월급을 포함한 재정이 사찰분담금·시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불교언론지 ‘법보신문’은 이번 사태를 보도하고 있었다(2019년 4월3일자). 계속해서 “종교 밖 단체를 끌어들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에 대한 반감도 적지 않고, 노동권 등 사회적 문제에 중재자로 나서야 할 총무원장스님이 갈등의 중심에 서야 하는 행정절차가 진행된다는 점에 대한 다수 종무원들의 걱정 어린 시선이 많다”고 쓰고 있었다. 그리고 법보신문은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이 결정될 가능성은 아주 높은데 그럴 경우 총무원장스님과 민노총 일반노조 위원장이 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하는 상황을 신도이면서 불자인 종무원들이 바라보기가 쉽지 않다”고 한 종무원이 토로했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지난달 29일 조계사에서 내가 들었던 것도 이런 말이었다. 어째야 한단 말인가. 골치 아프니 산문(山門)을 걸어 잠글 것인가.

3. 지난해 9월20일 조계종 사무와 시설관리 등의 업무를 하는 종무원들로 구성된 민주노총 소속 민주연합노조 조계종지부가 조직됐다. 현재 중앙종무기관과 산하기관 종무원 약 300여명 가운데 40여명이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니 뭐 스님들을 조합원으로 조직하는 스님 노동조합은 아니고, 조계종 산하기관·사찰에서 일하는 직원인 노동자들을 조직대상으로 하는 노조인 것이다. 노조는 그동안 총무원을 상대로 세 차례에 걸쳐 단체교섭 요구를 했으나 응하지 않자 지난달 18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했다. 구제신청서에는 법적으로 단체교섭할 사용자 지위에 있다고 여겨지는 조계종 총무원장을 상대로 해서, 부당노동행위를 즉시 중단하고 노동조합 교섭요구사실 공고문을 부착하고 단체교섭을 시행할 것 등이 포함됐다(인터넷불교신문, 2019년 3월28일자). 한편 총무부장 금곡스님은 앞서 진행된 214회 조계종 중앙종회 종책질의에서 종무원 권익향상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조계종지부와 협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밝혔으며 “지난해 9명의 무기계약직 종무원 등을 전부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각 부서와 수차례 점심 공양을 함께하며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해 왔다”면서도 “이 같은 노력과 시도에도 성과가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이상은 노조가 설립되면 사업장들에서 볼 수 있는 노사의 흔한 모습이다. 스님들은 특별하다 하겠지만, 조금도 특별하지 않은 풍경이다. 단지 그것이 오늘 조계종에서 펼쳐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스님들이 놀라 대응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날 나는, 별일 아니라며 당연히 단체교섭하고 노조활동을 인정해야 할 일이라고 예상했던 질의에 법적으로 뻔한 답변을 하고 나왔다. 그리고 그렇게 법적으로 당연한 일을 하면 된다고, 그걸 피해 갈 방법은 없다고, 그러면 노조활동을 걱정할 것 없다고 강조해서 말했다. 출가로 스님이 됨으로써 속세를 떠났어도 세상까지 초월할 수는 없다. 스님이라도 세상살이에는 세상의 법을 초월할 수는 없고, 노동자를 고용해 사용한다면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노동법을 준수해야 한다. 너무 당연한 것이라서 대답하자니 나는 뻔한 말만 하게 된다. 그런데 당연하게 일은 진행되지 않았다. 조계종 총무원이 노조와 교섭한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총무원은 노조간부 3명을 보직해임하고 ‘산불피해 복구 지원’ 명목을 붙여 양양 낙산사로 대기발령 조치했다는 걱정스런 소식이 들렸다. 노조활동을 인정하고 단체교섭을 함으로써 부당노동행위를 해소하는 데로 가지 않고 새로운 부당노동행위를 더했다는 것이니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별스런 인연으로 했었던 내 방문상담도 쓸데없는 일이 되고만 것인가.

4. 지난 10일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단·상임분과위원장이 성명을 냈다. 중앙종회는 조계종지부 조합원들을 “외부 세력과 결탁해 종단을 혼란에 빠뜨리고 종단의 근간을 송두리째 뒤흔들려 하는 자들”이라며 “발로참회하고 조계종을 떠나야 한다”고 말하고, “종무원들이 민주노총에 가입해 조계종지부를 출범시키고 총무원장을 제소·고발한 행태를 볼 때 옳고 그름을 떠나 노조가 근로개선이라는 본연의 목적보다 정치적 운동에 초점을 맞추고 결성된 단체라고밖에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종회는 “조계종은 수익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와 같은 사업체가 아니며 각 사찰에서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신도님들과 스님들이 힘들게 모아 올려 보낸 분담금으로 운영이 이뤄지고 있다”며 “종단 고유목적과 특수성 등을 고려해 외부 노조 지부로의 가입은 적절치 않다”고 밝히면서 “우리 종단은 종교단체 특성상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 노조에 가입한 종무원들은 이제라도 초심으로 돌아와 본연의 책무를 다하라” 등의 당부 말을 남겼다(인터넷불교신문 2019년 4월10일자). 아 어째야 할까. 내 말이 쓸데없는 것이 됐다고 해서 한탄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있는 대로 인정하면 될 것을 죽어도 인정하지 못하겠다며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고 있으니 답답해서 한 말이다. ‘그래 노조를 설립했냐. 그럼 어떻게 해 줘야 하는지 법대로 해보자’고 하면 그만인 일을 두고서 마치 조계종단을 접수하기 위한 민주노총의 술수인 양 “종단의 근간을 송두리째 뒤흔들려 하는 자들”이라며 "나가라" 하고 있다. 이런 식이면, 이 나라에서 민주노총을 상급단체로 한 노조 조직이 설치된 회사 등 사업장들은 모두 큰일 난 것이겠다. 민주노총 노조를 인정해서 교섭하고 협약까지 체결한 곳이 거의 대부분인데, 그 사업장의 근간이 송두리째 뒤흔들려 뿌리째로 ‘정치운동단체’ 민주노총에 넘어가 버린 것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 사업장의 근간이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일은 없었고, 마찬가지로 “종무원들이 민주노총에 가입해 조계종지부를 출범시켰다고 해서 조계종단의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겁먹을 일이 아닌 것이다. 노조를 인정해서 단체교섭에 응했다면 노조가 지방노동위원회에 총무원장을 상대로 부당노동행위 구제를 신청할 일도 없었다. 그런데도 중앙종회는 “총무원장을 제소·고발한 행태를 볼 때 옳고 그름을 떠나 노조가 근로개선이라는 본연의 목적보다 정치적 운동에 초점을 맞추고 결성된 단체라고밖에 할 수 없다”고 노조를 비난했다. 단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라 노조를 노조로 인정해서 단체교섭에 응해야 한다고 총무원장을 상대로 구제신청한 것에 불과한 것을 두고서 “근로개선이라는 본연의 목적보다 정치적 운동에 초점을 맞추고 결성된” 노조라고 비난하는 것인데, 조합원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단체교섭을 위해서 부당노동행위 구제를 신청한 것임을 무시하고서 하는 정치적 비난이 아닐 수 없다. 수익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와 같은 사업체의 노동자만 노조할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노조법에는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자”면 ‘근로자’로서 자유로이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가입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5조). 분담금과 시주·기부금 등 해당 사업장의 재원이 무엇이든지 관계없다. 사람을 고용해 근로자로 사용하는 자는 노조법상 사용자로서 그 근로자들이 조직한 노조를 인정해서 단체교섭에 응해야 하는 법이다. 심지어 노조가 고용해 사용하는 자도 근로자로서 노조를 조직할 수 있고, 자신을 고용한 노조를 상대로 사용자라며 단체교섭에 응하라고 요구하고, 이를 거부하면 노조위원장을 상대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할 수 있는 법이다. 이는 조계종 종무원인 근로자들이 가입한 민주연합노조에서도, 민주노총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종교단체·사회단체·노동조합 등에서 노조가 조직돼 단체교섭을 요구하면, 해당 단체의 고유목적과 특수성 등을 고려해 볼 때 노조는 적절치 않다면서, 노조를 인정할 수 없으니 직원으로서 본연의 책무를 다하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일이 빈번하다. 심지어는 신앙심·소명의식 부족으로 몰아붙인다. 하지만 그저 법대로 인정하면 그만인 것을 두고서, 죽기 살기로 이판사판의 길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이 세상을 떠나지 않는 한 세상의 법,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법을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는 불법은 용납되지 않는다. 나는 이 나라에서 스님의 부당노동행위를 보고 싶지 않다. 노조할 자유를 억압하는 스님의 ‘불법’ 수호가 아니라, 노조할 자유를 보장하는 스님의 불법(佛法) 수호를 보고 싶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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