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관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기억

대기업 물류 자회사에서 신선식품을 운송하는 화물차 운전기사 A씨. 그는 회사 지시에 따라 정해진 시간에 물건을 싣고, 새벽길과 밤길을 달리는 생활을 계속했다. 동료 운전기사들은 화물적재함에 그려진 대기업 로고를 보며 ‘대기업 계열사에서 일하니 월급도 많이 받겠다’고 부러워했지만, A씨가 하루 15시간 넘도록 운전대를 잡고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기름값 등을 제하면 월 200만원 남짓이었다. 회사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일일이 지시하고 감독했다. 그럼에도 배차시간 등을 맞추기 위해 서두르느라 사고라도 나면 철저히 외면했다. "개인사업자니까 알아서 처리하라"는 식이었다.

A씨와 동료 운전기사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기로 했다. 졸음운전으로 길 위에서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생활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노동조합을 조직한 화물차 운전기사들이 교섭을 요구하자 회사는 "노동조합을 인정할 수 없다"며 "노동조합을 탈퇴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협박했다. A씨와 동료 운전기사들은 파업에 돌입했다.

2015년 가을 국회 앞 광고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하는 등 처절하게 파업을 했던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풀무원분회 조합원 중 분회장 A씨에 대한 형사재판이 지난주 확정됐다. 검사는 공소장에서 "풀무원분회는 노동조합이 아니라 일반 사조직이고, A씨가 파업 과정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계획하고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평범한 화물차 운전기사였던 A씨는 하루아침에 무시무시한 범죄단체 수괴가 돼 버렸다.

A씨는 수십 일 동안 계속된 파업 과정에서 벌어진 모든 일에 관여할 수 없었고 실제로 관여하지 않은 일이 많았다. 그럼에도 재판 과정에서 검찰 공소사실을 다투지 않았다. A씨는 그것이 분회장으로서 동료들에 대한 마지막 도리라고 했다(A씨는 파업 종료 과정에서 회사 요구로 모든 책임을 떠안고 동료 두 명과 함께 회사를 떠나야 했다).

법원은 A씨에게 벌금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길었던 A씨의 파업은 비로소 끝이 났다.

데자뷔

화물연대 농협물류안성센터분회가 지난달 31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올랐지만 운송료는 10년 가까이 요지부동이었다. 운전기사들이 인간답게 살아 보자고 노동조합을 설립하자, 농협물류안성센터는 "화물차 운전기사들은 개인사업자"라고 주장하며 노동조합(화물연대본부)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화물차 운전기사들에게 노동조합 탈퇴 확약서를 요구했고, 이를 거부한 조합원 81명에게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농협물류안성센터분회 조합원들에게 남은 선택은 파업뿐이었다. 4년여 만에 마주한 너무나 낯익은 모습…. 역사는 반복된다던가….

바람

화물차 운전기사들의 삶은 4년 전과 비교했을 때 그리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여전히 장시간 운전 등 살인적인 노동조건에 노출돼 있다. 이를 개선해 보고자 노동조합을 조직하더라도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섭거부와 계약해지 벽에 막혀 버리기 일쑤다.

화물차 운전기사들의 고달픈 삶에서 정부나 국회의 역할은 찾아보기 힘들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우리나라에 수차례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 3권 보장을 권고했다는데, 정부와 국회는 요지부동을 넘어 귀를 막아 버린 것 같다.

농협물류안성센터 화물차 운전기사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인간답게 살아 보려고 노동조합을 조직해 투쟁을 시작했다. 동료 화물차 운전기사들이 과거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그 길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 또다시 같은 선택을 한 것이다. 그것이 화물차 운전기사들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리라.

멀리서나마 화물연대 농협물류안성센터분회의 투쟁에 응원을 보낸다. 분회원들이 이번 투쟁을 통해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발전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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