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서용진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충남사무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일본 영화 <어느 가족>에는 일용직인 아빠가 산업재해를 당해 젊은 직장동료의 부축을 받아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속 엄마는 젊은 직장동료가 정규직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정규직이어서 좋겠다”고 부러워한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는 예외적인 것이 되고, 계약직·하청직·파견직 등이 일반적인 고용형태가 돼 버린 지 오래다. 더구나 청년노동자 김용균의 가슴 아픈 죽음에서 보듯이 위험한 업무는 계약직·하청직의 몫이 돼 버렸다.

이렇게 기간제·간접고용이 만연해 있는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누구나 보다 안정적이고 보수가 좋으며 안전한 정규직을 꿈꾸기 마련이다. 더구나 자신이 일하고 있는 공공기관에서 정규직 전환과 관련된 요건·절차 등을 명시한 규정을 두고 있거나 큰 영향을 주는 정부정책과 지침이 발표됐다면 정규직 전환에 관한 강한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함께일하는재단 사건에서 이른바 ‘정규직 전환기대권’과 관련해 비교적 상세한 판시를 한 적이 있다(대법원 2016. 11. 10. 선고 2014두45765 판결 등). 대법원은 근로계약·취업규칙·단체협약 등에서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거나, 그러한 규정이 없더라도 근로계약의 내용과 동기와 경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볼 때 근로계약 당사자 사이에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다면 정규직 전환기대권이 인정될 수 있고 사용자가 이를 위반해 합리적 이유 없이 정규직 전환을 거절하며 근로관계의 종료를 통보한 것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효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어느 기업체나, 특히 공공기관에서 취업규칙 등 내부 인사규정을 통해 인사평가 등을 거쳐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다면 근로계약 내용이나 동기 등 다른 사정을 살펴볼 필요도 없이 정규직 전환기대권이 인정된다고 봐야 한다.

이와 관련해 충남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충남 당진시가 내부 운영규정에 “상시·지속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제 근로자에 대해 인사위원회 심사를 거쳐 공무직(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고, 전환평가는 업무실적·직무수행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음에도 상시·지속업무에 종사한 기간제 노동자에 대한 정규직 전환을 거부하고 기간만료를 통보한 사건에서 정규직 전환기대권을 인정하면서 부당해고로 판정했다(충남2018부해334·중앙2018부해1242). 대법원 판례법리에 입각한 지극히 당연하고 올바른 판정이다.

그런데 충남지노위와 중앙노동위는 동일하게 당진시가 정규직 전환을 거부하고 계약만료를 통보한 다른 사건에서 명시적인 정규직 전환 의무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로기간이 8개월 정도로 짧은 근로계약을 했고, 계약기간 중간에 정규직으로 전환된 다른 근로자들을 한시적으로 대체하기 위해 선발됐다는 사실을 사후에 알았으며 계약기간 만료에 따른 퇴직원을 제출하거나 다른 구직활동을 했다”는 매우 부수적인 사정에 입각해 정규직 전환기대권을 부정하고 정당한 계약만료 통보라고 판정했다(충남2018부해483).

이는 위에서 언급한 대법원 판례법리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판정이고, 일시·대체적인 채용이라는 사실을 노동자들에게 주지했다는 사실이 전혀 입증되지 않았음에도 이를 인정한 부실하고 부당한 판정이다. 공공기관의 내부 인사규정은 근로조건과 고용관계를 규정하는 강한 구속력을 갖고 있어 노동자들은 이를 준수하거나 신뢰할 수 밖에 없으므로 이러한 인사규정에 명시된 정규직 전환 관련 규정을 통해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자신도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다.

당진시는 정규직 전환과 관련한 규정, 그것도 의무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해 인사위원회조차 거치지 않고 마음대로 계약종료 통보를 했는데 충남지노위와 중앙노동위는 법리와 사실인정 원칙에 입각하지 않고 이를 긍정해 줬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노동위원회는 노동법 법리에 입각해 노동자의 권리구제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지 공공기관의 사정을 적당히 헤아려 주는 정책적 판단을 하는 곳이 아니다. 해당 노동위 판정들이 소송으로 이어질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소송으로 가게 된다면 법원이 정규직 전환기대권과 관련한 판례법리에 입각해 올바른 판단을 내려 주기를 기대한다.

영화 <어느 가족>에서 “정규직이어서 좋겠다”는 부러움은 괜한 시샘이 아니고 남편이 보다 안전한 자리에서 일하기를 바라는 갈망이었다. 나아가 당진시 사례처럼 내부 인사규정에 정규직 전환 관련 의무규정이 있다면 “나도 정규직이 되고 싶다”는 부러움은 이미 대법원이 인정한 법적인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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