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일차 대전과 이차 대전을 합해서 흔히 '30년 전쟁(1914~1945년)'이라고 부른다. 서양의 관점에서 볼 때 30년 전쟁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문명인(서양인)이 문명인(서양인)을 착취하고 학살했다는 점이다. 과거의 학살, 예를 들어 아프리카 원주민과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학살은 그들이 "야만인"이라고 부른 사람들에 대한 학살이었다는 점에서 달랐다. 서양인들이 히틀러를 비난하는 이유는 “백인에게 죄악을 저질렀고 백인에게 모멸감을 선사했으며, 백인을 대상으로 백인만의 전유물인 식민주의 정책을 시행했기 때문”이다(에메 세제르). 히틀러는 괴물이 아니라 근대인의 자화상이었고, 아우슈비츠는 산업주의가 고도로 구현된 결과물이었다. 식민주의가 산업주의를 식민지에 적용하는 것이라면, 반대로 산업주의는 식민주의를 서양에 적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0년 전쟁은 식민주의와 산업주의를 하나로 결합시켰다.

산업주의는 인간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취급한다. 산업주의는 경제 또는 시장이라는 목적을 위해 인간을 하나의 ‘자원’이나 ‘자본’으로 취급하고, 천연자원을 착취할 때 사용하는 것과 같은 방법론을 인간에게 적용한다. 30년 전쟁은 산업주의를 공장 안에서 사회 전체로 확대시켰고, 전시와 평시를 구분하지 않고 일상적인 원리로 일반화시켰다. 산업주의는 사회를 약육강식의 정글로 만든다. 정글에서는 강한 인종이 약한 인종을 지배하고, 강한 계급이 약한 계급을 지배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된다. 산업주의는 과학의 이름으로 옹호됐다. 그것이 “과학적 노동조직”(테일러)이든 “과학적 사회주의”(엥겔스)든. 과학이기 때문에 종교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비판을 비껴간다. 인간은 그것에 적응하거나 도태되거나 할 뿐이다.

193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가 내건 슬로건은 이런 것이었다. “과학은 발견하고, 산업은 적용하며, 인간은 적응한다.” 30년 전쟁과 대학살의 경험은 산업주의에 대한 반성을 가져왔고, 근대적 합리성의 체화로 여겨졌던 국민국가의 정당성에 깊은 회의를 품게 만들었다. 국제사회는 이에 두 가지를 추진했다. 하나는 유럽공동체나 국제연합 같은 정치경제공동체를 건설해 전쟁을 방지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복지국가를 건설해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국가의 정당성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이차 대전의 발발과 함께 사실상 국제연맹이 해체된 후 남아 있었던 유일한 국제기구가 바로 국제노동기구(ILO)였다. 그러므로 전후의 국제질서를 재정초하는 작업은 ILO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바로 ILO의 목적에 관한 필라델피아 선언(1944년)이다. 영국의 사회보장제도를 기초한 베버리지는 이렇게 말했다. “빈곤은 혐오를 낳는다.” 그리고 혐오는 적과 동지의 이분법을 낳는다. 나치 법학자인 칼 슈미트는 적과 동지의 이분법에 기초해 적의 위협으로부터 ‘우리’ 공동체의 존속을 도모하는 것이 법의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적을 찾아야 한다. 외부의 적이 사라지면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빈곤과 혐오는 이렇게 평화를 위협한다.

반대로 필라델피아 선언은 “항구적 평화는 사회정의 기초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사회정의의 이름으로 이렇게 천명한다.

“모든 인간은 인종·신앙·성별과 상관없이 자유와 존엄과 경제적 안정 속에서 그리고 평등한 기회로써 자신의 물질적 진보와 정신적 발전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

필라델피아 선언이 채택된 이후 유엔헌장(1945년)이 채택되고, 또 세계인권선언(1948년)이 채택된다. 인류는 유엔헌장에서 “우리 일생 중에 두 번이나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인류에 가져온 전쟁의 불행에서 다음 세대를 구하고 기본적 인권, 인간의 존엄 및 가치, 남녀 및 대소 각국의 평등권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하며 (…) 더 많은 자유 속에서 사회적 진보와 생활수준의 향상을 촉진한다”고 결의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힘이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질서를 법의 지배로 돌려놓아야 한다. 세계인권선언이 “인간이 폭정과 탄압에 맞서 최후의 수단으로써 폭력적 저항에 의존해야 할 지경에까지 몰리지 않으려면 법의 지배를 통해 인권을 보호해야만 한다”고 천명한 것도 그런 이유다. 이렇게 해서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정의 원칙이 국제질서의 토대가 됐다. 이것이 곧 '필라델피아 정신'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jeseong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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