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미국에서도 위험의 외주화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산업안전감독관이 현장에 가면 가장 먼저 '하청노동자가 있느냐'는 질문부터 합니다."

미국 오바마 정부에서 7년간 산업안전보건청(OSHA)을 이끈 데이비드 마이클스(63·사진) 조지워싱턴대 교수(공중보건학)가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회의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미국의 김용균' 데이 데이비스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의 김용균, 미국의 데이 데이비스

데이 데이비스는 스물한 살 흑인 청년이다. 의료기술 분야 직업훈련을 받았지만 취업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2012년 8월16일 인력사무소를 통해 한 공장에서 파견노동을 하게 됐다. 럼주 같은 주류를 만드는 바카디라는 회사다. 그는 빈 유리병에 술을 담는 일을 했다. 첫 출근에 들뜬 그는 주황색 작업복을 입고 화장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찍은 인증샷을 남겼다. 약혼녀에게 설레는 마음을 전하며 쉬는 시간에 전화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공장 관리자가 막 출근한 그에게 컨베이어벨트 아래 떨어진 병 조각을 치우라고 지시했다. 끈적끈적한 럼 때문에 유리 조각을 치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관리자가 가리킨 컨베이어벨트에는 '가동 중에는 기계 아래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안전표지판이 있었지만 파견노동자 데이비스는 관리자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데이비스는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했다.

마이클스 교수는 데이비스가 공장에 첫발을 디딘 후 사망에 이르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3분짜리 CCTV 영상을 보여 줬다. 소름이 끼쳤다. 데이비스의 죽음은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 아래 떨어진 탄가루를 치우다가 입사 석 달 만에 숨진 고 김용균씨 죽음과 너무나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마이클스 교수는 "OSHA는 원청인 바카디가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아 사고가 났다고 보고 과태료 20만달러를 부과했다"고 밝혔다. 데이비스의 유족들은 바카디를 상대로 소송을 하다 거액의 합의금을 받고 소를 취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는 하청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면 원청에서 책임을 진다.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주체가 안전관리 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클스 교수는 "미국에서도 다양한 고용형태의 노동자가 한 사업장에서 일할 때 안전관리 책임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며 "그래서 산업안전감독관들은 현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청노동자가 있는지를 묻고, 하청노동자가 있다면 누가 이들을 위험요인에 노출시켰는지를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여러 사업장을 전전하는 파견노동자의 경우 늘 '신입직원'이기 때문에 사고 위험이 더 높다"며 "파견노동자 안전을 위한 투자도, 교육도 하지 않는 원청의 무책임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OSHA는 원청 사용자를 대상으로 '파견노동자 보호' 캠페인을 하고 있다.

"산업안전감독 전문성 높여야"

OSHA는 1970년 미국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되면서 설립됐다.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 규정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를 감시하고 산재예방 정책을 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OSHA에서 일하는 산업안전감독관만 2천100명에 이른다. 감독관의 절반 이상은 석사 이상 학위를 가진 전문가들이다. 마이클스 교수는 "기업의 안전보건 담당자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산업안전감독관 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미국에 OSHA가 있다면 한국에는 안전보건공단이 있다. 인력과 예산은 두 기관이 비슷한 수준이지만 기능과 역할에서 차이가 크다. OSHA의 경우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추고 산업안전보건 전략과 정책을 생산하고 사업장 감독기능까지 담당하는 반면 안전보건공단은 정부 정책이나 감독 전략을 개발하기 보다는 안전보건사고 예방을 위한 기술을 개발·보급하는 공공서비스기관에 가깝다.

마이클스 교수는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가에 비해 재해율이 높은 편"이라며 "사업장 안전·보건정책과 사업에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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