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연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

2018년 12월, 스물네 살 청년노동자 김용균님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한국서부발전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에서 1년짜리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그는 9·10호기 석탄운송용 컨베이이어벨트에 끼인 상태였다.

지난해 12월19일 공개된 그가 생전에 사용하던 휴대전화 속 동영상에는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근무환경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일터에서 젊은 비정규 노동자가 죽어 가는 현실을 우리는 모르지 않았다. 구의역 김군이 그랬고, 제주 특성화고 실습생 이민호군이 그랬고, CJ택배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 김군이 그렇게 죽었다. 고 김용균님이 남긴 유품마저 구의역 김군과 어쩜 그렇게 똑같을까…. 청년 비정규 노동자가 죽어 간 일터에는 노동권도 인권도 없었다.

고인을 죽인 것은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가 아니라 서부발전의 민영화·외주화다. 서부발전은 직접 운영해야 할 업무를 민영화했다. 경쟁도입을 이야기하며 하청업체로 업무를 외주화했다. 고인이 일했던 업무는 정규직이 하던 업무였다. 당연히 2인1조가 원칙이다. 그러나 발전소 외주화로 업무가 하청업체로 떠넘겨졌고, 만성적 인력부족으로 1인 근무가 됐다. 비용절감과 경영효율화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외주화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은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졌다.

2012년부터 5년간 발전소 노동자들은 346건의 안전사고로 다치거나 죽었다. 이 중 97%는 하청노동자 업무에서 발생했다. 사고로 숨진 40명 중 37명이 하청노동자였다. 설비를 점검하는 안전관리 업무는 정규직이 맡아야 함에도 발전사들은 필수업무마저 외주화했다.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방침은 지금까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하청업체 노동자의 재해사망률은 원청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8배나 된다. 공공부문에서조차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위험의 외주화’로 하청업체 노동자의 죽음이 반복되고 있다.

새해가 됐다. 그사이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다. 대통령은 유족을 만나겠다고 했다. 고 김용균님의 어머니는 처음에 이 나라를 저주한다고 했다. 우리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거리로 나섰다. 용균이의 죽음을 헛되이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김용균법이라 불려진 산업안전보건법 전면개정안이 28년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는 반복되는 죽음을 멈출 수도, 하청·재하청으로 이어지는 불합리한 고용구조를 바꿀 수도 없다. 일부 유해·위험작업의 사내도급이 금지됐지만, 구의역 하청작업이나 태안화력 하청작업같이 유해물질을 다루지 않는 하청업체 노동자 대다수는 이 법의 적용대상에서 빠져 있다.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 기업과 정부 관료는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 책임을 묻는 과정이 분명해져야, 위험이 전가되는 구조적 문제가 드러날 수 있다. 이를 위해 사고를 유발한 기업과 정부에 조직적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진상규명도 갈 길이 멀다. 원청인 서부발전은 김용균님의 사고가 수습되기도 전에, 노동부의 작업중지명령에도 컨베이어벨트를 가동했다. 중대재해 현장을 물청소로 훼손하기까지 했다. 그러는 사이 서부발전 관리자가 하청노동자에게 업무지시를 했다는 증거, 즉 불법파견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발전소에서 외롭게 죽은 청년노동자가 생전에 남긴 손피켓 사진에는 “노동악법 없애고! 불법파견 책임자 혼내고! 정규직 전환은 직접고용으로!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고 적혀 있었다. 되풀이되는 죽음 앞에 사회와 정부가 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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