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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기본권을 협상하는 나라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2019년이 시작되더니 할 일이 산더미다. 신정을 휴일로 보낸 첫주가 지나고서 첫 월요일에 사무실 책상에 앉아 탁상용 달력을 봤다. 다음주에 있는 비정규직단체 등이 공동주최하는 토론회 발제문 작성 마감이 내일까지다. 사회적 대화를 주제로 한 토론회인데, 내가 발표할 것은 노동기본권과 사회적 대화에 관해서였다. 노동기본권은 정말 오래 묵은 쟁점이다. 내가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떠들어 왔던 것도 20년이다. 그에 반해 사회적 대화에 관해서는 그 정도로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동기본권을 사회적 대화의 문제로 바라보지도, 노동기본권과 사회적 대화를 결부 지어 깊이 고민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니 나는 오로지 노동기본권에 관심을 두고 노동변호사로 일해 왔던 것이라고 말해야겠다. 20년 전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에서 법률국장으로 상근하면서 시작된 노동기본권에 대한 관심은 지금까지 한순간도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 금속노조에서 퇴직할 때까지 10년간 내 일의 대부분은 파업·점거 등 쟁의와 집회·시위 등으로 업무방해죄·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력행위처벌법) 위반 등의 죄로 체포·구속되거나, 기소된 노조간부 및 조합원들을 변호하는 것이었다. 내가 변호했던 피의자와 피고인을 모두 헤아려 보면 수천 명에 이를 정도였다. 당시 노조활동은 당연히 처벌을 각오할 일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파업투쟁을 앞두고 노조간부들이 구속결단식을 할 정도였다. 단병호·문성현·심상정·이석행·한석호 등 민주노총과 금속연맹의 임원·간부뿐만 아니라, 대우자동차·현대차·만도기계·현대차비정규직 등 수많은 사업장의 노조간부들도 경찰서와 구치소에서 접견하거나 법정에서 변론했는데 당시 나는 영장실질심사와 구속적부심사, 그리고 법정에서 이 나라의 노동기본권에 관해서 수도 없이 말해야 했다. 평화적인 파업 등 쟁의를 불법·범죄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고, 주체·목적·절차·수단과 방법 등으로 규제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등 법이 문제라고, 불법파업 등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헌법의 노동기본권 행사를 보장해야 한다고 변호인 의견서에 쓰고 또 썼다.

2. 2018년 7월 금속노조에서 퇴직하면서 노조활동으로 체포·구속된 노조간부를 변호하는 일은 많이 줄었다. 그렇다고 노동기본권에 관한 관심이 적어진 것은 아니었다. 노동자·노동조합을 위한 노동사건만으로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는 탓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노조활동으로 해고되고 손해배상 청구를 당하는 사건에서는 노동기본권이 문제 됐다. 각종 토론회에서 노동기본권 행사를 가로막고 있는 노조법의 전면적 개폐를 주장하고, 그 개폐 전이라도 노동자의 파업 등 노동기본권 행사를 노조법을 위반한 불법이라며 업무방해죄 등 범죄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행사에 관해 주체·목적·절차·수단과 방법 등 갖가지 제한과 금지로 규제하는 노조법을 두고서 노동기본권 행사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변하는 내 말에 대한 응답은 언제나 같았다. 아무리 평화적으로 파업 등 쟁의를 해도 노조법을 위반하면 불법·범죄로 노동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이 무렵 나는 위법 쟁의행위와 책임에 관해서, 그때까지 했던 내 주장을 정리할 기회가 있었다. 대법원 노동법실무연구회에서 발간하는 노동법주석서에 이 부분의 집필을 맡았다.

대한민국헌법은 노동자에게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노동기본권을 보장했다(33조1항). 이러한 노동기본권 행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 법의 목적이라고 규정하고서 노조법은 제정돼 시행해 왔다(1조). 그런데 그 노조법은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행사를 온통 제한하고 금지하고 규제하는 것으로 채워 놓았다. 1953년 제정된 법률은 제·개정될 때마다 노동기본권 행사를 제한·금지하는 사항들을 추가하고 그 위반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왔다. 이런 노조법에 따른다면 노동자들은 예외적으로만 노동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즉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행사는 예외적으로 허용되고,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이런 법을 두고서 머리를 쥐어짜 노동자의 평화적인 파업 등 쟁의가 불법·범죄로 되지 않도록 주석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헌법에 이 나라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이 보장돼 있다. 그걸 제한·금지하는 노조법 등 법률은 헌법 앞에 당당히 고개를 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기죽은 채 엎드려야 한다. 이상과 같이 노조법을 업신여기며 나는 쓰고 또 썼다.

3. 돌이켜 보면 나는 ‘실정’의 노조법을 두고서 싸워 왔다. 그 법이 폐지되지 않고 엄연히 존재하는 조건에서 노동자들이 노동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해석하고, 주장해 왔다. 물론 바람직한 것은 노동기본권을 규제하는 법을 전면적으로 개폐하는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나는 그걸 기대한 적도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아래의 김대중 정권에서는 기업 구조조정 등을 통해 노동자는 대상으로 내동댕이쳐졌을 뿐이다. 그런 와중에 노사정 내지 노정 간에 무슨 합의 내지 협의라도 할 듯이 권력이 내비치기도 했는데, 그것은 고용·임금 등 노동자권리의 삭감을 위한 명분 내지 모양내기였을 뿐이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정리해고·희망퇴직 등으로 일자리를 잃었고,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등 비정규직법을 통해 비정규직으로 내몰렸다. 만도기계 등 당시 이에 맞서는 노동자의 파업투쟁 등은 불법·범죄로 공권력에 의해 철저히 진압당했다. 2003년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이른바 노사관계 로드맵이 마련됐는데 그 뒤 노무현 정권은 임기 말까지 이를 추진하는 일에 몰두했다. 이명박 정권에서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등에 관한 노조법 개악도 그 뿌리는 이러한 로드맵에 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노동기본권 행사를 위한 법으로 보자면 이렇게 지난 20년은 암담했다. 박근혜 정권 심판을 위한 촛불집회에서 잠시나마 나는 희망을 품었다. 노동자가 노동기본권을 행사한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불안하긴 했어도, 간간이 촛불집회장에서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라”고 외칠 때면 촛불집회가 승리하게 되면 이 나라 노동자가 노동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될지 모른다고 나는 기대했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을 탄핵으로 심판하고서 실시된 19대 대통령선거에서 촛불혁명을 계승하겠다는 문재인 후보가 당선됐는데, 그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공약했다. 그가 공약한 대로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87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 원칙 적용에 관한 협약(98호),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29호)과 강제노동의 폐지에 관한 협약(105호)을 비준한다면(나라를 나라답게, 19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정책공약집, 87면) 이 나라 노동자들에게 노동기본권 행사가 보장될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들 핵심협약을 비준하고, 그 비준에 따른 국내법을 개정하겠다고 분명히 공약했었으니, 그 공약을 이행하기만 하면 나는 더는 노동기본권타령을 하지 않아도 됐다.

4. 하지만 점점 기대는 과거형이 되고 있다. 핵심협약 비준은 이젠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 사회적 대화를 통해서 노사정 간 합의를 통한 것으로 진행하고 있다. 비준에 앞서 국내법 정비를 말하고, 이를 위한 사회적 대화를 내세우고 있다. 노동자권리의 무엇을 양보하지 않고서 사용자측이 사회적 대화에서 노동기본권 행사를 보장하기 위한 노조법의 전면적 개폐에 합의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일부에서는 대체근로의 전면적 허용 같은 말도 나온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비준되는 일이 일어날 거라는 어떠한 기대도 할 수 없다. 그게 아니라면 권력이 선임한 공익위원들의 일방적 결정으로 밀어붙일 것인가. 그런데 지금까지 해 온 모습을 보면, 이런 기대도 헛된 것일 수 있다고 말해 주고 있다. 합의의 모양새를 갖춰서 국회에 제출해 노조법 개정을 한 후에 핵심협약을 비준하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합의도, 국회 입법도 모두 어려운 일이고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면 뭔가. 그저 비준을 위한 노력을 보여 주면 그만이라는 것인가. 오늘 노동기본권을 사회적 대화 대상으로 자꾸 강조하는 걸 보고 있자면 내게는, 노동기본권 행사를 보장하기 위한 핵심협약 비준을 하고자 노력했으나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고 국회에서 노조법 등 법 개정이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었노라고 말하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다시 한 번 읽어 보겠다. 헌법 33조는 노동자는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했다. 노조법 등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겠다고 법률로 유보하지 않았다. 노동자에게 단결의 자유, 즉 단결해서 교섭과 파업 등 행동할 자유를 보장했다. 국가는 이러한 노동자의 자유를 국가안전보장 등의 이유로 예외적으로 제한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노동자의 자유를 두고서 노사정 간 합의를 통해서 보장하는 것으로 여기고서 사회적 대화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자유를 국가권력이 법률로 부여하는 노동자권리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 32조에서 규정한 근로의 권리는 국가가 법률 등을 통해서 노동자에게 근로조건 기준을 정하도록 했다. 이러한 노동자권리는 노사정 간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합의해서 정한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자유, 헌법 33조 단결권 등 노동기본권은 사회적 대화로 합의해서 보장할 대상이 아니다. 헌법이 규정한 대로 노동자의 자유로 보장할 기본권일 뿐이다. 당장 국가권력이 노동자의 자유로 보장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 노동자의 자유, 노동기본권을 협상하는 나라는 노동자에게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가 아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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