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평범한 삶이 더 좋아지는 한 해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노동시간단축을 "우리의 삶을 삶답게 만들기 위해 미룰 수 없는 과제"로 꼽았다. 최저임금 인상은 "우리 경제 체질을 바꾸는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힘을 실었다.

이런 다짐은 1년도 안 돼 고꾸라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 17일 열린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단축은 국민 공감이 중요하다"며 "필요한 경우 보완조치도 함께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언론과 재계가 "노동개혁으로 기업이 망한다"고 떼를 쓴 결과다. 지난 1년간 부진했던 고용지표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매일노동뉴스>가 노사정 관계자와 노동전문가 100명을 상대로 조사한 2018년 10대 노동뉴스에서 노동시간단축과 탄력근로제 확대 추진이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100명 중 78명이 선택했다. 올해 7월부터 특례 업종을 제외한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을 넘겨 일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워라벨(일과 생활의 균형)이 우리 사회 화두로 떠오르는 듯싶었다.

당·정·청은 그러나 6개월 계도기간(처벌유예)을 뒀다. 법을 지키지 않아도 처벌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12월에는 처벌유예 기간을 내년 3월까지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 한편에서는 탄력근로제 확대까지 추진하고 있다.

노동시간단축·최저임금·사회적 대화
해 넘긴 최대 이슈


노동계 반발 속에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는 70표로 2위에 선정됐다. 국회는 매달 지급하는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수당 일정 비율을 넘어서는 임금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시켰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최저임금이 올라도 월급은 그대로인 2천500만원 이하 저임금 노동자가 21만6천명이나 된다. 최저임금 인상효과 무력화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10.9%로 가까스로 두 자릿수에 턱걸이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고 사과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경제부처가 최저임금 결정방식 이원화 등 최저임금 제도를 손질하겠다고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각각 공동 3위와 8위를 기록했던 최저임금과 노동시간단축 이슈는 내년까지 노동계를 뒤흔들 최대 쟁점으로 지목된다.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은 3위에 올랐다. 63표를 획득했다. 사회적 대화는 올해 1월 노사정대표자회의가 복원되면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유탄을 맞고 휘청거렸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새로운 타이틀을 내걸었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정책대의원대회 유회로 참여가 불투명해지면서 또 한 차례 위기를 맞았다. 경사노위는 11월 민주노총 자리를 비워 둔 채 출범했다. 지금까지는 에필로그에 불과하다. 본게임은 내년부터다. 당장 2월 임시국회가 열리기 전에 탄력근로제 확대를 비롯한 노동시간제도를 논의해야 한다.

4위는 광주형 일자리(47표)다. 사회통합형 일자리의 길은 험난했다. 2014년부터 추진한 광주형 일자리는 올해도 현실화하지 못하고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사회연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광주형 일자리 실험 성패에 노사정의 눈과 귀가 쏠린다.

노회찬 그리고 황유미

안타까운, 너무나 안타까운 이름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타계 소식이 5위에 선정됐다. 고인의 장례식장에는 7만2천341명이 찾아 조문했다. 국회 청소노동자들은 "사람 취급을 해 줬던 유일한 국회의원"으로 그를 기억했다. 국회에서 영결식을 마치고 마지막 떠나는 길에 청소노동자들이 도열해 손 모으고 애도하는 장면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린다.

6위에는 삼성전자와 반올림의 중재판정 이행합의와 대한민국을 뒤흔든 미투(Me Too, 나도 피해자) 운동이 함께 자리했다. 삼성전자는 고 황유미씨의 백혈병이 세상에 알려진 지 11년 만에 직업병 피해자에게 사과했다. 반올림은 새로운 기술 유입이 빠른 전자산업에서 직업병 예방·보상운동 '시즌 2'를 예고했다.

2018년은 여성들에게 특별한 해다. 서지현 검사의 용기는 성폭력에 대한 침묵의 금기를 깨뜨렸다. 정치계·경제계·문화계·종교계 가릴 것 없이 성폭력에 대한 제보와 폭로가 봇물을 이뤘다. 미투 운동은 학교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을 공론화한 스쿨미투로,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성별 임금격차를 비판하는 페이미투로 확산했다.

기억하라, 정의는 승리한다

사필귀정. 그릇된 것처럼 보여도 바르게 돌아간다. 지난 9월 전원 복직에 합의한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은 31일 평택공장으로 다시 출근한다. 2009년 2천400여명의 정리해고자 명단 발표 이후 9년 만이다. 코레일과 철도노조는 2006년 정리해고 뒤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던 KTX 승무원 180여명을 대상으로 특별채용 방식의 복직을 실시한다. 12년 만이다. 이 밖에 노조활동을 이유로 해고됐던 철도노동자 98명과 서울교통공사 노동자 30명이 일터로 돌아갔다. 반면 공무원과 전교조 해직자들은 여전히 차가운 거리에서 "원직복직"을 외치고 있다.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과 대한항공·아시아나 오너 일가가 벌인 직장갑질이 37표로 9위에 올랐다. 삼성과 포스코·IT업계에서 몰아쳤던 노조 조직화 바람은 34표로 10위에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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