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지난 13일 경기도 양주 모란공원 전태일 묘역에서는 48년 전 이날 평화시장 앞에서 스스로 온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분신 항거한 전태일을 추모하며 새로운 다짐을 하기 위해 많은 전태일의 후예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생전 전태일의 친구들과 70년대 활동했던 노동운동의 대선배를 비롯해 투쟁현장에서 달려온 비정규직 젊은 노동자까지 다양한 참가자들이 모두가 마음속에 자기의 전태일을 품고 무리지어 서 있었습니다. 정당 대표나 장관급 관료부터 고등학생 자원봉사자까지 뒤섞여 있었지만 전태일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했습니다. 다만 이날 전태일 노동상을 받는 이주노동조합의 네팔 출신 위원장 우다야 라이만 돋보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전태일을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태일을 찾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세월이 지나고 우리 사회도 많이 바뀌고 발전했는데 왜 아직도 전태일은 우리 속에 살아서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것은 시대를 꿰뚫고 흐르고 있는 인간해방정신, 바로 전태일정신이 살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첫째로 풀빵정신입니다. 천태일은 자신도 극도의 가난 속에서 늘 억눌려 살았지만, 자신보다 더 힘들고 억울하고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라도 함께하고 도와줬습니다. 재단보조나 재단사를 하면서 자기 밑에서 일하는 시다들이나 미싱사들을 어떻게라도 도와주려고 애쓰는 모습이라든지, 특히 배가 고파 굶주린 어린 시다들에게 차비를 아껴 풀빵을 사 주는 그 사랑의 마음은, 맹자의 측은지심이나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이나 부처님의 자비심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바보회를 만들어 실태조사를 통해 평화시장 일대에서 고생하는 여공들을 도와주려고 나섰다가 오히려 해고당해 삼각산 기도원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하고 지내다가 다시 평화시장으로 돌아가는 결단을 하는 전태일의 행동은 바로 이런 풀빵정신의 발로였습니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둘째는 모범기업정신입니다. 전태일은 편협하지 않았습니다. 혼자 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늘 친구들과 같이 일을 도모했고 함께 힘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일을 이뤄 나가는 실사구시의 태도를 늘 견지했습니다. 업주(사용자)는 말할 것도 없고 노동청과 시청을 방문해 호소했고 근로감독관을 만나 따지기도 했습니다. 실태조사 결과를 가지고 기자를 만나 많은 사람이 평화시장 봉제노동자들의 실상을 알게 해 달라고 매달리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대통령에게 간곡한 편지를 쓰기도 했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했음에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돌아오는 것은 절망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전태일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대안을 찾아 모범기업을 경영해 근로기준법을 다 지키고도 노동자는 정당한 임금을 받고 업주는 적정한 이윤을 남기는, 함께 잘사는 길을 모색했습니다. 눈알을 팔아서라도 마련해 보려 애썼던 초기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결국 물거품이 됐지만 그의 일기장에 자세하게 기록한 계획서를 보면 지금이라도 바로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셋째는 열사정신입니다. 시대의 어둠은 너무 짙었습니다. 전태일 개인의 몸부림이나 바보회·삼동회 수준으로는 거대한 물결을 헤쳐 나갈 수 없음이 확인됐습니다.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모든 법들은 평화시장 노동자들에게는 멀리 있었고, 노동청이나 대통령도 문 밖에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 모든 것들이 폭력의 폭풍이 돼 덮치고 있었습니다. 나룻배라도 만들어 헤쳐 나가 보려 했으나 나뭇조각 하나 구할 수 없었습니다. 큰 얼음덩어리를 금 가게 하는 송곳 같은, 칠흑 어둠을 밝히는 작은 불씨 하나가 필요했습니다. 전태일은 스스로 불씨가 되기로 합니다. 그 길만이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유일한 길이라 믿었습니다. 그는 근로기준법을 품에 안고 자기 몸에 불을 붙여 스스로 횃불이 됐습니다.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 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려야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전태일재단 이사장 (presiden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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