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연대노조
고용노동부가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방송사·외주제작사의 사용자 책임을 감독급 스태프들에게 떠넘기는 내용의 근로감독 결과를 확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언론·노동·사회단체들은 방송사·외주제작사의 사용자 책임을 분명히 하고 턴키계약을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노조와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를 비롯한 단체들은 20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부가 최근 확정한 드라마 제작현장 근로감독 결과를 공개했다.

노동부는 올해 3월12일부터 3개 드라마 제작현장을 대상으로 드라마 제작현장 근로감독을 실시했다. 언론노조를 비롯한 단체로 구성된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 TF’가 올해 2월 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KBS 드라마 <라디오 로맨스>, OCN 드라마 <그 남자 오수>, tvN 드라마 <크로스> 등 3개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작업한 외주제작사 네 곳과 도급업체(도급업자) 29곳이 감독 대상이었다. 노동부는 현장 설문조사를 통한 실태조사와 개별 정밀조사 방식으로 근로감독을 실시했다.

노동부 “조명팀 감독급 스태프는 사용자”

그런데 노동부는 근로감독 결과 외주제작사와 도급계약(턴키계약)을 맺은 조명·동시녹음·장비·미술팀의 감독급(팀장급) 스태프를 노동자가 아닌 사용자로 판단했다. 이들에게 법 위반을 비롯한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물었다. 도급계약을 맺은 한 감독급 스태프는 노동부에서 “근로조건을 서면으로 명시하지 않는 등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17조를 위반했다”며 주의조치를 받았다.

이들 단체가 공개한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해당 드라마 제작현장은 ‘방송사→외주제작사→연출감독 및 분야별 팀장→스태프’로 내려가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이뤄져 있었다. 연출·촬영·제작팀은 외주제작사와 개인별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조명·동시녹음·장비·미술팀은 외주제작사와 팀별 도급계약(턴키계약)을 맺고 있다.

스태프들 중 각 분야별 감독급은 사용자, 팀원급은 노동자성이 인정된다는 것이 노동부의 입장이다. 노동부는 “각 분야별 팀의 스태프들은 해당 팀장들에게 구체적으로 업무를 지시받고 있어 업무수행에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자로 인정된다”며 “팀장 등 외주제작사와 도급계약을 체결한 업체(업자)는 독립된 사업주로서 노동자성이 부인된다”고 밝혔다.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턴키계약이란 방송사나 외주제작사가 조명팀 같은 각 팀의 감독급 스태프와 통째로 도급계약을 맺는 방식이다. 제작비는 감독급 스태프에게만 지급하고, 감독급 스태프가 나머지 스태프의 급여를 지급한다. 제작비엔 출장비·장비 사용비·개인당 인건비 같은 항목이 명확하게 명시돼 있지 않다. 방송사·외주제작사의 책임을 도급계약을 한 감독급 스태프에게 떠넘기는 구조다.

언론·노동단체 “진짜 사용자는 방송사·외주제작사”

이들 단체는 “스태프들의 진짜 사용자는 방송사·외주제작사”라고 반발했다. 김진억 희망연대노조 나눔연대사업국장은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실질적인 지휘·감독은 방송사 피디나 외주제작사들이 하고 있고, 턴키계약을 맺은 감독급 스태프들은 지휘·감독·통제권을 위임받아 하는 수준”이라며 “방송사나 외주제작사는 저임금·장시간 노동으로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 턴키방식의 계약을 스태프들에게 사실상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노동부의 이번 근로감독 결과가 드라마 제작현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들은 “최근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 요구가 확산되자 CJ E&M과 KBS 드라마 외주제작사가 턴키계약 대신 스태프들과 개별 계약을 체결하겠다고 밝혔는데 노동부가 현장개선 노력을 거꾸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며 “방송사와 제작사는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턴키계약 관행을 그대로 유지하게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방송사와 제작사가 자신들의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이게 하려면 정부당국의 규제가 중요하다”며 “노동부는 턴키계약을 한 감독급 스태프들을 사용자로 둔갑시킨 판단을 즉각 철회하고 정부는 방송제작 환경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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