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8.9.23 일 08:00
상단여백
HOME 칼럼 연재칼럼 노노모의 노동에세이
노동자 고통 치유 못하는 노동법이진아 공인노무사(이산 노동법률사무소)
   
▲ 이진아 공인노무사(이산 노동법률사무소)

노동은 결국 인권의 문제다. 노동하는 주체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노동관계법이 과연 인권법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걸까, 국민의 법감정을 따라가고 있긴 한 걸까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상담 중 “결국 법이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거네요” “결국 딱히 해결방법이 없다는 얘기시군요” “제가 참거나 회사를 나가는 수밖에 없겠네요” 같은 반응을 듣게 되는 경우들이 있다. 그 대답은 심정적으로 가장 듣기 힘든 대답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나는 가장 듣기 싫은 그 대답을 자주 듣고 있다. 아래의 노동자들에게도 나는 그다지 속 시원하고 뾰족한 방법들을 알려 주지 못했다.

A는 회사 대표의 부당한 업무지시를 거부한 이후 대표의 눈 밖에 났고, 결국 사소한 일을 빌미로 해고를 당했다. 이에 A는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고, 노동위는 A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인정했다. 회사 대표는 노동위 심문회의 바로 다음날 “임금상당액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라고 노골적으로 얘기하며 A를 복직시켰고, 신뢰할 수 없는 직원인 A에게 일을 시킬 수 없으니 회의실에서 대기하라고 했다. 대기발령 처분을 하는 거냐는 A의 항의에 대표는 그건 아니고 지금 시킬 일이 없기 때문이니 회의실에서 대기하든 사표 쓰고 집에 가든 그건 알아서 하라고 했다. A는 노동위 조사관에게 연락해서 상황을 얘기했으나 아직 판정문도 나오지 않았고, 구제명령 이행기간이 지난 다음에야 불완전이행 등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 당장은 본인이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덧붙였다. 결국 A는 스스로 사표를 제출하고 퇴사를 선택했다.

B는 직장내 따돌림을 당했다. 일상적인 식사·회식 등에서 배제되는 건 당연했고, 회의 자리에서도 소외돼 갔다. 그렇게 B는 업무를 빼앗겼다. 사무실에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B는 그 모욕적 상황들을 견디기 어려웠다. 근무지를 벗어나 다른 곳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다. 팀장은 궂은일이 있을 때만 B를 불러 일을 시켰다. B는 그 역시 부당하다고 느꼈다. 팀장의 지시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불응하는 경우들이 발생했다. 결국 회사는 B를 업무지시 불이행, 근무지 이탈 등을 이유로 해고했다. B는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고, 지방노동위는 B의 해고는 정당하다며 기각 판정을 내렸다. 회사에서 따돌림이 있었든 없었든 이유를 불문하고 B가 팀장의 업무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근무지를 이탈하는 건 회사 입장에서 사회통념상 근로관계를 지속할 수 없는 정당한 이유라고 본 것이다.

C는 회사에서 처음 해고처분을 받은 뒤 1년이 지나서야 복직을 할 수 있었다. 회사 내 재심 신청, 지방노동위, 중앙노동위를 거치면서 1년여의 시간이 지난 것이다. 지방노동위 역시 C의 해고는 부당하다고 판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이행강제금을 내면서까지 C를 복직시키지 않았다. 결국 중앙노동위가 C의 해고는 절차적으로 하자가 있기 때문에 부당하다는 판정을 하고난 뒤 구제명령 이행기간이 끝나갈 때쯤에야 회사는 C를 복직시켰다. C는 1년여간 재심과 노동위 구제신청 과정을 거치면서 동료들의 진술서, 회사측의 인격적 모독에 시달리며 지쳐 갔다. 하지만 복직만을 기다리며 C는 그 시간을 버텼다. 1년이 지나서 겨우 복직을 할 수 있었지만 회사는 절차적 문제를 없애고 다시 C에 대한 징계를 진행해 또다시 해고했다. 지방노동위는 절차가 치유된 상태에서의 C에 대한 해고는 정당하다고 했다. 절차적 하자가 회사의 귀책으로 발생한 것이라는 점, 1년여간 C가 해고상태라는 불안정한 지위에서 여러 정신적·경제적 고통을 받았다는 점은 전혀 참작되지 않았다.

이 상황들을 나는 법리와 별개로 심정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A와 B·C 그리고 여기에 다 적지 못하는 D·E·F…. 그 수많은 노동자들이 회사로부터 인격적 모독과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 때, 노동관계법은 언제까지 이렇게 무기력해야 할까.

A에게 참아야 한다고, B에게 조금 더 착한 노동자가 됐어야 한다고, C에게 법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얘기하고 싶지 않다. 노동관계법이 좀 더 현실감 있고 역동적이면 좋겠다. 노동관계법은 노동자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이진아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진아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