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일자리가 늘지 않자 청와대가 흔들리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에 가서 삼성 이재용을 은근슬쩍 만나더니,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놓고 삼성으로 찾아가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면 그렇지, 문재인이라고 별수 있나, 라면서 기죽었던 재벌들은 콧노래 불렀으리라. 특히 이재용 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경영승계도 완성해야 하는 삼성 입장에선 경사였으리라.

촛불 여론은 냉랭했고, 삼성은 부랴부랴 발표했다. 3년간 180조원. 그중 130조원은 국내에 투자하겠다고 했다. 이미 투자한 것과 내용 없는 추정치까지 뻥튀기해 발표한 건데, 많은 언론은 삼성의 발표대로 받아 적었다.

일련의 과정을 보며 청와대에 대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삼성의 투자가 새로운 일자리를 늘릴 거라고 정말 믿는 것일까. 재벌 투자가 고용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바뀐 지 벌써 한참인데, 청와대는 그 현상과 이유를 정녕 모르고 있단 말인가.

삼성은 130조원을 투자해 4만명을 채용하겠다고 했다. 70만명의 간접 고용유발효과도 덧붙였다. 4만·70만 수치만 보면 적잖은 고용효과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애초 삼성은 3년간 2만6천명 채용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저렇게 퇴직하는 숫자를 대체하는 예년 수준의 채용계획이었다. 이번 발표를 통해 추가로 늘린 수치는 1만4천명이다. 물론 이것도 적지 않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기대하는 것은 세상물정 모르는 꼴이다.

일자리를 실제 늘리는 대책이 되려면, 삼성의 국내 총고용 규모를 지금의 몇 명에서 3년 뒤에는 몇 명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해야 한다. 그러나 그럴 생각이 없기에 그리하지 않았다. 삼성은 늘 그랬듯, 추가 채용하는 만큼 기존 직원을 더 줄일 거다. 또는 4만명을 채우지 않은 채 배째라 할 거다. 어차피 3년 뒤면 대통령은 레임덕이고 국민은 까먹을 테니까. 그리고 70만이라는 수치는 책임질 필요가 없는 여론 기만용 말장난에 불과하다.

지난해 11월7일 전자신문엔 '반도체 생산 무인화, 클린룸 직원 제로 시대 열린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내용을 인용하겠다.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김기남 사장은 “평택1라인은 세계 최고 기술이 적용된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공장으로, 클린룸 안에 상주하는 오퍼레이터가 제로(0)”라고 했다. 공장을 견학한 삼성반도체 퇴직임원들에게 한 말이다. 그 자리에서 퇴직임원 A씨는 “상당 부분 자동화를 이룬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고도화돼 있을 줄은 몰랐다” 고 감탄했다.

100% 자동화된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공장, 별도 장비 조작이 필요하거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투입되는 극소수 전문직 노동자만 필요한 무인 로봇공장, 수원공장에 있는 수만 명의 노동자가 불필요한 공장. 이것이 삼성의 앞선 대규모 투자의 결과다. 당시에도 삼성은 40만 고용유발효과를 홍보했다.

이 현상은 삼성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다시 기사 내용이다.

"최근 짓는 반도체 신공장은 고도화된 자동화 설비 덕에 라인에서 방진복 입고 상주하는 노동자 숫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2015년 8월 본격 가동한 경기도 이천 소재 SK하이닉스 신공장 M14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 처음으로 공장을 둘러본 정부 고위관료들은 라인 내 근무 직원이 매우 적어 깜짝 놀랐다. 그러자 SK 관계자는 '기계가 다 자동으로 하기 때문에 생산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재벌이 투자할 때 고려하는 핵심 중 하나는 인간노동을 줄이는 것이다. 투자가 대규모화되는 배경엔 수억 원을 넘는 로봇의 수천대 수만대 도입이 한몫한다. 삼성의 국내외 180조원 투자는 한국의 고용축소 흐름을 부추길 거다. 평택2공장 증설은 수원·기흥·구미 공장 수만 명의 인간노동 축소로 귀결될 거다. 바이오산업도 AI산업도 마찬가지다. 삼성이 투자하겠다는 영역은 전부 로봇노동으로 전환되는 산업이다. 4차 산업혁명 중심에 선 산업이다.

투자를 막자는 주장이 아니다. 더 적극 투자하게 해야 한다. 문제는 투자의 방향이다. 청와대는 삼성 목줄을 더 세게 쥐어야 한다. 일자리를 대폭 늘리는 대책을 내놓으라고 압박해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점검해야 한다. 그래야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 최소한 일자리 축소의 속도라도 늦출 수 있다.

청와대에 의구심을 품다가 어디를 탓하랴 싶었다. 내 얼굴에 침 뱉기였다. 고민 없기는 노동운동이 더 심각하다. 자동차와 금융과 서비스 등 곳곳에서 전면화될 조짐이 보이는데, 하루빨리 대책을 만들고 노·사·정 협의도 하고 여론도 만들어야 하는데, 노동운동은 천하태평 하세월이다.

4차 산업혁명이 불러오는 일자리 축소는 노동자 사활이 걸린 문제다. 국민 생존에 관한 문제다. 일자리는 청와대와 노동조합이 공통의 이해를 갖는 영역이다. 일자리를 축소하는 재벌에 맞서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

로봇세 도입과 재벌기업 의무 할당고용, 인간과 로봇의 협업 작업체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함께 모색하고 펼쳐야 한다. 한시가 급하다.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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