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수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최근 일부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휴게시설 규모가 지나치게 작거나, 화장실 같은 부적절한 공간을 휴게시설로 사용하는 사례가 알려지면서 사회적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특히 휴게시설을 창고로 사용하거나 폐쇄하는 등의 사례도 있어 대중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고용노동부가 얼마 전 이런 노동자들을 위해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운영 가이드’를 마련했다고 한다.

가이드에는 휴게시설 설치의 필요성, 실태, 관련 규정, 설치 및 운영 가이드, 우수사례 등이 포함돼 있다. 설치 및 운영 가이드의 주요 내용은 공간(위치·규모), 내부환경(온도·습도 등), 조명, 소음, 마감재료, 비품 및 휴게시설 관리로 구분돼 있다.

가이드 중에서 공간(위치·규모)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휴게시설 위치는 작업공간과 위험반경에서 분리된 작업장 내에, 작업공간에서 100미터 이내로 걸어서 3~5분 안에 이동할 수 있는 위치에, 사업장이 넓을 경우 거점별로 휴게공간을 마련하거나 각 층마다 설치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규모는 의자·탁자 등을 포함해 1인당 1제곱미터, 최소 전체 면적은 6제곱미터를 확보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79조(휴게시설)를 비롯한 현행법에 휴게시설에 관한 조항이 있긴 하지만 구체적인 설치기준은 없었다. 노동부의 이번 가이드는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쉴 권리를 좀 더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취지 자체는 긍정적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노동자들이 휴게시설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서 쉬지 못했던 것인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2008년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의자를’ 캠페인을 했다. 판매직 노동자들의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캠페인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대형 유통업체들은 곧바로 전국 매장에 의자를 비치하겠다고 했다. 판매직 노동자들의 앉을 권리가 보장되는 듯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그때와 크게 달라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노동부는 올해 6월 ‘판매직 노동자 건강보호 대책’을 수립해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 대책은 10년 전 캠페인 당시 발표한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같은 대책을 몇 번이나 반복해야 노동자들의 휴식권을 보장할 수 있을까.

노동부의 이번 가이드 또한 10년 후 같은 대책을 다시 반복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일단 휴게공간 확보에 대한 법적 근거가 미흡하다. 휴게시간에 대한 규정과 위반시 처벌 규정은 근로기준법에 명확히 제시돼 있다. 그런데 휴게공간에 대한 규정은 근로기준법에 없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29조(도급사업시의 안전·보건조치)에 도급사업의 경우에 한해 일부 규정돼 있다. 그나마 하위 법령인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비교적 상세하게 규정돼 있다. 이마저 위반시 처벌 규정은 없다. 이렇게 법적 근거가 미흡한 가이드가 현실에서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노동부는 사업장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에 가이드를 배포하고 다음달부터 백화점·면세점·청소·경비용역 사업장을 중심으로 실태점검을 한다고 한다. 이런 의문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노동부의 강력한 의지가 필수적이다.

휴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 또한 절실하다. 노동하기 위해 휴식은 필수적이다. 적절한 휴식을 제공하는 것은 사업주의 당연한 의무다. 적절한 휴식을 위해서는 휴게시간뿐만 아니라 휴게공간도 필요하다. 그러므로 적절한 휴게공간을 제공하는 것 또한 사업주의 당연한 의무다.

그럼에도 대다수 사업주는 이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복지쯤으로 생각한다. 휴게시설은 노동부가 각종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노동자가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휴식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시설로 최소한의 노동조건’이다. ‘최소한의 노동조건’을 사업주 재량에 맡겨서는 안 된다. 노동자 또한 사업주에게 적절한 휴식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요구하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노동자에게 적절한 휴식을 제공하는 것이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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