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사실상 의결시한을 넘긴 오늘 새벽 최저임금이 노사 양측 위원들 모두가 퇴장한 끝에 공익위원 안으로 결정됐습니다.” “노사 양측은 물론 영세·중소 상공인들까지 최저임금과 관련 있는 모두가 이번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하게 저항하고 있습니다.”

1년 후 이맘때를 상상하면서 적어 봤다. 1년 후에도 정말이지 이런 보도가 이어진다면 매우 슬플 것이다. 그런데 불길하지만 지금도, 꼭 1년 전에도, 그 1년 전에도 일어난 사건이니 내년에도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여기에다 “상황이 이런데도 아쉽습니다만, 아직까지 프랜차이즈 가맹비 인하나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가임대차법)은 개정되지 않은 상황입니다”라는 평론까지.

“다른 나라 같으면 자본가가 될 수 없는 사람인데 자본가로 만들어 놓았다.” 장하준 교수의 강연 내용을 정리한 글을 읽었다. 우리 사회 최저임금 현상을 간명하게 정리한 그의 표현에 곧 고개가 끄덕여진다. ‘자본가’라는 거창한 말 대신 ‘사장님’이라고 쓰면 좋겠다. 사장님이 되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사장님이 돼야 하는 현실, 게다가 최저임금조차 지급하기 싫어하는 악덕 사업주로 몰리는 현실, 그는 ‘실직자를 위한 복지’의 결핍을 우리나라가 처한 현재 상황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30여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다면, 노동자들은 막막하다. 몸으로 싸워 보기도 하고 나라를 향해 고함도 질러 보지만 늘 묵묵부답이다. ‘알아서 하라’는 메아리가 전부일 게다. 한국지엠 군산공장, 옥시 군산공장,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지난 1년간 8천개 일자리가 사라진 금융보험업. 통계는 직장을 떠나야 하는 노동자 숫자가 늘어만 간다고 알리고 있다.

만약 이들에게 실업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어떨까. 실직의 의미는 다를 것이다. 이를 위한 사회안전망은 기본이다.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실업부조를 확충하는 것은 시작이다. 무엇보다 실직기간 노동자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가는 데 더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어느 노동자가 실업급여만으로 살아가고 싶겠는가. 백이면 백, 더 좋은 새로운 일자리를 원할 게다.

우리 사회에 그러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가. 직업훈련은 고사하고 고용노동부 고용센터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구직과 관련한 정부 시설이 독일과 같은 선진국에 비해 5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우리 현실을 비판한 글을 본 적이 있다. 현재의 고용센터 규모와 인력을 최소한 주민센터(옛 동사무소) 숫자만큼 늘려야 하지 않겠나. 일자리를 찾는, 가장 절박한 상황에 있는 노동자와 시민을 위한 기초적인 시설조차 갖추지 않은 현실을 두고서 무슨 노동정책을 논할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해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은 게 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다. 일부는 사실이지만 상당수 일자리에서는 ‘미스매칭’에 그 원인이 있다. 그 간극을 메우는 게 바로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어야 한다. ‘남아도는 일자리는 3D업종 같은 안 좋은 일자리인데, 다들 거부한다’는 질문도 있다. 노동안전환경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나 임금 수준이 낮은 상황에 대한 지적이리라.

답은 하나다. 좋은 일자리가 더 많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당한 보상(임금)은 긴 시간이 요구되는 경제 구조적인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당장의 작은 노력으로도 나름의 좋은 일자리는 지금보다 많이 만들 수 있다. 작아 보이지만 현장 안전수칙과 노동시간·휴게를 법에 맞게 지킨다면 그 누구에게는 정말 좋은 일자리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누구는 편의점을 밤낮으로 지키는 은퇴부부와 알바생일 수도 있다.

지난해 최저임금이 사상 최대로 올랐다고 난리를 피울 때 “최저임금은 고용과 피고용을 선택하는 기준이거나 한계여야 한다”는 어느 노동전문가의 조언이 생각난다. 최저임금에 대한 또 하나의 시각이다. 노동자를 사용하지만 정작 자신의 수익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 닥친 이들에게 선택의 길을 열어 줘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좋은 일자리로 갈 수 있는 많은 길을 빨리 많이 놓아야 한다. 요즘같이 오로지 막힌 길에서 사장님(편의점주)과 알바생에게만 그 고통을 넘기는 방식은 2018년이 마지막이었으면 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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