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국제노동기구(ILO) 98호 제목은 '조직하고 단체로 교섭할 권리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이다. 1949년 채택돼 51년 효력을 발휘했다. 이 협약은 노동자가 자기 조직을 만들고 단체로 교섭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규정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3단'을 노동기본권으로 명시하고 있다.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다. 단체로 결사하고, 단체로 교섭하고, 단체로 행동할 권리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단체'는 노동자들이다. 사용자 것이라고는 머리카락 한 올 들어가지 않는다. 모을 단(團), 즉 떼로 모여야 조직이 가능하고, 떼로 모여야 교섭이 가능하고, 떼로 모여야 행동이 가능하다. 노동기본권은 노동자들이 떼로 모여 떼쓸 권리를 말한다.

ILO 협약 98호는 사용자와 사용자단체를 두고 '반노조(anti-union) 차별행위'를 하지 마라고 한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거나 노조에서 탈퇴해야 고용한다는 협박이 대표적인 반노조 행위다. 노조 조합원을 이유로 해고하거나 불이익을 가하는 것도 반노조 행위다. 근무시간 전이나 후에는 자유롭게 노조활동을 할 수 있고, 근무시간 중에도 사용자와 합의를 거쳐 노조활동을 할 수 있다. 이를 방해하는 것은 반노조 행위다.

ILO 협약 98호는 노동자단체와 사용자단체가 설립·활동·운영에 서로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명시한다. 관심을 가질 대목은 노동자단체, 다시 말해 노동조합이 간섭하지 않아야 할 대상은 사용자단체이지 회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노사관계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노사(勞使)는 노동자와 사용자를 뜻하는 것이다. 노동문제를 오래 다룬 사람들도 노사관계를 노동자와 회사(社) 관계로 오해하면서 노동자와 회사를 대립시키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 이익, 나아가 국민경제 발전을 위해 노동조합이 회사의 설립·활동·운영에 관심을 갖고 간섭하고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사용자들이 자기 이익 증진을 위해 사용자단체를 만들어 활동할 경우 노동조합이 이를 두고 콩 놓아라 팥 놓아라 관여할 이유가 없다. 사용자가 자기 이익을 위해 사용자단체를 새로 만들거나, 이미 존재하는 사용자단체에 가입하는 것은 사용자의 자유다. 이런 점에서 사용자도 떼로 모여 자기 이익을 위해 싸울 자유가 보장된다.

'결사의 자유와 조직할 권리 보호에 관한 협약'이란 제목을 가진 ILO 협약 87호가 노동자들에게만 적용된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87호 협약은 노동자에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 게 아니다. 모든 조항의 주어는 "노동자와 사용자는"으로 시작된다.

ILO 협약, 즉 유엔 체계하의 국제노동법에서 일관된 논리는 노동자와 대립하는(confront) 상대는 회사가 아니라 사용자라는 점이다. 회사는 노사관계가 만들어지고, 노동자와 사용자의 이익이 부딪히고, 노사의 세력관계가 교차하는 장소이자 공간이다. 노동자는 회사라는 사물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라는 인간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익을 둘러싼 투쟁에서 노동자와 대립하는 존재가 (인간인 사용자가 아니라) 사물인 회사라고 믿게 되면, 노동조합은 회사로부터 금전이나 재정 지원을 받으면 안 된다는 엉뚱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전임자 임금에서 사무실 제공까지 조합비로 해결해야지, 회사 돈을 받으면 노조 자주성이 침해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는 일개 인간에 불과한 무당이 신과 동일체라고 믿었던 원시인들의 무지를 떠올리게 한다. 현실세계에서 신은 신이고 무당은 무당이듯, 노사관계에서 회사는 회사고 사용자는 사용자다. 노사관계에서 회사와 사용자를 섞어 버리는 것은 현실세계에서 무당과 신을 섞어 버리는 것과 같다.

당연하게도 ILO 협약 98호는 노동조합이 회사의 재정지원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이 회사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 문제는 회사의 중요 주체들인 노동자와 사용자가 알아서 결정하면 된다. 회사 자원을 써서 회사랑 아무 상관 없는 불우이웃도 돕는데, 회사를 위해 일한 종업원들의 대표체인 노동조합에 회삿돈을 지원하는 게 문제일 수 없다.

ILO 협약 98호가 '반노조 행위'로 금지하는 것은 "사용자 혹은 사용자단체가 지배할(dominate) 목적으로 노동조합 설립을 지원"하거나 "사용자 혹은 사용자단체가 통제할(control) 목적으로 재정 혹은 기타 수단으로 노동자단체를 지원"하는 행위다. '지배'와 '통제'라는 의지는 사물인 회사가 아니라 인간인 사용자가 가지는 것이다. 삼성 이재용 사태나 한진 조양호 사태에서 보듯이, 회사 이익과 사용자 이익은 전혀 다르다. 많은 경우 서로 충돌한다. 사용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울 목적으로 자신들의 단체를 구성할 권리를 갖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2조)은 "경비의 주된 부분을 사용자로부터 원조받는 경우" 노동조합이 아니라고 선언한다. 이 조항은 법률적으로 불명확하므로 다음과 같이 개정해야 한다.

"사용자나 사용자단체의 지배나 통제를 받을 목적으로 경비의 주된 부분을 사용자나 사용자단체로부터 원조받는 경우"로 말이다. 노조법상 노동조합의 전임자(24조) 급여 금지도 "전임기간 동안 사용자로부터 어떠한 급여도 지급받아서는 아니된다"는 현행 조항에서 "전임기간 동안 사용자나 사용자단체의 지배나 통제를 받을 목적으로 사용자나 사용자단체로부터 급여를 지급받아서는 아니된다"로 바꿔야 한다.

현행 노동법의 엉성함은 우리나라 노동법 수준이 '입법완성기'가 아니라 아직도 '입법형성기'에 머물고 있음을 방증한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