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집행위원장

지난 3일 대한문 앞에 또다시 분향소가 차려졌다. 2009년 대량해고 사태와 국가폭력의 잔인함으로 동료와 가족을 황망히 잃은 쌍용차 노동자들이 30번째 희생자인 고 김주중님을 떠나보내며 다시 대한문을 찾았다. 이들은 분향소를 설치하며 △쌍용차 해고자 전원복직 △손배·가압류 철회 △국가폭력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고 김주중 조합원 명예회복을 요구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6년 전인 2012년 4월5일 22번째 희생자를 맞으며 거듭되는 죽음의 연쇄를 끊기 위해 대한문에 분향소를 설치했을 당시의 요구와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희생자의 숫자가 그새 ‘8명’이나 늘어난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까.

“해고는 살인이다”는 구호를 외치며 “함께 살자”고 절박한 목소리를 냈지만 10년 가까이 여전히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여 있다.

고 김주중님의 안타까운 죽음의 소식을 접하며, 올해 들어 정부가 1월23일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자살·교통사고·산업재해)를 발표하며 “2022년까지 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그리고 막을 수 있는 죽음을 방치한 것에 대한 원망이 커졌다.

정부는 국민생명 3대 프로젝트 중 우선적으로 자살 고위험자를 위한 대책부터 세우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 계획도 꽤 구체적이었다.

당시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관계자는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자살을 ‘개인적인 문제’로 여겼으나, 이제 자살은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라며, 예방에 국민적 관심을 촉구했다. 이에 덧붙여 “한국은 자살률이 25.6명으로 굉장히 높기 때문에, 당장 자살 위험이 큰 사람들만 살려도 자살률을 줄일 수 있다”라며 “실업문제 등 자살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함께 추진한다”고 계획을 밝혔다.

계획 실행을 위해 경찰과도 협조해 지난 5년간 발생한 자살자 7만명의 자료를 토대로 자살 원인과 지역별 특성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자살 고위험군을 발굴하고 집중 발생지역 감시체계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또 100만 ‘자살예방 게이트키퍼’를 양성해 이들이 자살하려는 사람의 징후를 포착해 이들을 돕거나 전문가에게 연결하며, 이장·통장·종교기관·시민단체를 우선으로 ‘자살예방 게이트키퍼’ 교육을 하고, 독거노인 생활관리사 등 방문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종까지 교육 대상으로 지정했다.

정부가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 발표 때 제출한 ‘자살예방 국가 행동계획’에는 유가족의 고통이 가볍지 않은 문제로 “자살 유가족의 자살 위험은 일반인 대비 8.3배, 41.7%가 우울증을 경험했다”고 밝히며 그 심각성을 확인했고, 지역적 특성도 주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며 ‘조선업 구조조정 관련 지역 A시 자살자 증가 2015년 53명→2016년 90명’ 등을 사례로 제시했다. 자살예방 추진의 구체 대상으로 ‘노동자와 실직자 자살’도 포함했다.

정부가 언급한 대로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면 어땠을까. 조합원과 가족들의 거듭된 자살로 사실상 10년 가까이 상주이자, 유가족으로 삶을 지탱해 온 평택지역 쌍용차 노동자들의 고통을 정부가 각별히 헤아리고 고려했다면 어땠을까. 아니 후보 시절 쌍용차 문제 해결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던 대통령이 응답했다면 어땠을까. 안타까운 희생을 분명 막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역대 정부 최초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 문화 확산’을 국정과제에 포함시켜 자살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자평한, 문재인 정부의 국민생명 지키기 프로젝트가 빛바랜 청사진으로 전락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다시 한 번 고 김주중님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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