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4일 월요일 오전 7시51분 출근, 밤 11시48분 퇴근. 7월5일 화요일 오전 8시6분 출근, 밤 10시46분 퇴근. 7월6일 수요일 오전 7시55분 출근, 밤 11시49분 퇴근. 7월7일 목요일 오전 8시16분 출근, 8일 새벽 0시3분 퇴근.

매일 야근해도 일은 끝없이 쌓였다. 한 달 22일 근무일 중 정시퇴근한 날은 6일밖에 안 된다.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진주지청 장아무개 근로감독관 얘기다. 장씨는 2016년 7월20일 오전 관사에서 쓰려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사인은 뇌동맥류 파열에 의한 비외상성 지주막하 출혈이었다.

고인이 숨진 지 2년 만에 법원이 공무상재해를 인정했다. 새로운 지청으로 전보된 뒤 과중한 업무와 악성 민원에 시달린 사실이 드러났다. 고인은 잦은 야근을 했고, 사망 2개월 전부터 민원인에게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다.

3일 고용노동부공무원직장협의회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13부(부장판사 유진현)는 지난달 28일 고 장아무개(사망당시 만 45세)씨 유족이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보상금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전보 후 업무 과중, 사망 전 12주간 주당 평균 52시간8분 일해

공단은 "지주막하 출혈의 의학적 특성상 직무수행에서 비롯된 결과로 볼 수 없고, 업무내역 또한 과도한 업무가 지속적·집중적으로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유족보상금 부지급 결정을 내렸다. 공무원연금급여재심위원회도 "뇌동맥류 파열은 과로나 스트레스보다는 급작스런 혈압상승으로 발생하는 것"이라며 공무상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질병 발생원인이 공무와 직접 연관이 없어도 직무상 과로 등이 질병의 주된 발생원인과 겹쳐서 질병을 유발시켰다면 인과관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장씨는 2016년 2월 울산지청에서 진주지청 근로개선지도과로 전보됐다. 이후 업무량이 증가했다. 진주지청이 다른 지청보다 관할 범위가 넓은 데다, 장씨가 속한 근로개선지도과 주요 업무가 임금체불·해고 사건이라서 심리적 부담감이 컸다.

장씨는 사망하기 한 달 전쯤 진주지청 1인당 평균 사건(190건)보다 많은 288건을 담당했다. 장씨는 사망 전날에도 출장 후 청사로 복귀해 추가근무를 한 뒤 밤 11시55분 퇴근했다.

밤낮없는 민원인의 폭언·협박
재판부 "공무상 과로·스트레스 노출로 뇌동맥류 파열"


장씨는 특히 사망 2개월 전부터 민원인으로부터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폭언과 협박, 통화시도에 시달렸다. 장씨가 진정사건을 맡았던 2016년 5월12일부터 사망 하루 전인 7월19일까지 해당 민원인이 장씨의 휴대전화와 사무실, 고객지원실에 건 전화만 168회였다.

민원인은 7월8일부터 10일까지 14차례에 걸쳐 장씨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에서 "X신, X라이, 개XX, 쓰레기XX" 등의 욕설을 반복하면서 "가만두지 않겠다" "잘라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배우자와 자녀를 모욕하는 언사도 있었다. 장씨는 근무일과 휴일,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 민원인의 욕설전화와 문자메시지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재판부는 "이미 신체적으로 상당한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사망 1~2개월 전부터 급격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에 노출돼 뇌동맥류가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돼 파열됐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과로로 인한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특정 민원인의 반복된 악성민원을 감내하면서 겪어야 했던 스트레스를 근로감독관 업무에 따른 통상적이고 일상적인 스트레스라고 볼 수 없다"며 "공무상 과로 및 스트레스가 기존 뇌동맥류와 겹쳐 사망원인인 지주막하 출혈을 유발했음이 규범적으로 증명됐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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