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 인천지방법원 2018.2.13. 선고 2015가합560 등 판결

장석우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1. 사건 개요

피고는 부평·군산·창원 등에 공장을 두고 자동차 및 그 부품을 제조·판매하는 회사고, 원고들은 피고와 계약을 체결한 사내협력업체 또는 위 사내협력업체와 계약을 체결한 2차 협력업체에 입사해 부평·군산공장에서 근무해 온 사람들이다. 원고들은 2003년부터 2013년 사이에 위 업체들에 각각 입사해 차체 조립, 도장, 엔진·변속기, 생산관리, 품질관리, KD포장 등의 공정을 담당했다.

원고들은 피고와 사내협력업체 사이에 체결된 도급계약은 실질적으로 옛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2조에서 정한 근로자파견계약에 해당하므로, 위 법에서 정한 사용사업주에 해당하는 피고에 대해 근로자지위 확인을 구하거나 직접고용 의사표시를 할 의무의 이행을 구했다.

이 사건 쟁점은 이 사건 계약이 도급계약인지 근로자파견계약인지 여부, 즉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 근로자파견관계가 성립되는지 여부다.

2. 선행사건 경과

피고 전 대표이사와 과거 창원지역 사내협력업체 대표이사들은 2007년께 파견법 위반죄로 기소돼 항소심(창원지법 2010.12.23. 선고 2009노579 판결)에서 유죄판결이 선고됐고, 대법원은 2013년 이를 확정했다(대법원 2013.2.28. 선고 2011도34 판결).

이후 피고 창원공장 사내협력업체 소속 일부 근로자들은 옛 파견법에 따라 고용간주됐음을 전제로 피고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및 임금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해 승소 확정판결을 받았다(창원지법 2014.12.4. 선고 2013가합3781 등 판결, 부산고등법원(창원) 2016.1.21. 선고 2015나130 판결, 대법원 2016.6.10. 선고 2016다10254 판결).

3. 판결 요지

대상판결은 “원고용주가 어느 근로자로 하여금 3자를 위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경우 그 법률관계가 위와 같이 파견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는 당사자가 붙인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에 구애될 것이 아니라 3자가 당해 근로자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그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당해 근로자가 3자 소속 근로자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성돼 직접 공동작업을 하는 등 3자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볼 수 있는지, 원고용주가 작업에 투입될 근로자의 선발이나 근로자수, 교육·훈련, 작업·휴게시간, 휴가, 근무태도 점검 등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지, 계약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범위가 한정된 업무의 이행으로 확정되고 당해 근로자가 맡은 업무가 3자 소속 근로자의 업무와 구별되며 그러한 업무에 전문성·기술성이 있는지, 원고용주가 계약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등의 요소를 바탕으로 그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2015년 현대자동차(아산공장) 대법원 판결을 인용하면서, 각각의 요소를 아래와 같이 판단했다.

1) 원고들에 대한 피고의 상당한 지휘·명령과 관련해 대상판결은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에 대한 일반적인 작업배치권과 변경결정권은 피고가 행사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고, 구체적인 작업지시와 관련해서도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은 모두 표준 작업방법 및 작업시간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는 작업표준서·작업사양서 등을 준수해 작업을 진행해야 했으며, 사내협력업체나 그 소속 근로자들에게는 피고가 정한 표준과 다른 독자적인 방식으로 작업을 수행할 권한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설령 사내협력업체 소속 현장대리인들이 일부 지휘·명령권을 행사하거나 사내협력업체가 작업방법 등을 일부 변경한 듯한 사정은 인정되나, 이러한 지휘·명령권은 실질적으로 피고에 의해 통제된 지휘·명령권에 불과하다고 판시했다.

2) 피고 사업에의 실질적 편입과 관련해 대상판결은 원고들이 종사한 각 공정은 모두 한 대의 자동차생산·판매를 위한 일련의 작업과정 또는 부분 공정이기 때문에 사업에 편입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설령 피고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과 피고 소속 근로자들이 공간을 분리해 공정을 수행했다고 하더라도 기능적·기술적 관련성과 연동성을 무시하고 업무의 본질을 평가할 수는 없다고 했다.

3) 근로조건 등에 관한 피고의 결정권 행사와 관련해 대상판결은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의 근무시간, 휴게시간, 연장·야간근로, 휴가일정 등은 모두 피고에 의해 전적으로 좌우됐고 사내협력업체의 권한은 업무에 어떤 근로자를 투입할지 여부 결정과 일시적인 작업인원 변경 정도일 뿐이었다고 판단했다. 더구나 피고는 인사시스템을 통해 근태도 사실상 관리하고 있었고, 설령 근로자 선발 등과 관련해 사내협력업체에 일정 수준 재량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결국 피고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행사된 제한된 재량에 불과하다고 봤다.

4) 원고들이 담당한 업무의 특정성·구별성, 전문성·기술성과 관련해 대상판결은 사내협력업체가 수행하는 업무는 피고가 수행하는 업무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고 명확히 구별되기 어렵다고 봤다. 또한 다수 사내협력업체가 신생업체라는 등의 사정으로 보아 전문성과 기술성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5) 사내협력업체의 독립적 기업조직 및 설비와 관련해 대상판결은 사내협력업체는 대부분 피고 소유 시설·장비·작업도구를 임차해 사용했고 고유기술이나 특별한 자본을 투입했음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6) 기타 사정과 관련해 대상판결은 자동차생산 업무는 컨베이어벨트를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각 공정과 개별 근로자들의 근로는 전체 생산공정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하나의 작업을 분절화시켜 수행하는 것과 같게 되는 특성이 존재하고, 따라서 일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사내도급이 현실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이 존재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한편 피고는 위에서 살펴본 선행사건 판결과 관련된 시기 이후 일부 불법파견 요소를 제거했다고 주장했으나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본질적인 근로형태는 변하지 않았다고 봤다. 계약의 목적을 보더라도 도급계약이라기보다는 노동력을 대여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지급받는 파견근로계약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4. 의의

완성차 공장에서의 불법파견을 인정한 다수의 판결<각주 1>이 있다. 해당 판결들에서는 메인 컨베이어벨트에 연결된 직접공정(차체·도장·조립)뿐 아니라 간접공정(생산관리·품질관리·KD포장 등)에서 근무한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 원청과 직접 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2차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까지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대상판결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동일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자동차 생산공정에서 비정규직 사용은 불법이라는 점이 여러 차례 확인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차업체들은 각각의 판결 시점 이후 공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기 때문에 더 이상은 불법파견 요소가 없다고 강변하며 비정규직을 오늘날까지 여전히 존속시키고 있다. 해당 판결들은 특정 시점의 특정 공정 내지는 근로자들에게만 적용된다는 논리다. 그런데 대상판결은 “자동차생산에 있어 피고가 주장하는 것과 같은 일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사내도급이 현실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이 존재한다”며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완성차 업체들이 아무리 불법파견 요소를 없애려고 노력해도 그것이 연속흐름공정인 이상 상당한 지휘·명령과 원청 사업에의 편입을 핵심요소로 하는 파견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대상 판결은 구체적 사안에 대한 개개의 판단을 넘어 보다 일반론적인 설시로 확장시키려는 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피고는 선행 판결 이후 공정을 블록화해 정규직 공정과 비정규직 공정이 물리적으로 구분돼 있다는 점을 강조했으나, 대상 판결은 그와 같은 피고의 주장을 일축하며 근본적인 개선이 없었다고 봤다. 또한 피고가 사내도급 형식의 계약을 통해 달성하려는 목적은 비정규 근로자들로 노동력을 확보하고 노무비용을 줄이려는 것으로 이는 파견법의 입법취지를 잠탈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일침을 가하고 있다.

한편 대상판결은 원고들이 문서제출명령 신청 등을 통해 요구한 증거 제출에 영업비밀 운운하며 매우 소극적이었던 피고의 태도를 지적하며, 원고들의 증명책임 수행을 위해 피고는 적극적으로 협조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설시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각주 1>
△대법원 2010.7.22. 선고 2008두4367 판결(현대차 울산공장)
△대법원 2015.2.26. 선고 2010다106436 판결(현대차 아산공장)
△대법원 2016.6.10. 선고 2016다10254 판결(한국지엠 창원공장, 심리불속행)
△서울고등법원 2017.2.10. 선고 2014나51666(현대차 고용의제자)·2014나51475(현대차 고용의무자)·2014나48790(기아차 고용의제자)·2014나50458(기아차 고용의무자) 판결
△수원지법 평택지원 2013.11.29. 선고 2011가합1752 판결(쌍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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