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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통상임금을 묻다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월요일(14일) 주간회의에서였다. 얼마나 참석하겠냐고 걱정했다. 다음주 목요일 주최하는 토론회에 관해서였다. 관심이 떨어졌다고, 많은 사업장에서 이미 해결됐다고 참석자들이 많지 않을 수 있다는 말에 사무실 회의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한 노동법학회와 공동으로 주최하는 통상임금 토론회는 오늘 이렇게 심란하게 준비를 하고 있다. 또 통상임금인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온 게 4년여가 지났고, 그동안 수많은 논의가 있었다. 현행법 해석에 관한 법리에 관해서든, 법 개정을 위한 입법에 관해서든 오늘 ‘또 통상임금인가’라는 말을 들을 만큼 많은 논의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다시 통상임금을 묻고 있다.

2. 지난 3월20일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국회에서 열린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의 법원행정처 질의에서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통상임금 판결에 대해 ‘BH(청와대)가 흡족해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법원행정처 문서를 판사블랙리스트 추가조사위원회가 확인했다”며 신의칙에 따라 통상임금 소급 적용을 불허할 수 있다고 본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당시, 법원행정처와 ‘박근혜 청와대’ 간 교감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통상임금에 관한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을 두고서 나온 이 같은 의혹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2013년 5월8일 미국 순방 중 댄 애커슨 제너럴 모터스(GM) 회장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만나 “통상임금 문제를 한국정부가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박근혜 대통령은 “해결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 당시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 그 직후 대법원은 갑을오토텍 사건을 전원합의체 재판부에 회부해서 이를 대표사건으로 해서 같은해 9월 초 공개변론을 진행하고 그해 12월18일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했다.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법리에 따른다면, 당시 진행되고 있던 한국지엠 통상임금 사건의 경우 회사 경영사정을 내세워 신의칙에 위반된다고 판단될 수 있었고, 실제로 2014년 5월29일 대법원은 한국지엠 통상임금 사건에 관해서 신의칙 위반 여부를 판단하지 않은 위법이 있다며 원심 파기, 환송의 판결을 선고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직후인 2014년 1월9일 외국인투자기업 대표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통상임금 문제도 해결방안이 한층 명료해졌다”고 말했고, 이에 세르지오 호샤 한국지엠 사장이 “(통상임금 판결로) 노사가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준 데 대해 감사하다”고 했다고 언론에 보도됐다. 분명히 이같이 전개된 상황을 보자면, 노회찬 의원의 의혹 제기는 충분히 납득이 간다.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대법원의 신의칙 판결의 이유가 조금은 납득이 간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둘러싼 상황을 되돌아보고자 토론회를 통해 다시 통상임금을 묻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2018년 5월 현재의 노동자권리로만 보자면, 신의칙 법리는 노동자의 통상임금 청구를 크게 위협할 흉기라고 볼 수는 없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되기 전인 2013년 12월 이전까지의 노동자 임금권리는 이미 소송을 제기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3년의 소멸시효가 도과돼 소송상 권리 주장을 할 수 없게 됐고, 2014년 이후에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걸 노사가 분명히 인식하고서 교섭해 협약을 체결했을 테니 신의칙 위반 법리가 적용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법원의 신의칙 법리를 비판하고자 토론회를 열어 다시 통상임금 문제를 살피고자 하는 게 아니다. 신의칙 말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통상임금 법리를 살피고자 하는 것이다.

3. 2013년 통상임금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갑을오토텍의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고, 하기휴가비 등 재직 조건의 복리후생비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판결문에서는 다양한 유형의 임금 내지 금품에 관해서 통상임금 해당성에 관해 자세히 살폈다. 갑을오토텍 사건에서 문제가 된 유형에 한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문제였다. 재직 조건의 임금, 일정근무일수 충족 조건의 수당 등이 고정성이 결여됐다며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던 것인데, 그래서 이후 많은 사업장에서 정기상여금이 문제였다. 갑을오토텍 사건에서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했음에도, 이 나라에서 정기상여금은 재직 조건, 일정근무일수 충족 조건을 이유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고용노동부가 2014년 1월23일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을 통해서, 하급심 법원이 대우조선해양·현대자동차 등 통상임금 사건 판결을 통해서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신의칙 법리가 과거의 노동자권리를 빼앗는 것이라면, 이것은 현재는 물론 장래의 노동자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음에도 이렇게 이 나라에서는 정기상여금은 여전히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아직 분명한 대법원 판결은 없다. 이상이 다시 통상임금을 묻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재직 조건, 일정근무일수 충족 조건은 고정성을 결여하는 것이라며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노동부 지침과 하급심 판결, 그리고 이에 동조하는 주장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지 못했던 까닭에 이에 관한 논의를 위해 ‘또’라는 반응에도 다시 통상임금 법리를 살펴야 한다.

4. 노회찬 의원의 의혹대로 대법원의 신의칙 법리가 지엠자본을 위한 것이었다면 재직 조건, 일정근무일수 조건의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는 법리는 이에 해당하는 다른 사업장 자본에 매우 특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조건은 극히 일부 사업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사업장에서 상여금의 지급조건인 것이고, 이 때문에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에서는 여전히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치 않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는 지엠자본의 요청과 박근혜 정권의 결탁에 따른 적폐 판결이라는 변명조차 할 수가 없다. 굳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노동법리에 관해서 대법원이 판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대법원 판례 법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온전히 법리적 비판을 통해서일 수밖에 없다. 다시 그 법리를 묻는, 통상임금에 관한 끊임없는 논의를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 재직 조건과 일정근무일수 조건에 관한 예외 인정은 사용자 자본으로 하여금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으로 악용돼 왔다. 예외 인정 법리가 사용자 자본을 위한 특혜로 노동현장에서는 악용돼 왔다. 상여금 지급조건을 새로이 정하는 사업장뿐만 아니라 이러한 조건으로 기존 상여금 지급조건을 변경함으로써 말이다. 이렇게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악용되고 있다. 오늘 사용자들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게 하기는 이렇게 쉽다. 그만큼 통상임금에 관한 노동자권리는 쉽게 무너지고 있다. 이제 이 나라에서는 재직 조건, 일정근무일수 조건은 통상임금 법리에서 하나의 도그마·교리라고 불러야 할 지경이다. 그런데 이 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통상임금에 관한 노동자권리는 없다.

5. 주 52시간 노동시간단축, 최저임금 등이 최근 문재인 정부의 노동개혁과 관련해 주요 노동문제로 다뤄지고 있다. 감히 통상임금 문제를 꺼낼 수 없을 정도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런데 통상임금 문제는 노동시간단축이나 최저임금과 별개가 아니다. 우리 근로기준법은 통상임금제도를 노동시간 규제로 규정하고 있다. 연장·야간·휴일근로 등 초과근로의 대가 임금을 통상임금의 50%를 가산한 임금을 지급토록 함으로써 법정(소정) 외 근로를 제한하고 있다(근로기준법 56조). 이것이 법정(소정) 근로의 대가로 지급하도록 정한 임금 일체를 통상임금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필자가 수도 없이 주장해 왔던 까닭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예외를 인정한다면 근로기준법 56조는 제 기능을 상실하고 만다. 재직 조건, 일정근무일수 조건 등을 내세워 오늘 이 나라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고 있는 사업장들 사례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노동시간단축법의 시행을 통해서 주 52시간을 초과한 장시간 노동에 관해 사용자를 형사처벌함으로써 규제할 수 있겠지만, 주 40시간의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한 장시간 노동은 그것으로 규제하기 어렵다. 오직 근로기준법 56조가 제 기능을 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최저임금에 매월 지급하는 상여금 등을 포함해야 한다는 논의가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위원회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등에서 진행돼 왔다. 엉뚱하게도 통상임금 범위와 일치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게 됐으니 최저임금 범위에도 포함해야 한다는 식으로 논의하고 있다. 언제 이 나라에서 최저임금액을 정하면서 통상임금 범위의 임금액과 연계시켜 산정해 왔다는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상여금을 제외하고서 기본급 등 일부 임금항목들로 최저임금 범위를 산정한다고 최저임금법령에서 정해 놓고 그에 따라서 얼마를 노동자의 최저임금액으로 할 것인지 최저임금위에서 심의·의결해 정해 왔던 것인데 인상된 최저임금액을 삭감하고자 매월 지급하는 상여금 등을 최저임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하고 있으니 오늘 이 나라에서 최저임금 논의는 엉뚱하기만 하다. 엉뚱하지 않으려면 만약 최저임금에 포함시키고자 할 경우에는 그만큼 최저임금액을 인상시켜야 마땅한 것이다.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해서 노동자의 생활안정 등을 기하고자 하는 최저임금제도와 법정 외 근로를 규제해 장시간 근로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통상임금제도는 전혀 다른 임금제도인 것이다. 최저임금 범위 논의를 하기 전에 재직 조건, 일정근무일수 조건의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는 것부터 논의했더라면 그나마 염치는 있다고 나는 말해 줬을 텐데 도대체가 그조차도 없다. 이상과 같이 오늘 이 나라에서는 정기상여금을 포함하지 않는 통상임금 문제를 내버려 두고서는 노동시간단축 논의도, 최저임금 논의도 보잘것없다. 몇 번이고 다시 통상임금 문제를 물어야만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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