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 엘리베이터 바닥을 청소하던 환경미화원이 말한다.

“이 작업복의 비밀을 알아요? 이 옷을 입으면 우리는 투명인간이 돼요.”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에 만들어진 캔 로치 감독의 <빵과 장미>는 여성노동자들과 노동조합에 대한 영화다. 멕시코에서 미국 국경을 넘어온 밀입국자 마야. 그녀는 로스앤젤레스로 먼저 건너온 친언니의 도움으로 청소용역 회사를 통해 환경미화원으로 취직한다. 밀입국자인 마야는 취직을 시켜 준 소개료 명목으로 용역회사에 한 달치 월급을 빼앗긴다.

영화 제목은 1908년 미국 뉴욕에 있는 방직공장 여성노동자들이 살인적인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저항하며 외친 “우리는 빵을 원한다. 그리나 장미도 원한다”에서 가져왔다.

착용하는 순간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버리는 ‘작업복’에 대한 영화 대사는 지난해 방송된 한국 드라마에서 고스란히 인용됐다. 대기업 건물을 청소하는 환경미화 노동자인 여주인공은 말한다. “작업복을 입는 순간 우리 얼굴은 사라져. 쉽게 말해 투명망토라고 할 수 있지.”(드라마 <변혁의 사랑> 중)

110년 전 여성노동자들에게 빵(생존권)과 장미(인간으로서의 권리)는 18년 전 영화나 현실의 드라마에서도 여전한 갈증이다. 영화와 드라마에 나오는 노동자들은 투명인간이기를 거부한다. ‘나는 노동한다, 고로 존재한다.’

영화에서 한 노동운동가는 노동자들의 단결과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이렇게 역설한다.

“우리가 가끔 잊어버리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린 항상 생각보다 큰 힘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생각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는 노동조합을 만든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에 현실 속 노동조합이 가지고 있는 힘을 설명하기 위해 해당 기업에 노조가 ‘존재’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할 때 임금인상 효과가 높았다는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나 노조 가입률이 높은 도시지역에서 태어난 저소득층 출신 아이들일수록 나중에 소득 분포상 더 높은 계층으로 올라갈 확률이 높다는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논문을 제시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가 아닌 현실 노동자들의 생생한 목소리에서 그 힘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직접고용된다는 소식을 들은 때가 새벽 4시였어요. 그리고 펑펑 우느라 잠을 못 잤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출근하는데 평소에는 그냥 그렇게 보이던 국회의사당이 그렇게 예쁘고 멋있어 보일 수가 없더라구요.”

노동조합을 만들고 긴 투쟁 끝에 2016년 12월에 정규직 전환이 된 국회 환경미화원 노동조합 위원장은 말한다. “노동조합이 없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라고.

“처음 시작을 했을 때는 힘들었지요. 믿고 따라가겠다는 얘기를 듣고 힘을 냈습니다. 우연치 않게 ‘엄마, 나 정직원됐어요’ 하고 말하는 비정규직 조합원의 전화통화를 들었을 때 엄청나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분들이 얘기해요. ‘이제 내 회사, 내 직장’이라고.”

정규직보다 3배에 가까운 사내 불법파견노동자들 전체를 정규직으로 전환해 올해 3월 하나의 노동조합을 만든 자동차 부품업체 핸즈식스노조 위원장은 “노동조합의 힘이었기에 가능했다”고 이야기한다.

한국노총은 지난 2월 대의원대회에서 더 많은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의 힘을 건네주고자 ‘조직화사업 추진단’을 만들었다. 우선 ‘내 조직 100% 조직화’를 통해 등잔 밑부터 밝히는 것이 첫 번째 사업이다. 한 공장 안에서도 노동자들은 파견·기간제·단시간·용역으로 나뉜다. 결국 이 사업의 성패는 기존 노동조합의 관심과 실천에 달려 있다. 그래서 영화 속 대사를 바꿔서 얘기한다면, “우리가 가끔 잊어버리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노동자는 항상 단결할 때 큰 힘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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