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장관님 말처럼 세상일 쉽게 안 돼요.”(조선일보 1월20일자 1면 머리기사)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이 19일 서울 신당동 설렁탕집 주인에게 들은 말이다. 조선일보는 이 말을 1면 머리기사 제목에 달았다. 조선일보는 장관과 경제수석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정부 지원대책을 홍보하러 현장을 찾았지만 오히려 식당주인에게 훈계만 들었다고 했다.

여기서 조선일보는 “내가 (4대 보험료를) 보태 준다고 해도 직원들이 (4대 보험에 가입) 안 하려고 한다. 장관님이 얘기하시는 것처럼 세상이 쉽게 안 된다”는 식당주인 말을 그대로 인용했다.

반만 맞는 말이다. 4대 보험에 가입하면 최저임금만 받는 노동자라도 10만원쯤 자기 돈을 부담해야 한다. 매달 빠듯하게 사는 최저임금 노동자에겐 큰돈이다. 그래서 노동자가 4대 보험을 종종 거부한다. 정보비대칭이 낳은 비극이다. 고용을 전제로 가입하는 고용보험·산재보험과 달리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은 고용과 관계없이 가입해야 한다.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은 다른 4대 보험보다 액수도 훨씬 크고 직장가입자에게 엄청 유리하다. 그나마 국민연금은 납부유예하거나 월 60만원 최하소득으로 신고하면 월 5만4천원만을 내지만 건강보험은 좀 다르다. 직장가입자라면 10만원 남짓 나오는 월 보험료가 지역가입자로 바뀌면 15만원 이상 부과된다. 직장가입자 월 10만원 보험료는 노사가 공동부담해 순수한 노동자 부담은 5만원에 불과하지만 지역가입자는 모두 제 돈으로 내야 한다. 한국에선 건강보험 없이 살 수 없다. 예전엔 친척이나 부모의 건강보험에 얹히기도 했지만 요즘은 그것도 쉽지 않다. 올해 7월이면 더 엄격해져 거의 불가능해진다. 노동자는 4대 보험 가입이 무조건 이익이다. 그러나 사용자는 가입 안 시키는 게 이익이다.

“전국의 자영업자수가 700만명쯤 되는데 사람을 고용한다고 신고한 자영업자는 100만명이 조금 넘는다. 그런데 가게들 가 보면 사람 고용 안 하는 데가 없다. 그만큼 신고를 누락시키는 거다. 우리도 고용한 직원들 제대로 신고할 구조가 됐으면 좋겠다.” 지난해 9월21일 서울지역 소상공인 간담회 자리에서 한 자영업자가 한 말이다. 그는 떳떳하게 고용한 직원들 4대 보험 가입신고할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돈 아까워서 노동자가 가입하지 않으려 한다며 의뭉스럽게 빠져나가는 사장과는 다르다.

언론이라면 버젓이 고용한 직원을 없다고 속이고 4대 보험 가입신고 안 하는 비정상을 바로잡으려 해야 한다. 의무가입이 원칙인데도 4대 보험 신고를 미루는 비정상 사회는 그동안 고용노동부의 수수방관 속에 정상처럼 행세해 왔다.

이전 정부나 지금 정부나 자영업자 대책이라고 카드수수료 인하나 만지작거리는 것도 문제다. 현재 자영업자 카드수수료는 0.8~2.6%다. 얼마나 더 낮추겠나? 카드수수료 인하는 역설적으로 초대형 자영업자만 혜택을 누린다. 프랜차이즈 대형 외식업체는 카드수수료를 낮추면 상당한 혜택을 보지만, 한계선상 자영업자에겐 고작 몇십만원 혜택에 불과하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이번 지원제도 이전에도 정부는 소상공인에게 4대 보험 일부를 지원해 줬다. 그런데 직원 월급이 120만원 이하여야 했다. 그래서 소상공인들은 직원 월급을 늘 120만원 이하로 신고했다. 그래야 지원을 받으니까.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월급을 줘야 지원해 주는 이런 엉터리 정책은 어떤 관료들 머리에서 나왔을까.

일정한 연매출 이하 소상공인에 한정해 인건비에 부가세 항목을 넣어 달라는 게 소상공인들의 바람이다 이렇게 하면 생돈 준다는 소리도 듣지 않고 자연스레 소상공인을 지원할 수 있다. 그러려면 인건비는 재화가 아니라서 안 된다는 기획재정부 관료들의 고정관념을 뛰어넘어야 한다. 수많은 중앙행정기관이 비정규직 인건비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사업비로 사용한다. 인건비에 부가세를 매길 수 없다면 비정규직에게 주는 임금도 잡비나 물품구입비로 줘선 안 된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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