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혜진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직장갑질119. 11월1일 야심차게 출범했다. 오픈 채팅창을 통해 누구나 나의 고충을 토로하고 필요한 사람에게는 법률전문가가 상담을 진행하고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같이 논의해 보자는 취지에서 출범한 기구다. 오픈 채팅창이 열리자마자 하루에도 수십 건의 직장생활 고충과 각종 상담 문의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부분 다양한 사업장에서 근무 중인 분들이 각자 서로 다른 내용의 고충들이었다.

오픈 채팅방이 생기고 일주일째. 한림대의료원 내부 상황에 대한 상담 문의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채팅방이 한림의료원의 각종 법률 위반행위로 거의 도배가 되다시피 문의가 쏟아졌다. 다른 참여자들의 상담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인원이 많이 모여서인지 곧바로 언론에서도 한림의료원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 언론에 보도된 것은 매년 체육대회 때 간호사들에게 선정적인 의상을 입히고 자극적인 춤을 추게 하는 장기자랑을 시킨다는 문제였다. 병원은 장기자랑 전 리허설을 해야 한다며 환자들 앞에서 춤을 추게 시키기도 했다. 자극적인 춤사위를 마친 간호사들은 간호복을 입고 다시 병동을 돌며 환자들을 만나야만 했다.

장기자랑 준비를 위해 부서별로 남아 엄청난 연장근로를 해야 했지만 병원은 간호사들의 ‘자발적’인 무대였다고 해명했다. 연장근무에 대한 시간외수당은 당연히 지급되지 않았다. 천 번쯤 양보해서 장기자랑 준비는 업무로 보기 어렵다 치자. 진짜로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 연장근로를 한 경우에도 병원은 시간외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야간근무 후 주어지는 오프(off)가 있음에도 병원은 연차수당 지급을 회피하기 위해 쉬는 날에는 연차부터 소진시켰다. 병원에서 잡아 준 교육일정에는 무조건 참석해야 하는데도 개인 오프를 소진해야 했다. 오프라도 제대로 주어지면 다행일 정도로 병원은 직원들을 한시도 쉬게끔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일은 했지만 근로의 대가는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고 쉬고 싶었지만 쉴 수 없었다.

제3자 입장에서 문제제기를 하지 왜 참고 있었냐고 말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부조리의 당사자로서 직접 목소리를 내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생계가 볼모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럴 때 정부가 나를 보호해 줘야 하지 않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직장갑질119 오픈 채팅창을 통해 들어오는 상담 중 10%가량이 "고용노동부가 회사 편인 것 같다"는 내용이다. 한림대의료원 역시 병원 관리자가 사전에 면담 대상자 목록을 작성해 노동부에 전달하고 노동부는 병원 관리자가 지켜보는 공간에서 면담을 진행한다. 직장갑질119 오픈 채팅방에 왜 저런 상담이 많은지 수긍이 간다.

노동부 조사 결과가 새로운 갑질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노동부는 한림대의료원 산하의 한 병원이 시간외수당을 미지급하고 최저임금법을 위반해 발생한 체불임금액이 240억원에 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병원은 갑자기 전월 미지급 임금을 지급한다며 일부는 개인 계좌로, 나머지 일부는 당월 급여에 포함해 지급했다. 돈을 줬으니 형사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탄원서를 작성해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몇 시간을 일했는지, 내 체불금액이 얼마였는지 정확하게 알지도 못했던 직원들은 병원이 주는 대로 돈을 받았고, 원하지도 않는 처벌불원 의사를 표시해야만 했다.

한림대의료원 갑질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지만 재단은 별다른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다. 여론의 관심이 사그라지기만을 바라고 있는 듯하다. 그 어느 직장보다 생명존중을 실천하는 병원에서 그 어느 직장보다 갑질 제보가 넘쳐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한림대의료원 홈페이지 메인화면 문구는 다음과 같다.

"건강한 삶과 즐거운 인생이 이곳에서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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