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동희 공인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최근 버스·IT·집배노동자의 장시간 노동과 이로 인한 사망 등과 관련해 노동시간단축 및 특례업종 축소 논의가 활발하다. 그러나 국회 법 개정 논의는 답보 상태고, 대법원 판결은 6년 이상 묵묵부답이다.

근로기준법상 “1주에 휴일이 포함돼 있는지 여부”에 대한 명확하고 단순한 문리적 해석을 방치한 대법원은 직무를 유기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모든 것이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고용노동부의 잘못된 행정해석(근기68207-2855, 2000년 9월19일) 하나로 비롯된 것이니, 노동부 지침 하나가 이 나라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재단하는 막강한 권력임을 알 수 있다.

행정해석이 노동자들을 장시간 노동으로 내모는 주범이라면 노동부 고시는 노동자 과로질병과 과로사 원인으로 작용해 왔다. 그 고시는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노동부 고시 2016-25호, 옛 2008-43호·2013-32호)’이다. 제정될 당시부터 이 고시는 판례 태도와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해석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 법원(대법원 2015. 11. 12. 2015두49269 판결 등 다수)은 “노동부 고시가 하나의 예시에 불과할 뿐이며, 발병 전 12주 평균 1주 근로시간이 60시간이 되지 않을 경우에도 당연히 업무상질병 여부는 당해 근로자를 기준으로 과로·스트레스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1주 48시간 이상의 노동시간이 뇌심장질환 위험성을 높인다는 연구와 의학적인 논문도 상당히 많다.

1주간 40시간 노동은 대원칙이며, 1주의 연장노동은 12시간 이내에서 노동자 동의를 필요로 한다. 현재 노동부 고시상 만성과로 기준은 근로기준법 위반 상태를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노동부가 만성과로로 인정된 과로사건(연간 400건에 가깝다) 내용을 근로복지공단 자료를 통해 분석·파악하고, 그 사업장의 법 위반 상태만 개선했더라도 산재사망률 세계 2위 오명은 벗어났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노동부는 행정해석을 통해 주당 최장 노동시간을 68시간으로 늘리고, 특례조항(근로기준법 59조)으로 무한노동시간 체계를 만들었다. 한국의 초장시간 체계를 구축하고, 저녁이 없는 피로사회와 장시간 노동을 통한 과로사망·자살이 일상인 사회를 재생해 낸 장본인은 바로 노동부다.

노동부는 고시를 두 차례나 바꿔 시행하면서 타당성을 검토하거나 개선하는 조치를 전혀 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2008년 7월1일 이 고시가 시행될 때부터 많은 노동자들의 산재신청이 기각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주당 근무시간이 60시간이 되지 않는다고 기각했고, 이로 인해 소송을 포기하고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가정이 무수히 많다.

업무상질병판정위뿐만 아니라 산재심사위원회와 산재재심사위원회도 “주당 노동시간이 60시간이 되지 않으므로 만성과로를 충족하지 않는다”는 형식적 판단과 처분을 지금도 남용하고 있다. 노동시간이 주 60시간이 되지 않더라도 “업무의 양·시간·강도·책임, 휴일·휴가 등 휴무시간, 교대제 및 야간근로 등 근무형태, 정신적 긴장의 정도, 수면시간, 작업환경, 그 밖에 그 근로자의 연령·성별·건강상태 등을 종합해 판단해야 함”에도, 이러한 원칙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고 개선 여지도 보이지 않는다.

노동부가 이러한 고시의 성격과 그로 인해 산재가 불인정되는 현실을 몰랐을까. 최근 노동부는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의 질의에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주 평균 60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경우라도 업무의 양·시간·강도·책임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해당 질병을 업무상질병으로 볼 수 있다”고 공문(산재보상정책과-3948, 2017년 7월31일)을 통해 답변했다.

최근 과로사방지법 등 여러 사회적인 법률 개정과 제도개선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핵심적인 노동부 고시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과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오랫동안 쌓인 폐단이 적폐라면, 10년 이상 잘못된 기능을 한 고시는 적폐가 아닐 수 없다. 노동부는 행정해석과 특례조항으로 만성과로 노동시간 체계를 만들고, 고시를 통해 주 60시간 이상 초과노동으로 노동자들을 과로사망에 이르게 했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노동부는 과로사망의 미필적 고의범이나 다름없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